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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먹거리이야기

[대전 유성 맛집]만두... 제대로 된 김치만두를 즐기려면 '우리집만두'로 가 보자.










지난 27일...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요, 나에게는 단 한분 뿐인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과 분향소 봉사를 위해

'문함대' 나락한알부부 그리고 아들 진솔이와 함께 서대전 분향소로 향하는 길...

저녘을 먹어야 할 시간이라 나락한알님이 추천하는 만두 집으로 갔다.

 

사실 밀가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않는 나로서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않았다.

 

만두 하면 부산의 화교골목에서 먹던 물만두가 이미 입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전에서 제대로 된 만두를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처음부터 예상을 하지 못했지 때문이다.

 

들어선 곳은 유성천변에 위치한 '우리집만두'

 

 

깔끔하게 단장된 가게와 벽면을 가득채운 TV방영 사진들...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우리집 만두는 만두계의 신화가 되어 몇몇 곳에 지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중 한곳인 이곳 대전시 유성구의 '우리집만두'

 

 

처음 시작한

지금 서울 강남점의 어머니인 박정자여사님...

딸을 수발하기위해 대전으로 오셨다는 강원도 분이시다.

대전에 오셔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적극적인 생활을 위해 이곳 대전 유성구에 '우리집만두'집을 개업하셨단다.

다시 말해서 '우리집만두'의 원조가 직접 운영하는 만두집이라는 얘기다.

 

 

착한 가격의 만두메뉴 중에서 '떡만두국'과 이집만의 특별 메뉴인 '냉만두국'을 시켰고,

찐만두도 한접시 주문하고,

가게안을 둘러보니 60이 넘은 나이에도 몸의 유연성을 유지하고 계신 모습의 사진이 가득하다.

실버몸짱 박정자여사...

ㅎㅎㅎ

대단하시다.

 

 

드디어 나온 떡만두국...

갖은 고명과 양지머리로 낸 육수에 담겨져 나온 떡만두국은 양이 많다.

 

 

드디어 이집만의 특별메뉴 '냉만두국'

갖은 고명을 위로두고 살얼음이 언 육수에 만두와 국수가 들어 있다.

 

 

한입에 먹기에는 크고 나누어 먹어야할 만큼 큰 만두는 속이 꽉차 있고 김치와 고기가 같이 씹히는 것이

고소하며 찰친데 감칠 맛이 입에 착 붙는다.

 

 

일반적인 고기만두와는 달리 꽉 짜버려서인지 보통 만두를 깨물 때 입안을 가득 채우는 육즙은 없다.

그릇속에서 만두를 꺼내어서 먹고 있는데,

박정자여사님께서 만두는 앞접시에 건져두고 하나씩 먹는 것이 더 맛 좋게 먹을 수 있다며 일러 주신다.

 

 

만두 [饅頭, 교자(餃子) mandu / Dumplings] 

 
원래 만두는 중국 남만인(南蠻人)들의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역사 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제갈 량(諸葛亮)이 멀리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자 종자(從者)가 만풍(蠻風)에 따라 사람의 머리 49개를 수신(水神)에게 제사지내야 한다고 진언하여, 제갈 량은 살인을 할 수는 없으니 만인의 머리 모양을 밀가루로 빚어 제사하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풍랑이 가라앉았다는 고사가 있어서 인데...


우리나라에는 조선 영조 때의 사람 이익(李瀷)의 글에 만두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인데 강감찬 장군과도 얽힌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 지는 것을 보면 이미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도 만두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만두가 상용식이 아니고 겨울, 특히 정초에 먹는 절식이며, 경사스러운 잔치에는 특히 고기를 많이 넣은 고기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또,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큰 잔치에서 끝을 장식하는 특별음식으로 대만두(大饅頭)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호두알만한 작은 만두를 큰 만두 속에 가득 집어넣어 만든 것으로, 이 대만두의 껍질을 자르고 그 속에서 작은 만두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절식으로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손쉽게 만두국을 끓여 먹으며, 흰떡을 섞어서 끓이는 경우도 많다.


익히는 방법에 따라 찐만두·군만두·물만두·만두국 등으로 나뉘고, 모양에 따라 귀만두·둥근만두·미만두·병시(餠匙)·석류탕 등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미만두는 예전에 궁중에서 해먹던 음식으로 해삼의 생김새처럼 주름을 잡아 만든 데서 생긴 이름이고, 병시는 숟가락 모양을 닮은 데서, 석류탕은 석류처럼 생긴 데서 붙은 이름인데, 옛날에는 궁중에서만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한국 속담에 ‘떡 먹자는 송편이요, 소 먹자는 만두’라는 말이 있듯이 만두는 껍질이 얇고 소가 많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
만두 소는 재료를 잘 다져서 섞고 양념하여 만드는데, 육류로 쇠고기나 돼지고기·닭고기·꿩고기 등이 쓰이고, 채소로는 김치·숙주·당근·오이·양파, 그 밖에 두부·당면 등을 쓴다.


요즈음은 육류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반반씩 섞어 쓰고, 숙주 대신 당면을 쓰는 경우도 있다.
만두국물은 육수, 쇠고기 맑은장국, 멸치장국, 다시마장국 등 어느 것을 써도 된다.


만두를 빚는 방법은 얇게 민 만두껍질을 원형으로 떠서 되직하게 버무려 놓은 소를 넣고 맞붙인 다음 다시 양귀를 맞붙여 둥글게 만든다.
이것은 본래 개성 지방에서 빚던 방법이고, 서울 지방에서는 반죽을 경단만큼씩 떼어 껍질이 얇아질 때까지 우물을 파서 소를 넣고 배 모양으로 맞붙이는데, 이때 양귀를 완전히 붙이지 않고 구멍을 조금 남긴다.

이렇게 하면 맛있는 만두국물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 한층 더 만두 맛이 좋아진다.
그러나 서울식 만두는 양귀가 늘어져서 터지기 쉬우므로 만두국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맛있다고 하니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

일반적으로 구운 만두가 아닌 튀겨낸 만두 같다.

아삭하니 씹히는 만두피의 고소함과 어우러지는 쫄깃하게 씹히는 속의 맛이 잘 어우러 지는 것이 풍미가 입안에 가득하다.

 

 

우리가 주문한 찐만두...

같은 만두로 한 것인데도 튀긴 것과 찐 것의 맛은 현저히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찐만두가 더 내 입에 맞는 것 같다.

 

 

만두는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남만을 점령할 때 포로의 목을 베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신 사람 머리모양으로 만두를 빚어 제사를 올렸다는 것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만두의 기원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없는 만들어낸 스토리(story)지만 그래도 만두를 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
둥글게 빚은 고기만두를 보면 사람의 머리와 닮았다고 상상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만두, 다시 말해 교자만두를 보면 아무리 봐도 사람 머리와는 모습이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머리 모양이 아니라 사람의 귀와 모양이 닮았다. 
 
이유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로 온 만두지만 일반 만두와 교자 만두가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같은 만두라고 해도 기원이 다르다.
역사적 사실을 떠나 만두가 만들어진 일화만 보더라도 일반 만두는 삼국지에서 촉나라의 승상인 제갈공명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반해 교자만두는 중국의 히포크라테스라고 불리는 장중경(張仲景)이 만들었다고 한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한의학에서 명의로 꼽히는 인물로 죽은 사람도 살려 낸다는 ‘편작’과 독화살을 맞은 관우를 치료한 ‘화타’가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앞선 인물로 한의학에서는 원조 대가로 장중경(張仲景)을 꼽는다.
해박한 임상 이론과 풍부한 임상 경험을 토대로 의학서적인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집필해 동양의 ‘히포크라테스’로 불린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쓴 허준(許浚) 선생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다.
장중경은 한나라, 특히 동한(東漢)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고향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등주(鄧州)인 남양군(南陽郡)인데 한나라 영제(서기 168년 – 189년) 때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서 태수를 지냈다.

 
잦은 전쟁으로 천하가 시끄러웠던 시기에 벼슬살이를 했던 장중경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남양군으로 돌아 온다.
이 무렵 정치는 부패해 나라에서 백성을 돌보지 않았고, 전염병까지 나돌아 수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다.
고향으로 돌아 와 보니 전염병과 추위 그리고 굶주림 때문에 백성들의 몸은 장작처럼 말랐고 혹독한 한 겨울 추위에 두 귀는 동상이 걸려 짓물러 터졌다.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헐벗고 귀는 얼어 터진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장중경과 제자들은 고향인 남양군의 동대문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백성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오늘날로 치면 의료봉사 활동이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장중경은 의사로써 쌓은 임상경험을 살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양고기와 후추, 그리고 추위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약재를 섞어 밀가루로 귀 모양의 반죽을 빚어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에 반죽한 만두 두 개씩을 넣어, 동상에 걸려 귀가 터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동짓날부터 설까지 계속해서 먹도록 했다.
그러자 몸 속의 피가 따뜻해지면서 양쪽 귀에 열이 올라 얼었던 귀가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동지부터 설까지는 겨울에서도 가장 추울 때다. 또 사람의 얼굴에서 체열은 70%가 귀를 통해 발산된다고 한다.
가장 추울 때 만두와 뜨거운 국물로 가장 예민한 부위인 귀의 동상을 치료했던 것이다.
이 때 만들었던 만두국 이름이 ‘거한교이탕(祛寒嬌耳湯)’이다.
문자 그대로 풀어 보면 “추위를 물리치는 예쁜 귀로 만든 국”이라는 뜻이 되겠다.


교자만두는 ‘예쁜 귀’라는 뜻의 교이(嬌耳)에서 먹을 식(食) 변이 붙어 ‘귀 모양으로 경단을 빚었다’는 뜻의 교이(餃餌)로 바뀌었다가 나중에 교자(餃子)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우리말이나 중국어나 ‘예쁘다’라는 뜻의 교(嬌)와 ‘경단을 빚다’라는 뜻의 교(餃)는 발음이 같다.

중국 속담에 “동짓날에 교자만두를 먹지 않으면 겨울에 귀가 얼어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백성들의 동상치료를 위해 장중경이 교자만두를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또 섣달 그믐에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교자만두를 빚어 먹는데 장중경의 전설을 기념하기 위한 풍습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만두 자체가 옛날부터 하늘에 제례를 올릴 때 사용했던 제수용 음식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만두의 원조는 중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과는 다를 가능성이 높고 만두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은 물론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 서 유럽과 러시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 유럽, 그리고 베트남, 인도, 태국 등 동남 아시아에도 널리 퍼져 있는 식품이다.

그러나 중국이 만두의 전파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것 같다.
1968년 실크로드 길목에 있는 중국 신강의 투르판의 당나라 무덤에서 나무 그릇 하나가 발굴됐는데 거기에는 완전하게 보관된 교자 만두가 담겨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실크로드를 타고 교자만두가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밀가루 피로 해산물, 닭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야채 등 각종 소를 싸서 먹는 음식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영국과 미국의 덤플링,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인도의 사모사스, 터키의 만티, 우크라이나의 부시카, 베트남의 차죠, 태국의 뽀삐아 사오비, 아르헨티나의 엠파나다스 등이 모두 만두의 일종이다.  출처 : IMCOOK

 

만두의 역사야 어떻든 우리 일행은 그 많은 만두와 만두국을 깨끗하게 비우는 쾌거[?]를 이루었다.

너무 맛있어서 마지막 남은 만두는 서로 눈치를 보아야 할 정도로...

ㅎㅎㅎ

 

 

혹시 만두를 즐기는 분이라면 추천하는 집이니 한번 들러 보시라...

대전에는 유성구 봉명동 561-6번지 유성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의 원조인 박정자사장님이 운영을 하시는 곳이니 '우리집만두'의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으리라!!!

 

 

아울러 서울에 계신 분이라면 서울 감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본점으로 가시면 될 듯하다.

 

 

나같은 촌분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서울이나 가가운 곳에 사시는 분들은 아래

본점의 약도를 참고 하면 될 것이고...

 

 

깔끔한 김치만두의 맛을 착한 가격으로 '우리집만두'에서 즐겨 보시라~~~

 

 

 

 

[2009년 5월 27일 대전 유성구 '우리집만두'를 다녀와서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