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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세월호로 바라 본 사고나라 대한민국, 사대주의·노예근성의 부메랑

 

 

사고나라 대한민국, 사대주의·노예근성의 부메랑

[특별기고]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권력에 기댄 기생정신에 탐욕 넘친 국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4-06-01 15:04:55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82세)가 제7회 언더우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주 방한했다. 그는 26일 “세월 호 사건은 미국에서도 큰 공포를 주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자신도 “25년 키운 아들이 1983년 6월 오스트리아에서 산악사고로 세상을 떠났고”고 말했다. 구원과 영성을 평생 연구해 온 그에게도 아들을 잃은 경험은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그는 그 아픔을 담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라는 책을 썼다. 책을 통해 그는 종교가 이런 저런 슬픔과 고통을 겪은 이에게 어떤 위로를 주어야 하는지도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슬픔에서 빨리 빠져나오라거나 다른 일을 해서 잊으라는 충고는 잘못 된 행위입니다. 슬퍼하는 사람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 낫지요. 그러면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합니다”고 한 신문을 통해 언급했다.

 

필자도 중학교 시절 6.25로 한 달 새에 두 형님을 잃고 대학 2학년까지 6년간 우울한 세월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공감이 간다. 세월호의 비극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참사다. 모든 국민들의 비통한 마음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필자도 천근만근의 마음이 무거움을 느끼면서 본 칼럼을 쓰게 된다. 꽃다운 청소년들의 죽음과 그 유가족들에게 뭐라 위로의 말을 전할 길이 없다. 또한 이 학생들을 살리려 애쓴 숭고한 정신의 교사와 의인들, 책임감에 고통을 느끼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교감선생님 등에게 머리 숙여 명복을 기원한다.

 

사대주의 사상이 빚은 참극이다

 

세월호 참사는 오늘날 우리의 정신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인간의 탐욕 그리고 교육과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데서 빚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것은 첫째로 조선조 500년 임금의 권력주변에서 살아온 노예근성에 준하는 기생적 타성, 한·일 합병 후 36년 간 총독부 권력주변에서 살아온 사대주의사상 등이 빚은 결과다. 정신적으로 권력주변에서 살면 양심의 자유 독립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조선조 때나 일제 때 권력주변에 기생하면서 살아온 정신들이 깃들어 있어 사회가 온통 구조적으로 병들어 있다. 이를 부정 할 수가 없다. 탐욕과 물질만능이 빚은 결과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지금 우리의 정신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19세기 말 일제의 침략과 조선총독부의 한민족 말살정책으로 인한 식민사관은 정신분열을 가속화시켰다.

 

둘째로 사회의식이 전혀 없는데서 일어난 참사다. 우리 사회를 보면 사회의 종적(從的)인 생활은 있어도 횡적(橫的)인 삶이 없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기업인, 학자, 관료 등 사회 오피니언 리더그룹에서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를 보나, 언론을 보나, 학계를 보나, 재계를 보나, 관료집단을 보나, 교육계를 보나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돼 있다. 21세기는 열려져야 하고 국제상식이 통하는 개방사회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해방 70년이 다된 오늘에도 이 같은 상식이 없다. 종교도 봉사정신에서 개방사회로 달라져야 하는데, 개방사회 의식이 없으니 민족의식이 없다. 민족의식이 없기 때문에 참된 민주주의도 완숙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 까지도 교회주의나 물량주의 그리고 천국만을 사모하는 교회로 전락했다. 덴마크의 구룬드 비 목사의 “하나님을 사랑하자”, “조국을 사람하자”, “국민을 사랑하자”는 운동이 아쉬운 오늘이다.

 

불신감이 팽배한 사회가 빚은 비극이다

 

오늘날 우리는 법을 불신하는 사회가 됐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힘이 있거나 권력의 배경 그리고 5~60년대의 주먹 등이 근래는 6법 외에 무법, 탈법까지 8법에 떼를 쓰는 떼 법까지 모두 9법이 만연하는 사회가 됐다고 할 정도다. ‘국민을 불신하게 하는 정부는 국민의 불신을 받는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 정부만의 책임을 묻는 것은 오히려 비약이다. 제2차 대전 후 독일과 일본도 우리와 같이 9법이 통하는 시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도 한 때 우리와 같았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법을 엄격히 적용해서 무법·탈법·떼법을 일소했다. 우리사회 같이 정의가 없는 불공정한 사회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우리는 아직도 부정부패의 고리와 불법의 고리를 못 끊고 제자리걸음이다. 불법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선동만 잘 하면 말을 바꾸기 일쑤다. 결국 전과자나 병역을 기피한 군 미필자 등이 정치판을 판치는 사회가 됐다. 선진사회는 지도급에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솔선수범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협잡꾼, 사기꾼들이 여전히 난무하고 있다. 국민도 이를 잘 가려내야 하지만 너무 쉽게 선동에 넘어가는 것이 문제다. 그 원인의 기저는 우리가 너무 독서를 하지 않은데서라는 말을 하고 싶다. OECD 국가 중에도 제일 책을 안 읽는 국민이 바로 우리다. 교육과 훈련도 없다. OECD 평균 1인당 1000폐이지를 독서하는데 반해 우리는 고작 8폐이제 그친다. 이웃 일본 국민들은 1인당 연평균 책 10권 이상을 읽는데, 우리는 채 10페이지가 안 된다. 이런 정신으로 우리가 언제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고, 또한 일본을 이기겠는가. 독서는 장수의 비결이기도 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독서는 우리의 살길을 제시해 준다. 법을 반드시 지키는 사회가 돼야 하기 때문에 불법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책 속에 그 지혜와 공공의 선들을 지키고자 하는 양심이 들어 있다.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을 버려야 산다

 

일본은 우리의 위대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말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칙하에 우리역사를 절반이하로 잘라버리고 단군을 신화로 꾸며대는 만행을 저질렀다. 단군이전의 환국 53대 3301년, 배달국 18대 1565년 등을 거론조차 하지 않고 일본이 마치 고대부터 우리를 지배한 양 역사를 조작·날조했다. 이는 우리의 ‘위계질서’ 문화를 무너뜨리게 해 혼란에 빠지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 조선민족이 책을 즐겨 읽으며 갖은 신념의 선비정신도 사라지게 했다. 조일전쟁(임진왜란)때 의병에게 비참한 패전을 맛본 일본은 한민족 정신 말살이 우선이라고 보고 실제 행동에 옮겼다. 일제는 ‘조선사편수회’로 하여금 우리의 역사를 말도 안 되는 휘치필법(諱恥筆法)으로 꾸며 놓았다. 이를 통해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을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심어 놓았다. 주지하다시피 휘치필법 역사기술은 ①승리는 과장(誇張)하고 ②패배는 고쳐서 개서(改書)하며 ③망명(亡命)은 서술(敍述)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서술 방식이다. 한마디로 제멋대로 쓰여 진 책이 일본 역사서임에도 우리는 아직도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직도 만연된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을 못 벗어 던지고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민족이 되고 말았다. 그 병적 예후는 세월호의 사태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사태 후 유병언은 나와서 죽을 죄를 지었다고 무릎을 꿇고 사죄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신출귀몰한 도피행각까지 벌이고 있으니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한심한 인간말자같은 행각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대통령의 책임인가. 자고나면 일어나는 산불과 가스폭발 화재 등도 우리들 자신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없는데 있다. 본래 우리는 이처럼 열등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우수한 문화는 열등한 일본에 개명을 하게까지 했다. 우리는 4세기 경 석기시대의 삶을 사는 미개한 일본을 깨우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열등의식과 패배의식 속에 만신창이가 돼 있다.

 

고대부터 중국을 깨우치고 일본을 개명사회로 이끈 우리 한민족이다. 우리는 일찍이 2세기경 한국남부의 가야(伽倻)귀족 일부가 바다를 건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일본열도의 구주(九州) 북부에 도착, 영농과 금속기 기술을 전달하고 그들의 야요이문화(彌生文化)가 일어나도록 했다. 이때 일본은 거의 원시석기시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 후 서기 396년~5세기 경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신라를 도와 남부를 원정해 백제를 정벌(396년)한 이래 백제왕족과 귀족일원 그리고 백성들이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게 됐다. 이들은 기존 가야세력을 물리쳤다. 백제계가 일본을 제패(制覇)h한 후 고 왕인박사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문화와 기술을 전수시키고 아스카문화(飛鳥文化)를 일으켰다.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은 815년 칸무(桓武)천황의 왕자가 편찬한 책인데, 고대 일본의 황족과 귀족의 계보가 적혀있다. 그 중 황족의 계보에는 천황이 백제인 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나 ‘고사기’ 보다 100년 앞서 쓴 신황기(神皇紀)에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 건너가 통치한 왕과 왕후들의 기록이 자세히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학자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도쿄대학의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 교수는 ‘기마민족 국가설’에서 “3세기경 북아시아에서 활동하던 기마민족이 부여·고구려를 거쳐 가야 방면에 정착하고 있다가 4세기 초 북 구주로 이동해 다시 기나이(畿內,지금의 京都府 奈羅縣) 지방으로 진출해 장차 일본열도를 통일하게 될 국가의 모체를 형성했다”고 했다. 이 때가 4세기 말엽이다. 일본의 천황족(天皇族)이란 결국 가야출신이며, 천손강림(天孫降臨)이란 가야에서 북구주로 옮겨온 것을 의미한다고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 교수는 언급했다. 이는 동북아시아와 가야·야마토 지방에서 출토되는 무기·마구(馬具) 등 고고학적 출토품의 유사성에 드러난다. 또 일본의 건국신화가 부여·고구려·금관국(金官國)의 그것과 유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5세기경의 중국문헌 등을 참고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세궁(伊勢宮)에 모시고 있는 36신위(神位) 중 첫 번째가 가야 신위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들 신위의 제문도 우리말이다. 일본은 4세기 이전에는 말(馬)도 없었다. 가야에서 말을 가져간 것이 처음이다.

 

위대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민족 긍지를 가져야

 

세월호 사태를 보며 우리는 “역사에서 살길을 배워야 한다”는 키엘케골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세한 문화는 열등한 문화에 압력을 갖고 가까이 간다. 우리는 지난날 일본을 위엄으로 대하며 그들을 깨우쳤으나 일본은 망나니가 되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양심적인 학자들은 ‘일본서기’에 대해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열도 진출을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조작, 변조 투성이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꾸며진 역사의 표본이다. 역사서가 아니라 (권력 이동의) 삼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한국이 일본의 뿌리이자 선조임은 확고부동한 진실이다. 일본은 온갖 침략과 역사왜곡, 망언 등으로 자신들의 열등의식을 잊으려고 우리에게 열등의식을 심고 있으나 우리는 이제 이를 훨훨 털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가 없다. 잘못 길들여진 대중화주의사관(大中華主義史觀)과 반도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은 오늘날까지도 날조된 사관을 배제하지 않고 우리 민족혼을 갉아먹고 있다. 이를 바로 잡는 첩경은 젊은 사회의 정의감이다. “사회주의에 미쳐보지 못하면 바보요. 이를 믿는 것은 더욱 바보”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이데올로기 본질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세월호의 참사책임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제 세월호 같은 참사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로 봐야 한다. 내달 4일은 시도지사·지자체장 및 기초·광역의원 등을 뽑는 날이다. 이번 기회에 진실 된 후보를 잘 뽑아야 한다. 아울러 후보 중 전과자와 병역기피 자는 솎아 내야 한다. 그런데 제주군항을 반대하면서 교활하게 말을 바꾸는 위선자들이 더 인기가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국가수호보다 눈앞의 달콤한 말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말만 잘하는 위선자는 추방돼야 마땅하다. 자기야욕을 위해서는 우면산 사태가 인재인데도 천재로 둔갑시키는 자가 더 인기가 있는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우리의 무역항로와 우리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제주군항은 필연적으로 건설해야 함에도 이를 반대한 자들까지 구별을 못하는 것은 문제로 여겨진다. 우리나라는 군항이 하나가 아니라 몇 개가 더 필요하다. 중국은 23개의 군항을 갖고 ‘이어도’도 자기관할구역이라고 우기는데 제주군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하는 생각에 미치게끔 한다. 세월호의 참담한 참사도 정도(正道)를 가지 않고 탐욕과 이기주의가 낳은 결과다. 다. 말이 많은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멀게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한 가치관의 변질로 공동체 의식이 없고, 연대의식과 위계질서가 없는 것이 근본 문제라는 것이다. 이기주의와 한탕주의 등이 판을 친다. 이런 세태가 낳은 결과가 우리 사회의 사건·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나라나 유치원 교육부터 초등교육은 기초질서를 지키는 ‘시민생활의 훈련’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공부만 잘해라’, ‘출세만 하면 된다’는 교육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대입 시험제도 또한 장관이 바뀔 때 마다 38번이나 바뀌었으나 개선된 것이 무엇인가. 교육부는 있으나 마나한 부처가 돼 버렸다. 대입제도는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더 낳은 것 아닌가. OECD 34개국 가운데 자살율, 교통사고, 과로사, 산업재해율 등이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들이 아닌가. 예의가 없고 신의가 없으며 청렴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잘못에 부끄러움도 모르는 몰염치가 판을 치고 있다. 이 사태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 장치가 있는가. 법질서가 서지 않고 솔선수범을 해야 할 지도층이 제자리에서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는가.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은 숨겨 놓은 채 남의 탓만 하는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민행복지수가 우리의 경제수준과는 안바란스(unbalance) 한 것이 왜인가. 우리나라 교육정책도 문제지만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 과정의 맹점을 제대로 짚고 가야 한다. 가치관 교육과 인성교육의 내실이 문제다. 특히 대학교수도 연구는 뒷전인 채 감투에 눈이 어두워 보직만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80년대 초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보부장을 겸임하며 새 정권탈취를 위해 ‘데모하는 대학생을 퇴학시켜라’ 했을 때 이를 질서 벌로 다스려야 했지 퇴학을 시킬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도(正道)를 걸은 대학교수가 몇 명이 있었는가. 한명도 없었다. 이는 우리사회가 죽어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최고 지성인이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조선조 때 깨어있던 선비들은 9족(九族)을 멸해도 옳은 것은 옳다고 하며 장렬히 자기 몫을 지킨 사례가 많다. 우리는 제몫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이번 세월호 사태를 보며 죽음을 앞두고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버린 의인들이 아직 우리사회에 있는 것을 보고 그나마 위안과 감동을 받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된다. 그분들의 숭고한 살신성인의 정신에 머리 숙여 존경과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또한 어린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곱디고운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이들을 잃은 우리들의 애절함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다. 못다 핀 꽃다운 학생들의 그 모습, 그 음성들이 영원히 메아리 쳐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이다. 유가족들에게 한없는 위로의 말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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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9일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세월호 대학살을 생각하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