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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월의 산/들꽃

초패왕 항우와 우미인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우미인화 포피 애기아편꽃으로 불리는 개양귀비이야기

 

 

 

 

 

중국 중당 기(中唐期)의 시인 백거이는 <장한가> 중에서 양귀비[楊貴妃]에 대해 이렇게 읊었습니다.

 

漢皇重色思傾國 한 황제 사랑 그리워함에 나라는 기울어가네
御宇多年求不得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구할 수 없구려.
楊家有女初長成 양씨 가문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養在深閨人未識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누구도 알지 못하나
天生麗質難自棄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 뽑혀 군왕 곁에 있도다.
回眸一笑百媚生 눈웃음 한 번에 모든 애교가 나오니
六宮粉黛無顔色 육궁에 단장한 미녀들의 안색을 가렸다오.
春寒賜浴華淸池 봄추위에도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하여
溫泉水滑洗凝脂 매끄러운 온천물에 기름진 때를 씻어내고
侍兒扶起嬌無力 시녀들 부축하여 일어나니 아름다움에 당할 힘이 없도다.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미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양귀비하면 아직도 꽃 중의 꽃이라 일컫고 꽃 가운데에서 섬세하고 화사하기로는 양귀비를 따를 것이 없습니다.

 

양귀비는 미모도 뛰어났겠지만 방중술이 특히 뛰어 났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아름다움과 방중술처럼 중독성이 강한 마약성분 아편이 든 꽃에 양귀비란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귀비는 일반에서는 키울 수가 없습니다.

양귀비에 있는 아편이라는 마약성분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양귀비꽃의 이런 면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무슨 근심에 잠긴 듯 보다 가녀려 보는 사람에게 가련한 느낌을 주는 꽃으로는 우미인초(虞美人草)를 많이 심는 것 같습니다.



 

쌍떡잎식물 양귀비목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이며 우미인초(虞美人草)·애기아편꽃이라고도 불리는 개양귀비꽃입니다.

주로 관상용으로 심으며 한방에서 해수·복통·설사 등에 처방한다고 하니 양귀비과는 어느 정도의 약리성분이 있나 봅니다.
양귀비와 비슷한 꽃이 피기 때문에 개양귀비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우미인초라고 하느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초(楚)나라 항우의 애첩 우미인이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포위되자, 술자리에서 석별의 정을 읊는 항우의 시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 뒤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우미인의 무덤에 핀 꽃이라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초패왕 항우(項羽)가 한고조 유방(劉邦)에게 쫓겨서 해하(垓下)에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오랜 싸움으로 군량은 떨어지고 장졸들은 지칠대로 지친 데다 사방은 한나라 군에 포위된 상태, 그런 사정을 안 장자방은 밤이 깊자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생각이 나게 하여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계략으로 계명산에 올라가 초나라 군사들이 있는 진영을 향해 애절하고 구슬픈 가락으로 통소를 불어 댑니다.

그렇지 않아도 싸움에 지쳐 고향 생각에 젖어 있던 초나라 군사들은 그 슬픈 가락을 듣자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지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둘 한나라 군의 진영으로 넘어가고 심지어 항우의 숙부마저 적진에 투항하고 맙니다.

넘어간 초나라 군사들이 초나라 노래를 부르니 사방이 온통 초나라 노래였는데 잠자던 항우가 그 노래를 듣고 한나라 군이 벌써 초나라를 다 점령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가 나오게 된 유래인데, 이미 천운이 다함을 알게 된 항우는 다음날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하게되지만 그가 사랑하는 우미인(虞美人)이 문제였습니다.

 

항우는 그날 밤 주연을 베풀어 우미인과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 유명한 해하가(垓下歌)로 이렇게 탄식합니다.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휩쓸고도 남았지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추不逝) 형세 불리하니 오추마조차 나아가질 않네

추불서혜가나하(추不逝兮可奈何) 오추마 같은 것이야 어찌해 본다지만

우혜우혜나약하(虞兮虞兮奈若何)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 할거나?



 

우미인은 피를 토하듯이 탄식하는 항우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이렇게 노래하며 춤을 춥니다.

 

한병기약지[漢兵已略地] 한나라 병사들은 이미 모든 땅을 덮었고
사방초가성[四方楚歌聲] 사방에는 초나라 노래뿐인데
대왕의기진[大王意氣盡]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천첩하료생[賤妾何聊生]
내 구차히 살아서 더 무엇하리


 

이렇게 노래와 춤을 마친 우미인은 항우가 차고있던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찔러 자진하고 맙니다.

 

항우는 사력을 다하여 탈출에 성공하지만 오강(烏 江)에 이르러 패장으로서 저 혼자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자기 목을 찔러 자진 하고 맙니다.

 

이 대목이 중국의 유명한 경극 패왕별희[覇王別姬]의 클라이막스입니다.


그 후 우미인의 무덤 위에 비단처럼 얇고 붉은 빛을 띈 꽃이 예쁘고 가련한 듯이 피어나고 사람들은 그것이 우미인의 넋이 꽃으로 화한 것이라 하여 그 때부터 우미인초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증자고(曾子固)의 우미인초란 시 입니다.

 

우미인 초 /  증자고

 

홍문에서의 옥두는 눈 처럼 분분히 날렸고 십만 초병은 밤새 피를 흘렸다.

함양의 궁전은 석달 동안 불타올랐는데 항우의 패업의 꿈도 연기 속에 사라졌네 


너무 강하면 반드시 꺽이고 어질어야 제왕이 되는 법인데, 음릉에게 길 잃음은 하늘이 버린 것이 아니라네
영웅은 본시 만인을 다스려야 하는 , 고작 곱게 단장한 여인을 슬퍼해야 무슨 소용인가

 

삼군이 다 흩어지고 깃발은 부러졌으니 휘장속의 미인도  앉은 자리에서 늙어 버렸네

향기로운 혼은 검광과 함께 날아 오르고 한 서린 푸른 피는 들판위에 풀 되었네


미인의 꽃같은 마음을 찬가지에 걸쳐 놓은 것이 옛 노래에 눈썹 찡그림 같구나..
애원하고 흔들리며 말없이 수심에 잠긴 모습은 마치 처음 초나라의 노래 들었을 때 같아라


도도히 흐르는 오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건만 한초의 흥망도 이젠 언덕의 흙이 되었네

옛 이야기들도 모두 허공에 흩어진지 오래련만 우미인초는 슬픔 안고 춤추며 하늘댄다.

 
우미인과 초패왕의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항우의 해하가를 우미인초 앞에서 부르면 꽃은 바람이 없어도 흐느끼듯 하늘 하늘 몸을 떤다고 하는데...
^^

그저 전설이겠죠?

 

 

 

楊鈺瑩(양옥영)-落花

 

 

 

[2011년 5월 27일 계룡산 갑사입구 죽림방에서 아름답게 핀 개양귀비를 보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