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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충남문화유적] 세종시 주변의 忠.孝.節(충.효.절)을 숭상하는 유적들

 

[충남의 문화유적] 세종시 주변의 忠.孝.節(충.효.절)을 숭상하는 유적들

 


▲ 한단계 한단계 변화해 가는 세종시의 모습

 

지역민간의 반목과 질시를 만드는 등 수 많은 우여과 곡절을 겪고 충청도민의 강인한 의지의 반영으로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 가는 세종시는 이제 1단지 분양을 마치고 차근차근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종시의 변화를 만나러 가는 길...

 

그 주변에는 충남지역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하는 유적과 충.효.의.절을 기리는 유적들 또한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연기경찰서 동면파출소근처에서 만나는 안내표지

 

먼저 절개를 기리는 언양김씨정려(열려문)가 있습니다.

 

이곳은 비교적 최근인 2001년 연기향토유적 제 21호로 지정된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송룡리 나븐마루마을 산 102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열녀 장응헌처 언양김씨(張應軒妻 彦陽金氏)의 행적을 기리는 정려문(旌閭門)입니다.


정려의 주인공인 김씨는 병들어 거동을 못하는 80고령의 시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으며 남편에게 공대하고 대소 모든 절차에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고합니다.


전하는 바에 병석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시아버지가 빗질을 못해 상투속 머리에 가득한 이를 없애기 위해 김씨는 자기의 머리에 참기름을 바르고 고령의 시아버님 옆에서 머리를 맞대고 밤낮을 보내며 김씨의 머리로 이가 옮겨오게 하여 시아버지의 머리에 있는 이들을 없앴다고도 합니다.

 

▲ 조선시대의 열녀 장응헌처 언양김씨(張應軒妻 彦陽金氏)의 정려

 

이러한 김씨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가 쳐들어 왔을 때, 시아버지와 두 자식들을 안전하게 피난시키기 위해 뒷문으로 대피시키고 자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들이 달아난 반대방향인 앞문으로 나와 오랑캐를 유인하며 강가로 달아나다가 오랑캐에게 잡히게 되자 황단이 나루(현재 연기군 동면 예양리 북쪽 미호천 중류)로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합니다.
이를 본 청의 장수는 김씨의 정절을 의롭겨 여겨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뤄주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표목을 세웠다고합니다.


이후 다시 쳐들어온 청나라 군사들은 장수가 쓴 표목의 글을 보고 이 마을에는 침입하지 않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란이 끝나자 남편 장응헌은 의식을 갖추어 부인의 장례를 다시 잘 지내 주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 송용리마애불(松龍里磨崖佛)

 

문화재청의 자료에 따르면 충남 연기군  동면 송용리 99-3에 위치한 송용리마애불(松龍里磨崖佛)은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3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고 있다고합니다.


"커다란 배(舟)모양의 광배(光背) 가운데에 돋을새김한 이 불상은 오른쪽 눈 윗부분이 파손되어 있으며, 무릎 아래는 땅에 묻혀 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표현되었으나 파손되어 일부만 남아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가슴 앞에 올린 두 손은 손바닥을 가슴으로 향하고 있어 이 불상이 아미타여래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불상은 조각수법이 형식적이고 뛰어나지 못하나 전체적으로 육중하여 안정감을 준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 합니다.

 

충청남도 연기군 송용리 철로변 연기경찰서 동면파출소 뒤 얕은 구릉 언양김씨정려(열려문)앞에 있는 광배와 얼굴 한족이 덜어져 나간 상태로 있는 마애불로 광배높이 260cm, 불상높이 227cm, 최대너비 210cm, 어깨너비 90cm 입니다.


영원한 수명과 무한한 광명을 보장해 주는 부처님인 보아아미타여래로 추정되는 입불로 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선을 베풀고 아미타불을 지극 정성으로 맞이하면 서방극락으로 인도하는 부처라고 합니다. 

윗부분이 파손되어 있는 것은 큰 뱀이 겁없이 불상위에 올라 앉아 있자, 맑은 하늘에서 벼락을 치며 뱀을 죽게 하였는데, 그 여파로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

 


▲ 파손되어 있는 언양김씨정려(열려문)

 

하지만 방문 당시 관리되고 있는 상태를 보면 문제가 있는 부분이 눈에 띄어 우려가 깊어집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안내 표지판에 우리의 말과 표기법과 달리 '열녀[烈女]'를 '열려'로 표기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 잡초로 우거진 언양김씨정려(열려문)와 송용리마애불(松龍里磨崖佛)가는 길

 

이곳 송용리에서 조금더 북쪽으로 올라가다 세계 유일의 '교과서박물관'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열녀 박기정처 광산김씨 정려 [烈女 朴基鼎妻 光山金氏 旌閭] 표지판이 보입니다.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응암리(노곡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박기정(朴基鼎)의 처(妻) 열녀 광산김씨(光山金氏)를 기리는 정려(旌閭)로 2001년 연기향토유적 제 22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는 곳으로 김씨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효를, 삼강오륜의 행실을 다하며 자랐으며 혼례를 치른 3일 후에 남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찾아 다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먹이기도 했다고 하며. 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하여 열녀로 칭하고 그 행적을 기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입구에만 표지판이 있고 더 이상 그 어디에서도 안내표지판을 볼 수없어 긑내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 열녀 박기정처 광산김씨 정려 [烈女 朴基鼎妻 光山金氏 旌閭]

 

이밖에도 공주시에는 소학리효자향덕비를 비롯해 효자이복, 김휘집, 정이재, 이면주, 최익항등 수많은 효자들이 기념되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 계룡산에 왔을 때 곳곳에서 볼수있는 '효실천마을'이라든가 '효의 고장'이라는 글귀들을 볼 때마다 그 의미를 몰랐으나 이제는 왜 그러한 자랑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충.효.의.절은 칭송하고 삶의 근본으로 삼아야할 덕목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놀이동산 등 즐길거리만 찾을 것이 아니고 이러한 곳을 방문해 조상들이 실천해 온 인의예지[仁義禮智] 4가지와 아울러 사회생활의 기본이라 할 신[信]을 몸소 느끼는 기회로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종시 주변의 忠.孝.節을 숭상하는 유적들
[85호] 2011년 08월 11일 (목) 09:45:18 계룡도령춘월 mhdc@naver.com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67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