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는가? 그 폭압정권 연장이 한나라당임을!!! [6월항쟁 미공개 사진] ‘이한열 죽음’
1987.6.9 짓밟히고 쓰러져도 하나가 되던 날
[6월항쟁 미공개 사진] ‘이한열 죽음’ 그날 무슨일이…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씨가 기증
당시 이한열 죽음 전세계에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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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경찰이 서울대생 박종철씨를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전두환 군사정권이 4월13일 ‘호헌 조치’를 발표하자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은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반독재 집회를 이어나갔다.
이 와중에서 6월9일 연세대에서 열린 ‘6·10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가했던 연세대생 이한열씨가 경찰이 발사한 총류탄에 맞아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씨는 7월5일 끝내 숨졌다.
이 사건은 타오르는 민주화 열기에 기름을 부어 20여일간 전국에서 시민 500여만명이 거리로 나섰고,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 이양’을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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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씨의 죽음은 한 외신기자가 타전한 현장사진(위 작은 사진)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알려졌다.
그는 당시 로이터 통신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정태원(72·사진)씨다.
이날 학생과 경찰의 충돌 과정을 연세대 정문 맞은편 철길 주변에서 취재한 대부분의 사진기자들과 달리 학생들 속에서 현장을 취재했던 그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한열씨가 뇌사에 빠진 당일 사진들을 지난 5월26일 ‘이한열 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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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시민항쟁’ 24돌을 맞아 이 사진들을 통해 꽃 같은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위해 스러져간 아픈 역사의 현장을 되돌아봤다.
사진을 제공한 정씨는 <한겨레>에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짓밟힌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김귀정 등 50여명의 희생자와 헤아릴 수 없는 부상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기념관이 꼭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정태원 전 로이터 기자,
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21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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