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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아직은 이 대통령 사랑 못하겠습니다

"신부님 말씀 듣고 이틀밤 생각했지만 아직은 이 대통령 사랑 못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항복하는 날 촛불을 끄겠습니다  
  강기희 (gihi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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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편이 아닌 국민 편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강기희  시국미사 
 

신부님, 어둠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새날이 밝은 것입니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빛을 이기는 어둠은 없습니다.

대지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땅을 지배하던 어둠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인가 봅니다.

 

사제단 신부님들 덕분에 모처럼 단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가리왕산 자락으로 실안개가 고요히 감겨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 먹구름을 잔뜩 이고 있는 하늘이지만 신령스러운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평화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입니다.

들려오는 새소리도 평화입니다.

밭 가운데 꽃을 활짝 피운 개망초꽃도 평화입니다.

꽃잎을 가득 열고 어둠의 시간을 보낸 달맞이꽃은 밤을 지켜낸 평화입니다.

 

간밤에도 신부님들은 달맞이꽃처럼 깨어서 시청앞 광장을 지켜 주셨습니다.

나승구 신부님의 말씀처럼 신부님들께서는 '밤 사이 누군가 시청앞 광장을 가지고 갈까 싶어' 뜬 눈으로 아침을 맞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들로 인해 시청앞 광장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촛불이 켜지기 시작한 지 두 달째 되는 날입니다.

지난 두 달여 동안 국민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 국민들이 신부님들께서 뜬 눈으로 시청앞 광장을 지켜주시기 시작하면서 모처럼 단잠을 이루었습니다.

시국 미사가 있던 첫날에 이어 지난 밤까지, 이틀 간의 단잠으로 지난 피로가 다 풀려 버렸습니다.

 

간밤,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딸들이 모처럼 단꿈을 꾸었습니다.

아들뻘 되는 전경대원의 방패와 곤봉을 피해 도망쳐야 했던 수많은 아버지들도 단잠을 잤습니다.

친구가 휘두르는 방패에 맞아 피를 흘린 젊은이들도 오랜만에 지친 몸을 쉬게 하였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도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일부 언론이 국민을 이간질 시켜도 견뎌 냈습니다.

지치고 힘들고 외로울 때 신부님들께서 나타나 주셨습니다.

모세의 기적처럼 시청앞 광장으로 가르며 국민들 곁으로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국민을 편안히 잠들게 해야 할 임무와 의무가 있는 이들은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고, 어느 한순간이라도 편안하게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국민을 편안하게 잠들게 한 것은 신부님들이었습니다.

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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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신부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들이 시국미사를 올리기 위해 시민들 사이로 입장하고 있다.

신부님들이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이 어딨어!!" 라며 대통령을 꾸짓는다. 
ⓒ 강기희  사제단 
  

저는 강원도 정선 땅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입니다.

세상에서 비켜나 조용히 살고자 선택한 시골행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난 두 달 동안 절반 가까운 시간을 광화문에서 보냈습니다.

어차피 잠을 이루지 못할 바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촛불들과 밤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울행 버스를 타곤 했습니다.

세상 일에 눈 감고 귀 막고 있을 수 없어 서울로 갔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기에 서울로 갔습니다.

인적 드문 산골짜기에 일흔 여섯의 노모를 홀로 두고 서울로 가곤 했습니다.

불효자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꺼져가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일이라면 그 일도 감수하겠다고 작정한 서울행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되찾는다면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저는 서울에 있었습니다.

광란의 밤을 보았습니다.

미쳐 날뛰는 이명박 정부의 포악함을 보았습니다.

짓밟히는 민주주의를 직접 목도했습니다.

국민을 무참히 밟고 지나가는 이명박 정부의 악랄함을 보았습니다.

방패와 곤봉에 맞아 피흘리는 국민을 보았습니다.

방패에 찍히면서 내는 숱한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거칠게 내리는 비와 함께 쓸려 내려가는 피를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 앞에서 연행되었습니다.

처참했습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김인국 신부님의 말씀처럼 '국민으로서 대통령에게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달라고 요구한 것 뿐'이었습니다.

김인국 신부님은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인격이고 곧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그런 인격과 예의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만과 교만으로 국민을 짓밟았습니다.

방패와 물대포를 동원해 국민을 찍어 눌렀습니다.

 

국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분노했습니다.

그 시간 국민들은 흐르는 피를 빗물로 씻어냈습니다.

아무도 닦아 주지 않는 눈물을 제 스스로 훔쳐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신음하는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경찰의 방패에 맞아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 걸린 쇠고기를 먹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물대포에 맞아 허리가 꺾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란의 밤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해가 쨍하고 떴습니다.

공포가 사라지고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그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날의 역사는 이제 제 가슴에 화인처럼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진정한 평화가 오면 국민이 당한 오욕과 굴욕의 역사를 가감없이 기록해낼 것입니다.

그 기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역사의 죄인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한 줄의 글이 방패보다 무섭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손들이 조상을 부끄러워 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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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명한 국민. 공안 정권이 어떻게 종말을 맞는지 국민은 안다. 
ⓒ 강기희  공안정권 
 

6월 30일 저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 현장에 있었습니다.

꺼져가던 민주주의의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눈시울을 적시며 그날의 감동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김인국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국민이 그동안 대통령을 만나려고 하고 찾았던 것은 그에게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번번이 버렸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동안 국민들이 왜 그렇게 목놓아 이명박 대통령을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도 그를 버리면 그만인 것을 말입니다.

 

신부님, 이명박 대통령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승리할 수 있는 일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버렸듯 국민도 대통령을 버리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백성 없는 대통령이 무슨 대통령이겠습니까.

그런 자를 누가 대통령이라 인정하겠습니까.

 

그날 국민은 대통령을 찾지 않고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걸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이민자들처럼 대통령을 버리고 남쪽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통쾌한 일이었지만 가슴으로는 서글펐습니다.

감동이 밀려와 눈물을 흘렸고, 서글퍼서 울었습니다.

 

시국 미사를 끝내고 거리를 걷는 국민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환했습니다.

국민들은 거리를 걸으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치유해 주었습니다.

옆에서 걸어가는 지친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습니다.

분노했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를 걸으면서 그날처럼 행복했던 적도 없었습니다.

 

"국민을 폭력으로 짓밟는 대통령의 교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파는 일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신부님은 이명박 대통령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신부님은 국민들에게 "이명박 대통령도 사랑합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이틀 밤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이명박 대통령은 사랑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를 사랑하려면 그가 한 모든 일을 감싸 주어야 하는데, 그 일만은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어청수 경찰청장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국민을 피 흘리게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천여명에 가까운 국민을 연행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 마디 사과의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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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의 파수꾼. 대통령의 교만과 무능이 민주주의를 짓밟는다. 
ⓒ 강기희  단식기도 
  

그들의 당당함과 오만함이 있는한 절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짓밟는 그들의 폭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한 그들과 절대로 친해질 수도 없습니다.

국민들이 서툰 글씨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쓰던 때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라는 걸 신부님도 아실 겁니다.

그러함에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항복하는 날 촛불을 끄겠습니다

 

신부님, 원수조차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을 사랑하자는 말씀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국민을 짐승처럼 대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어청수 청장을 사랑하는 것은 또 다른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국민의 존엄을 인정할 때까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는 그들과 친해질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신부님,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낮은 이들이 살아가는 온누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 순간 서울 시청앞 광장을 지배하던 어둠도 물러났을 줄 압니다.

신부님들게서 어둠을 지켜주신 덕분에 긴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이 그럽니다.

이제 서울은 그만 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 할 수 없습니다.

전국민이 평화의 촛불을 들 때까지 서울로 갈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되찾아 올 때까지 서울로 갈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만과 교만함을 버릴 때까지 손에 든 촛불을 내려 놓지 않을 것입니다.

 

신부님,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실 하나만을 믿고 촛불을 밝히겠습니다.

간밤에도 신부님들은 국민들이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고, 병든 미국산 쇠고기 먹지 않아도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항복하는 날, 조중동이 왜곡보도를 멈추고 국민들 편에 서는 날, 그날 촛불을 끄겠습니다.

 

시청앞 광장에 날아든 비둘기들이 전경의 고함소리에 도망가지 않는 날을 간절하게 소망하면서 두서 없는 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위기에 빠진 국민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촛불의 파수꾼이 되어 단식 기도 중인 신부님들의 건강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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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님들의 거리행진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 강기희  사제단 
 

 

2008.07.02 15:33 ⓒ 2008 OhmyNews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38461&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