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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지금 청와대에는 프로게이머가 산다

지금 청와대에는 프로게이머가 산다

[작가회의, '촛불' 릴레이 기고] 시인 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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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고 하겠지만 웬만한 젊은이들이라면 한때 이 게임 앞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잠을 설칠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스타크래프트는 수많은 팬들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게임으로 한국엔 프로게이머라는 신종직업이 생겨났다.

 

게임은 대충 이렇다.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의 세 종족이 행성을 차지하기 위해 일꾼으로 미네랄을 모아 병력 키우고 건물 짓고 한바탕 싸워서 정복하고 정복당하고 하는 단순한 내용이다.

뜬금없이 웬 게임 얘기인가 하면 지금 청와대에 프로게이머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술이 좋지 않아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드는 불행한 게이머라 할 수 있겠다.

 

이명박 정부가 나라를 다스린 지 100일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록 남대문이 불탔지만 새로운 명물인 명박산성이 완공되었고, 기존의 낡은 시위방식을 탈피한 촛불이라는 새로운 저항문화가 생겨났다.

놀랍지 않은가. 정치를 모르던 아이들조차 현 정부에 와서 참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왜 아이들은 쇠고기재협상을 외치는가.

왜 대통령은 그런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게 되었나.

이유는 간단하다.

현 정부는 국가를 한낱 컴퓨터 모니터에 펼쳐진 게임의 맵(Map)쯤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옥같은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결코 그의 종교를 부정하거나 폄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진정 프로게이머로서 자질을 타고난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인식대로라면 이 같은 말은 당연히 옳다.

당시 그의 서울은, 나아가 이제 그의 국가는 그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무적해병이자 우주선이자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일 테니까.

이렇듯 국가는 그의 소유가 됐으니, 까짓것 마음만 먹으면 더한 것이라도 바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라가 개판이 돼가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대통령께서도 청와대에 입성한 후 나름대로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포부가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라는 거대한 맵을 펼쳐들고 운하를 어떻게 파내려가야 할 것인가,

공기업을 누구에게 넘겨야 할 것인가,

강대국인 미국을 위해 무엇을 바쳐야 할 것인가 등등

미네랄이 부족한 한반도라는 황량한 대륙을 바라보며 무지한 백성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알까 모를까 나라걱정으로 허구한 날을 보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간과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프로게이머로서 전술이 좋지 않다는 점과 인터넷게임에는 없는 생명이라는 가치를 몰랐다는 것이다.

 

그의 입김에는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으니 당연히 인간에 대한 존엄성도 없다.

매사에 쉽게 내뱉고 쉽게 단정짓는다.

그저 전 국민을 오륀지화시켜 뛰어난 병력으로 만드는 게 그의 목적인 듯하다.

적에게 몰살당하더라도 다시 재생산하면 될 것이고 게임에 패하면 두 손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역사가 왜 현재까지도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는지, 단지 전 국민을 오륀지로 업그레이드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라는 거대하고도 다양한 집합체에 대해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얼마 전 미국산 쇠고기를 위한 청문회가 있었다.

광우병 걸린다, 안 걸린다, 두 진영으로 나뉘어 열띤 공방을 펼친 끝에 정부는 귀를 닫고 있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다시 인수위에서 보여줬던 우왕좌왕의 재주를 현재까지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고 여기는지 머리를 완전히 숙이지 않고 있다.

 

행여나 쇠고기내장세트가 수입되어 나중에라도 별 문제 없을 경우 이명박 정부는 이런 말을 하지나 않을까. "그것 봐. 미친 소 먹고 뒈진 사람 하나도 없잖아. 된장!" 정말 이 말이 나올까 무섭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그저 국가를 걸고 가상전투를 펼치고 있는 그의 자질을 여과 없이 확인하는 대목이 될 테니까.

 

왈가왈부를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국민의 생명이 직결된 문제를 놓고 확률로 판단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수치와 통계가 확실함과 같을 수 있는 것인가.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녹슨 못에 찔렸는데 엄마 왈 "괜찮아. 이걸로 죽은 사람 못 봤으니 집에 가서 빨간약이나 바르자."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리어 "안 사먹으면 그만이다"라는 정부의 어이없는 답변을 우리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저기, 혹시 그거 유머 맞죠? 헤헤 맞나? 헷갈리네.

이런 제스처라도 보여야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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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진 
ⓒ 작가회의  최명진 

 

비단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다.

이제 국민들은 상식이하로 일관하는 그들의 정책과 발언에 대해 총체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생명이 결여된 그들의 사고방식 앞에서 우리는 왼쪽 가슴에 심장을 담고 있는 생명체라고, 게임 속에서 미네랄이나 캐는 일꾼 따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신용도가 떨어지지나 않을까만 노심초사하는 그대들이여. 벌이도 중요하지만 삶도 중요하지 않나.

멀리보자! 제발.

답답하다.

답답하니 인간적으로 산다는 게 도무지 멀게만 느껴진다.

도대체 그대들은 누구인가.

어느 별에서 왔으며 무엇을 향해 가는가.

그 배후가 무척 궁금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최명진(시인): 1976년 전주 출생. 2006년 <리토피아> 신인상으로 등단.

 
2008.06.25 11:0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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