[야! 한국사회] 보온 안상수 뎐 진중권이 바라 본 오늘의 대한민국
호(號)는 ‘보온’(保溫), 자(字)는 ‘행불’(行不), 출(出)은 ‘자연산’(自然産).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안상수 선생의 간략한 신상이다. 그의 덕을 흠모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액수만’(厄手滿)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했다.
‘보온’이란 호는 경인년(庚寅年) 11월의 연평도 행차에서 유래한다. ‘오브제 트루베’ 기법을 도입한 이 전설적 공연에서, 선생은 길에서 주운 보온병을 ‘포탄’이라 일컬었다. 그 이름을 불러주자, 뒤샹에게 변기가 그러했듯이, 보온병은 선생에게 의미가 됐다. 이 일에 감동한 백성들은 <이것은 보온병이 아니다>라는 그림을 그려 오마주로 바쳤으니, 선생의 정신이 마그리트와 교감하고 있음은 이로써 증명된다.
업적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를 견학하다가 우연히 선생을 본 소학생들은 “보온병 아저씨!”라 외치며 환호했으니, 선생 덕에 집권당의 고질적 문제인 ‘젊은 세대와의 거리’가 일거에 좁혀진 셈이다. 예술을 모르는 이들은 선생이 군역면제라 포탄과 보온병을 구별하지 못했을 뿐이라 비난했으나, 그게 사실일지라도 이는 행불자를 찾지도 않는 사회의 비정함을 탓할 일이지, ‘행불’로 군대도 못 간 ‘불행’을 탓할 일은 아니리라.
공동창작자의 기여가 묻힌 것은 심히 아쉽다. 실은 3성 장군을 지낸 황진하 영감도 현장에서 보온선생 못지않게 심오한 실존적 화두를 남겼다. ‘탄피가 왜 탄착점에 존재하는가?’ 하나 영감의 깊은 뜻을 이해한 자는 거의 없었으니, 동시대의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게 시대를 앞선 이들의 운명인 듯하다. 오늘날 미술사가들은 보온(保溫) 안상수, 구경(口徑) 황진하 양씨가 알카에다의 ‘보온병 폭탄’ 개발에 영감을 주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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