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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축재

5.16을 맞아 생각하는 박정희시절의 고도성장? 박정희의 경제 실정에 대한 이야기 박정희 정권이 외환위기를 네 차례나 초래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역사 속에 묻혀 있다. 첫째 위기는 1963년에 발생했다. 금융기관 동결, 정치자금 조성이 빚은 증권파동, 화폐증발 및 물가폭발과 그에 따른 화폐개혁 등이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를 발생시켰다. 미국의 긴급 지원을 받았음에도 위기가 지속되자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하여 외환을 구걸하였다. 둘째 위기는 1968년에 발생했다. 물가상승률이 매년 20% 전후에 이르자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국제수지 적자가 커졌고, 결국 외환보유고가 고갈 직전에 이르러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셋째 위기는 1971년에 발생했다. 국제수지 적자가 계속 누적되자 차관을 들여와 소위 차관기업을 147개나 설립했는데, 과도한 정치자금의 조성이 대기업을 포함하여 60% .. 더보기
박근혜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의 스위스 비밀 계좌와 이후락 부정축재 박정희 정권 시절 10년간 중앙정보부장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10월31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임자인 김형욱 중정부장과 함께 박 대통령 심복을 자임하며 온갖 공작정치로 유신독재 체제의 기반을 닦은 이후락씨는 한국 현대사를 암흑으로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해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으로 권력 전면에 등장한 이후락씨는 그 뒤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하자 39세의 나이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 아래 6년간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1970년 6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다시 3년 동안 악명 높은 정치 공작을 벌여 유신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