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풍경이야기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아산 현충사는 매주 화요일 휴관입니다.

 

 

지난 14일 아산시 온양온천전통시장을 다녀오며 들린 현충사[顯忠祠]입니다.

 

아산 현충사[顯忠祠]는 아산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경역 면적 16만 3096평의 방대한 부지 위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충무공의 탄생지 서울이 아닌 이 곳 충무공의 옛집에 현충사가 세워진 것은 본래 상주 방씨(方氏)들이 살던 터인데 그 사위가 되는 충무공에게 물려준 것으로, 충무공의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고 하며 실제적인 성장기를 보내고 임진왜란 동안 거하며 '白衣從軍 [백의종군]' '盡忠竭力 [진충갈력]'의 마음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의미를 크게 보아 세운 듯 합니다.

 

충무공 순국 108년 후인, 1706년 숙종 32년에 세워졌으며, 1707년 숙종이 현충사라 사액하였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절되고 관리되지 않고 있다가, 1932년 일제 강점기 때 다시 사당으로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1966-1974년 사이 친일 쿠데타 군사독제자 박정희에 의해 성역화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쿠데타 군사 독재 정권의 수괴인 박정희에 의해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가 복원/재정비 되면서 전문가들의 세밀한 연구와 고증에 의한 복원이 아닌 군사 정권식의 밀어 붙이기, 군인으로서의 박정희식 안목으로 진행된 사업 중의 하나입니다.

 

박정희가 왜 이순신장군의 현충사를 이렇게 거대하게 조성하였을까?

그것은 자신의 친일 전력과 쿠데타로 집권하여 통치의 당위성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이를 백의종군한 이순신장군을 숭상하여 마치 자신도 이순신장군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백의종군하는 장군으로서의 위상으로 보여지길 원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짓은 참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대한민국의 이 암울한 군사독제의 시기에 복원이라는 미명하에 시행된 수많은 문화재수리사업이 사실과 역사성은 무시한 채 제멋대로 수리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개탄의 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런 몰상식한 방식을 배운 이명박은 그때의 그 방식 그대로 밀어 붙여 청계천을 복원한답시고 팔을 걷고 나서서는 거대한 하수구를 만드는 패악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복원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광화문 수리공사, 석굴암, 불국사 수리공사, 천마총 수리공사 등은 지금도 그 폐해가 이어지고 있으며 다시 제대로 복원을 해야 하지만 당시 너무도 엉망으로 수리를 해 버려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복원은 요원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현충사 성역화 사업은 박정희의 컴플렉스에서 시작되어 백의종군이라는 이충무공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거창하고 으리으리하게 만들어져 있어 충무공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얼마 전 후손들의 재산권 분쟁으로 불거진 소유권 등의 문제가 발생해 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 국민적인 국민 성금이나 지자체의 예산으로 소유권을 되 사들여 보존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는데 계룡도령의 생각으로는 이참에 규모를 소박하게 축소하여 위압감에 의한 숭배적 준경이 아닌 진정성을 가진 백의종군으로 진충보국한 위대한 장군으로서 존경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바꾸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이충무공의 정신과 맞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현충사에는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무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놓고 보니 어두워지면 관리가 않되니 출입을 제한하거나, 아니면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퇴근을 해야하니 정해진 듯한데...

 

적당한 크기의 공간으로 조성을 했다면 언제라도 참배하고싶을 때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그동안 입장료를 받았던 모양인데 올 2012년 부터 무료로 개방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룡도령이 방문한 날이 화요일...

하필 화요일에 휴관을 하고있습니다.

이 뭥미...

난생 처음 현충사를 찾았는데...

ㅠ.ㅠ

 

 

우람한 담장에 둘러쌓인 현충사...

상업화되고 갇혀버린 영웅의 충정...

 

 

으리으리하기까지 한 정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쇠창살 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모습은 그저 허허롭기만 합니다.

 

 

기대와는 다른 현충사의 모습[물론 다 둘러보지도 못했지만...]에 큰 실망만 남습니다.

 

그 어디에도 백의종군하며 진충보국하던 충무공의 모습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상품화되어 갇혀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

성웅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께서는 지금의 현실에 무슨 생각이 들까요?

 

 

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1706년에 창건하고, 이듬해 ‘顯忠祠’라 사액(賜額)된 곳...

주요 시설로 본전(本殿)·구본전(舊本殿)·유물관·고택(古宅)·활터·홍살문(紅―門)·정려(旌閭), 이면(李葂)의 묘소 등이 있으며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본전으로 영정은 1953년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것인데 이 영정이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구본전은 본전을 신축할 때 배전(拜殿)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사적비(事蹟碑)와 함께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다고 하며 고택은 몇 차례 중수 또는 개수되었으며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인 활터는 옛집 옆에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이며 홍살문은 1932년 중건 때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현충사...

이제라도 충무공의 뜻에 맞게 제대로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잠시 친일로 얼룩진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동영상을 올려 봅니다.

그리고 친일세력들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그들은 누구인지 10분만 할애하셔서 지켜봐 주세요.

 

 

이 동영상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꼭 봐야할 동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후손들이 살 나라 대한민국은 반듯한 나라여야 합니다.

그러니 꼭 봐주시고 꼭 퍼가주세요.

 

널리 퍼트려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합니다.

 

 


 

 

 

[2012년 2월 14일 아산시 현충사 정문에서 되돌아 온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