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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한겨레성한용칼럼]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
성한용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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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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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한용 선임기자
김형오 국회의장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막힌 국회 출입문을 돌아서 달려온 원혜영 원내대표는 땀을 흘렸다. 김형오 의장이 건네준 휴지로 땀을 닦았다. 김형오 의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다. 최선을 다한 뒤에 역사적 평가를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

 

문국현·원혜영 원내대표도 짧게 한마디씩 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눈을 감고 듣기만 했다. 5일 오후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국회의장과 3당 원내대표 회담은 그렇게 시작됐다.

 

해를 넘기며 이어진 국회 파행 사태는 대한민국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다. 예산 관련 법안이 제 날짜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전체 국민이 손해를 보게 됐다.

 

한나라당은 172석의 다수 의석을 가지고도 무력감을 맛보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당에서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소망했던 장관직도 날아가게 생겼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불법 점거’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신사’ 이미지에 왕창 금이 갔다. 안경도 깨졌다.

 

김형오 국회의장, 박계동 사무총장은 형사고발을 당했다. 당직자·보좌관들과 국회 경위·방호원 여러 명이 다쳤다. 국회 취재기자들도 며칠 동안 날밤을 샜다. 파업과 집회에 나선 언론노조 조합원들, 서울경찰청 기동대는 여의도 ‘칼바람’을 맞으며 생고생을 했다.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가해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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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원이 답을 내놨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 몇 해 전 유행어인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를 흉내 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85개 법안 무더기 처리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나라당 의원은 “12월 초에 발의해 상임위 심의도 안 거친 언론관계법안을 직권상정으로 처리하면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했다. “미디어 발전에 왜 언론인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고도 했다. 그렇다.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는 진짜 소신파도 꽤 있다. 그들의 충정을 인정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의원들도 많다. 그래서 자유투표를 하면 된다고? 왜 이러시나. 서슬 퍼런 대통령 권력에 맞서 반대표를 던질 여당 의원은 없다.

 

이런 사정을 살핀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을 주저하자 청와대에서는 ‘배신자’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평소 점잖은 김형오 의장도 꽤 분노했다고 한다. 그의 측근들은 “국회가 청와대 여의도출장소인 줄 아느냐”, “지금이 국보위 시대냐”고 식식거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 독선적일까?

 

옛 장면을 잠시 떠올려 보자. 1996년 12월26일 새벽 6시 국회 본회의장 ‘노동법 날치기’를 감행한 신한국당 의원 155명 중에는 이명박 의원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어섰다 앉았다를 되풀이하며 6분 만에 11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책위의장 이상득 의원도 있었다. 국무위원 자격으로 출석한 한승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도 본회의장에 앉아 있었다. ‘제왕적 총재’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거수기’였던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고, 다른 한 사람은 ‘형님’이 됐다. 국무위원은 총리가 됐다. 격세지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혹시 당시의 ‘제왕적 총재’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부모에게 맞고 자란 사람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쉽다.

 

‘하면 된다’는 옛날 군인들이나 건설회사의 구호였다. 정치에는 ‘해도 안 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은 멸종한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모르면 깨우쳐 줘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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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성한용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