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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교과서에서 ‘시조새’ 부분을 뺀다는 개독들에게 묻는다.

 

 

 

교과서에서 ‘시조새’ 부분을 뺀다고 합니다.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537861.html 

왜냐구요?
개독들의 창조론에 맞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개독들이 활개치는 대한민국과 이민 간 나라의 교민사회...

다른 모든 나라나 민족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기독교...

 

대단한 한민족 같습니다.

 

도대체가...
평소에도 개독들의 작태가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만 거기에 슬쩍 같이 놀아나는 행정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개독들 때문에 생긴 폐해는 수 많은 종교전쟁과 지나온 역사의 70% 이상을 왜곡시키는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연한 현상을 부정해 온 수많은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행동은 과학을 원시의 수준으로 되돌려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연한 현실조차 부정해 대는데는 할 말이 없습니다.
창조...
그걸 믿는 놈들이니...
에라이 개독들아!!!

고양이가 웃는다...멍멍 하면서!!!

 

 

 

계룡도령이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을 탓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짜집기 한 책 한권으로 세상의 모든 진리을 다 아는 양 설치는 개독들 때문입니다.


거짓을 참으로 만들려니 벼라 별 짓거리를 다 하는 것입니다.


지구상 종교 중 단 하나 기독교만이 인간을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자연신을 믿거나 인간의 깨달음을 존중하는데...


거짓이 거짓을 낳는 이런 악 순환은 개독을 말살시켜야 사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처형한 것은 어저면 그 나름의 역사관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니네들이 진리라 믿는 것에 대해 하나만 까밝혀 볼까?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서구문화의 근원을 보통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두 개의 서로 다른 연원에서 찾았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의 발굴 결과로 수메르 문화가 나타나면서 두 근원이 수메르에서 나왔음이 밝혀졌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수메르가 가장 오래된 문화를 창조한 주인공임이 밝혀졌다. 구약성서의 에덴동산의 모델, 노아 홍수, 모세율법, 욥기의 비극, 시문학 등이 모두 수메르에서 나왔음이 밝혀졌다.

 

수메르어의 세계 권위자인 미국의 크레머 교수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한다」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메르어는 고대 히브리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고로 설형문자로 씌어진 문서를 복원하고 해독하면 수메르의 신화가 「구약성서」내용의 대부분의 원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메르의 우르 3왕조의 창시자 우르남무가 공포한 법전은 법전역사상 최초의 것으로 이보다 250여 년 후에 쓰여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의 근간이 되었으며 앗시리아 법과 힛티사람들의 법은 물론 구약성서 모세법의 가장 기본을 이루었다. 수메르인들은 또한 안식일 제도와 한 달이 4주가 되는 제도도 만들었다.

 

▣ 창세기의 원형

 

구약「창세기」의 장소적 배경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이야기 자체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창세 신화를 엮어 새롭게 번안하고 개작한 것이었다.

 

「창세기」의 태초 이야기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 가운데 수메르의 창조신화인「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와 바빌론의 창조신화인「에누마 엘리쉬」에 담긴 주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즉 천지창조에서 인간 창조, 에덴동산, 도시의 건설, 계보, 인간의 타락, 끝내는 홍수로 이어지고 홍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축복받는 계약으로 끝난다.

 

수메르의 「지우쑤드라」
( ) - 인간창조-에덴-도시-계보-홍수-축복-( )

 

바빌로니아의「에누마 엘리쉬」
천지창조 축복 활

 

구약「창세기」2~8장
인간창조-에덴-도시-계보-홍수-축복

 

구약「창세기」1~9장
천지창조 홍수-축복 무지개/활

 

먼저 천지창조에 대한 것부터 살펴보면 구약의 창세기에는 천지창조의 시작에 물(대양)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빌론의 천지창조설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바빌론창조신화에는 바다의 티아맛이라는 여신과 육지의 말둑이란 남신과의 싸움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구약성서의 창조설화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약 창세기는 물을 혼돈, 흑암, 즉 "테홈(Tehom)"이라 하여 "티아맛"과 그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도 야훼 엘로힘 신이 혼동을 쳐 우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창세기」1:6~19의 내용인, 창공을 만들어 달과 해와 별을 두었다는 이야기는 「에누마 엘리쉬」에도 나온다. 티야마트의 주검을 둘로 갈라 하늘과 땅을 만든 과정은 「창세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창공을 만든 뒤 그곳에 별, 해, 달을 세우고 이를 절기와 날을 세는 징표로 삼았다는 것과 아래의 물을 모이게 하여 육지와 바다가 생기게 했다는 것은 똑같다. 게다가 '안식일'의 발상도 수메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아카드어 '샤파투'는 바빌로니아에서 정결례를 행하는 종교일이었는데 이 '샤파투'에서 이스라엘의 안식일을 뜻하는 '샤바트'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바빌로니아의 전승에 따르면 정결례를 행하는 '샤파투'는 "신의 심장이 쉬는날"이라고 해석했다. 즉 신이 쉬는 날이 안식일인 '샤파투'였고, 이스라엘인들은 이를 히브리어로 음역하여 '샤바트'라고 부른 것이다.

 

참고로 「에누마 엘리쉬」와 「창세기 1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자. 한마디로 창세기 1장의 창조신화는 바빌로니아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를 개작한 것이다.

 

에누마 엘리시
창세기 1장

 

신과 우주적 질료가 동시에 존재하며 양자 모두 영원함
신과 우주적 질료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함

 

원초적인 혼돈을 나타내는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는 어둠에 감싸여 있음
땅은 텅 비어 있으며 어둠이 깊은 물(테홈) 위에 있음

 

마르두크가 바람을 타고 티아마트 여신을 잡으러 감
신의 바람이 깊은 물(테홈:"에누마 엘리쉬"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와 어근이 같은 말) 위에 휘돌고 있음

 

신들에게서 빛이 나옴
빛을 창조함

 

하늘을 창조함
하늘을 창조함

 

마른 땅을 창조함
마른 땅을 창조함

 

섬광체(해와 달)를 창조함
섬광체(해와 달)를 창조함

 

인간을 창조함
인간을 창조함

 

신들은 휴식을 취하고 축하함
신은 휴식을 취하고 안식일을 정해 거룩하게 하게 함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로써 우리는 우리 나라의 1천 2백만 신도, 나아가 전 세계 17억의 인구가 믿고 있는 성서가 더 이상 신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오류가 없는 책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수집하고 편집하였으며 그들의 머리와 사상에 의해 덧칠해진 인간의 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성서를 맹목적으로 신앙할 것이 아니라, 성서에 담겨 있는 옛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적 사상은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날에도 가치 있는 것인가를 심사숙고하여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이를 합리적으로 연구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여 인류의 한 고전(古典)으로서, 인류가 축적한 한 지혜의 산물로서 올바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 에누마엘리쉬와 창세기1장의 비교는 석동신著<창세기와 히브리신화>(근간)의 내용을 그대로 발췌한 내용임 ]

 

▣ 인간 창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중 바빌로니아의 홍수 이야기인 「아트라하시스」에는 죄짓고 처형당한 신의 살과 피에 점토를 섞어 사람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발상은 동일한데 여기서 구약의 내용과 차이가 있는 점은 "죄지은 신의 살과 피가 결국 사람의 혼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도 "살의 혼은 피에 있다"[레위기 17:11]고 풀이하여, 피가 사람의 혼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레위기」의 해석을 염두에 두면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내용중 구약성서에서 배제한 것은 "죄짓고 처형당한 신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부분뿐인데 이러한 '인간창조와 죄의 연관성에 관한 신화'가 구약성서에서는 정결한 염소의 피를 제단에 뿌리는 '속죄례'라는 종교적 관습으로 실행되었으며 '속죄 신학'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속죄례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어 "세상의 죄를 치워 없애신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죄지은 신의 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인간창조 신화'가 살아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왜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만들어졌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신학자, 종교가, 학자가 논쟁을 벌여 왔으나 최근에 수메르의 설화에 나오는 신 엔키와 여신 니프르사구에 관한 자료가 발견되자 완전히 해명이 되었다. 수메르어로 '티'란 말은 '갈비뼈'와 '생명을 주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수메르의 물의 신 엔키와 갈비뼈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태어난 여성은 닌티라 부른다. 이것은 '갈비뼈의 여인' 또는 '생명을 주는 여인'이라는 뜻이 있다. 결국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는 구약성경의 이야기도 수메르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에서 몇 십 명 정도에 불과한 수메르어 전공자의 한 사람이며, 현재 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에서 구약성서를 가르치고 있는 조철수 박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의 '여자가 태어난 이야기'에 따르면 야웨는 남자의 갈비뼈 중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잘 알려진 고대 수메르신화의 한 부분을 히브리어로 번안한 것이다."

 

▣ 에덴동산의 모델

 

기독교의 에덴동산 이야기는 아주 오랜 옛날 수메르의 딜문(Dilmun)동산의 신화로부터 차용한 이야기이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기 위해 아담을 창조해 놓고는 늘 어떻게 하면 아담을 좀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데, 이건 아주 오랜 옛날 수메르로부터 차용한 이야기이다. 수메르 신화에 보면 신들은 누군가가 동산을 돌보고 필요한 먹거리를 지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한 사내를 창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창세기>2, 3장에 나오는 신화의 배경은 바로 수메르 신화인 것이다.

조철수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은 수메르어 명사인 gan₂eden(들판의 일궈놓은 밭)과 같은 단어이다. '들판'이나 '들판의 일궈놓은 밭'의 수메르어 보통명사가 창세기에서는 고유명사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수메르 이야기에 사람들이 땅에 기는 것들(즉 뱀)과 들짐승과 서로 즐겁게 살았다는 부분도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아담(사람)이 온갖 들짐승들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뱀과도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살았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 카인과 아벨 이야기 -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투쟁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단편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당시 사회 상황은 농부와 목자 사이에 갈등이 심했다는 점이다. 농부와 목자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작품에 자주 나온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몇세기에 걸친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투쟁이 그 배경이 되고 있는데 이 형제 살인 이야기의 원형은 고대 오리엔트 메소포타미아의 목축신 두무지(다므스스)와 농경신 엔키무드의 투쟁 이야기이다.

 

성서에 보면 농부(카인)와 양치기(아벨)가 반목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당하는 것은 농부이다. 이것은 농경문화권을 정복하고 피정복자인 농경민들을 욕보인 수렵민족, 혹은 유목민족의 신화가 반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서 문화에서는 승자가 되는 쪽, 선한 쪽은 늘 둘째 아들이다. 둘째 아들은 나중 온 자 즉, 히브리인을 상징한다. 둘째 아들이 그 땅으로 왔을 때 이미 그 땅에는 맏아들, 즉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카인은 농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당시의 도시문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왜 카인이 여호와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였는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만약 오늘날 가나안 민족이 히브리인들을 몰아내고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면 이 유대의 민족신 '여호와신' 대신에 가나안 민족신인 '바알신'이 자리할 것이고 농부가 양치기를 밀어내고 선택받는 스토리가 채택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화'야말로 역사의 거울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이러한 갈등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Bible을 읽는 다면 '카인과 아벨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면 잘 알 것이다. 농사짓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얼마나 심한 육체적 고통과 수련이 따르는가를 ―. 인류에게 있어서 "농경"이란 "현재적 고통"을 "미래적 쾌락"을 위해서 참는 "이성의 발전"이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한눈 팔지 않고 모든 육체적 고통을 인내하면서 가을의 수확의 기쁨을 위하여 노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또 수확을 저장하여 겨울을 넘기는 준비도 해야 한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에 따른 주도면밀한 사고력이 없이는 농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신중함"이란 곧 인간의 "이성"의 발전의 원초적 양태이며 곧 "농경의 질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적 질서 속에서만, 그러한 농경의 질서 속에서만 인간은 살 수가 없다. 인간은 이러한 이성적 질서로부터 어떠한 "비이성적 해방"을 추구하게 된다. 농경문화에 있어서 이러한 해방의 최초의 문명적 산물은 바로 "술"이었다 그리고 또 "色"이 있었다. 우리말에 항상 "酒色"이라는 말이 쌍을 가지고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인류문화에 가장 원초적인 해방을 나타내는 보편적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酒色"에서 "酒"에 대한 종교적 예배가 곧 희랍의 농경민족에게서 발전된 바카스예배(Bacchilc Cult)이며, "色"에 대한 종교적 예배가 곧 가나안 농경민족의 바알의 축제 즉 혼음의 축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카스 예배와 바알 예배가 우리민족에서는「東夷傳」의 영고(迎鼓)나 동맹(東盟), 그리고 솟터의 제사 속에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東夷傳」의 기사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월과 시월에 國中大會하여 飮酒歌舞하였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축제의 모습이며, 「東夷傳」의 기자들은 "其俗淫"이라 하여 그 풍속이 음란하다고 적고 있다. 당시 고도의 제국문명의 유교독존의 세뇌를 받은 중국의 지성의 눈에는 한민족(韓民族)의 모습이 매우 "음난"하게 보였던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민족의 사사들이 가나안의 바알축제를 그렇게 본 것처럼....... 그러나 이것을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구조의 틀 속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酒와 色의 축제는 희랍의 바카스축제(Bacchic cult), 가나안농경민족의 바알축제, 중국의 『시경(詩經)』, 우리나라의 견우,직녀의 신화 등에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농경문화의 매우 중요한 전인류적 보편종교양식이다.

 

『구약』의 「사사기(士師記)」는 한마디로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대립·마찰·갈등을 표현하고 있는 인간실존의 현장이며, 인류사의 보편적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모세나 여호수아에게는 농경생활의 안락이나 그에 뿌리박고 있는 고도의 문명 그 자체가 저주스러운 것이다. 즉 어떤 의미에서 문화의 접촉에서 오는 초기현상적 칼춰쇼크(culture-shock)가 反文化的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사사들의 임무는 이러한 이스라엘민족의 갈등, 즉 고도로 성숙한 가나안문화의 유혹과, 또 문명에 대한 저주와 방황하는 자유로 얼룩진 유목생활에 대한 참신한 동경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민족적 갈등으로부터 구출하고 야훼의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었다. 즉 이스라엘민족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새롭게 접촉한 바알신앙문화는 또한 참신한 유혹이었으며, 특히 농경의 생산예찬과 그로 인한 성적 해방은 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본능적 유혹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유혹은 하나의 타락이며, 야훼에 대한 배반이며, 계약의 위약이었다. 이러한 갈등은 야훼자신이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야훼께서는 몹시 화가 나셔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이 백성의 조상들과 계약을 맺을 때 명령한 대로 이 백성은 살지 않는다. 통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수아가 채 몰아내지 못하고 죽은 민족들을 이 백성 앞에서 결코 몰아내지 않으리라. 그들을 시켜 이스라엘을 시험해 보리라.(사사기 2:20∼23 공동번역판)

 

이것은 야훼가 결코 몰아내지 못한 갈등이다. 그리고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이란 현존재의 시험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만 하나님의 역사로 보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하느님의 역사로 보지 못하는 바보새끼들은 더 이상 역사를 운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민족에게 하느님이 있었다면, 「동이전(東夷傳)」에도 하느님이 있고 『시경(詩經)』에도 하느님이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에게 나타났던 갈등은 어떠한 문명에서든지 볼 수 있는 보편적 인간의 갈등의 이스라엘적 표현에 불과하다.

 

▣ 노아의 홍수

 

구약성경의 노아의 홍수는 유태교나 기독교의 성서가 씌어지기 2,000∼3,000년 전에 씌어진 수메르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따 온 것이다. 구약성서의 저자가 살던 땅은 폭풍우나 홍수가 없는 지방이다.

 

성서의 대홍수 이야기가 성경을 편집한 헤브루인들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이는 영국 국립박물관의 조지 스미스에 의해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길가메시>의 열 한 번째 점토판이 발견되고 판독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대홍수 신화도 사실은 수메르(지우쑤드라의 홍수이야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홍수 신화의 점토판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기독교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일신 여호와가 인류의 오만함을 징벌하기 위해 내린 노아의 대홍수가, 사실은 타민족(수메르) 신화의 복사판이라고 해서는 모세의 십계가 강조하고 있는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더군다나 모세와 연관된 것에까지 표절의 냄새가 풍기자 로마 교황청은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로마교황청은 어떤 곳인가? 교황을 필두로 한 수많은 성직자들이 완고함으로 무장한 보수의 발원지가 아니던가? 예컨대 멀리로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하는 갈릴레이를 이단으로 몰아 투옥하였으며(1633년), 근세에는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자 분개한 나머지 졸도한 성직자가 나올 정도였다. 교황청의 입장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었다. 인간은 아담을 시조로 하여 창조된 것이며 결코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갈릴레이를 이단 심문에 회부한 것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잘못한 처사'라고 사과한 것은 1983년의 일이다. 갈릴레이의 명예 회복은 350년만에 된 셈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96년 10월, 요한 바오로 2세는 놀랍게도 이렇게 공언했다. "인류의 조상은 아담이 아니라 역시 원숭이였다." 교황청은 바로 이런 곳이다.

 

그런데 조지 스미스가 발견하고 해독한 점토판은 「길가메시의 서사시」라 불리는 것으로서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의 놀라운 모험담을 기록한 것이었다. 이 서사시에는 홍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여기서는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가 '에아'로, '노아'가 '우트나피시팀'이라는 이름으로, '40일 낮 40일 밤'이 '7일 낮 7일 밤'으로, '방주는 7월 17일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는 내용은 '방주는 니실 산 꼭대기에 머물렀다'로 되어 있을 뿐 기본 골격은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비둘기와 까마귀를 날려 보내서 육지를 확인하는 내용까지도 똑같다. 아마 노아 시대의 홍수에 버금가는 대홍수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실제로 있었던 것 같다.

'나바라'라는 사람은 방주의 일부를 아라랏 산에서 발견하였는데 이 탐험기록을 『나는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는 책으로 엮어 1959년에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고목재가 노아가 만든 방주의 일부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 자체가 수메르의 전설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홍수 이야기는 수메르, 바빌론신화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중국, 한국, 오스티악족, 캄차달족 등 중앙아시아의 알타이신화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중국의 요, 순과 고조선의 단군이 '9년 홍수'를 맞아 치수사업을 벌이는 이야기가 한·중 고대사서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근 4천년 전의 중국 하나라 수도 유적 발굴에서 홍수로 파괴된 흔적이 발굴되었다고 한다.(중국 고고학 잡지 「문물」) 그 당시 홍수는 세계 도처에서 발생했으며, 유대민족은 이 홍수이야기를 바빌론 포로시절에 듣고서는 마치 자신들만이 겪은 것처럼 노아의 홍수이야기를 수메르의 홍수신화(지우쑤드라의 홍수이야기)의 모방인 바빌론의 홍수신화(길가메쉬 서사시)로부터 차용해서 신(神)의 섭리를 내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 아브라함과 사라 이야기의 원형 - 아카드서사시와 케레트서사시

 

1929년 셰프로를 단장으로 한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이 우가리트에서 발굴한 점토판에서 아카드와 케레트의 서사시가 나왔다. 아카드서사시에는 다니엘과 그의 처 사이에는 딸만 하나 있고 아들이 없다. 다니엘은 시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그후 부인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아들을 얻는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이삭의 이야기의 원형이다. 케레트 서사시는 왕비 프로티를 다른 왕에게 빼앗긴 케레트왕이 그녀를 되찾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도 아브람함 이야기와 같다. 구약성서가 만들어진 것이 기원전 7세기이며 우가리트 문서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400년이다.

 

▣ 모세 율법

 

모세 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경 자체의 문헌 비판에서 명백해지는데 아마도 BC 5·6세기경 바빌로니아 유치시대에 기록되고 경전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오경을 모세가 전한 율법이라 하여(신명기 31:9) 신약에서도 보통 "율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메르의 「슈루파크의 가르침」은 히브리 성서 십계명의 5~10조항의 원형이 되었으며 "도둑질, 살인, 간음, 헛된 명세, 말다툼,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십계명 중 6~10계명과 같은 맥락이며, 또한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계명의 내용과 순서는 「출애굽기」21장 12절부터 23장 8절까지 기록된 모세법의 기본 골자와 같다. 이 가르침의 전통에서 후대의 법전들이 편찬되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편찬된 법전은 BC 2100년경에 공포된 『우르남무 법전』이며, 이보다 350년 후에 만들어진 고대 바빌론 왕조의 『함무라비 법전』의 모체가 되었다. 이 법전은 히브리 성서에 전해진 모세 계약법이나 십계명과 「잠언」 등에서 그 전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인류의 법전 발달사에서 가장 근원적인 뿌리가 되었다.

 

예를 들면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경구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이 「출애굽기」21장에 "상해가 생겼을 경우에,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준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나 「레위기」의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은 그의 피를 흘려야 한다"는 구절에 잘 반영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민희식교수는 모세와 여호와신의 이야기는 애급의 아톤신앙(一神敎)과 모세의 관계를 새롭게 편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 수메르 점토판의 사르곤전설에서도 모세이야기의 원형이 발견되고 있다. 바빌론을 수도로 하는 아카드왕조를 세운 왕이 바로 사르곤1세이며, 이 사르곤의 어머니는 신분이 낮은 여자였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르곤을 바구니에 담아 유프라테스강에 흘러 보냈다. 그 때 마침 물을 길러 나왔던 아츠키라는 여자가 이를 발견하고 물에서 건져 올렸다. 대지의 여신 이슈타르에게 아이의 가호를 빌자 여신이 직접 맡아 길렀다. 후일 사르곤이 성인이 되자 애인으로 삼음과 동시에 제사장(임금) 자리에 오르게 했다. 이것이 조지 스미스가 발견한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이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사르곤의 어머니는 이슈타르 신전의 무녀(무녀)였으나 잘못하여 임신을 했고, 신의 벌이 두려워 낳은 아이를 유프라테스강에 버렸다고 한다. 이 전설 역시 물을 길러 나왔던 여인이 아이를 구하여 키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르곤의 전설은 선지자 모세가 나일 강에 버려졌던 아이였으며 이집트 파라오(왕)의 딸이 건져서 궁전에서 길렀다는 전승으로 바뀌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리아의 처녀 회임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처녀 출산이야기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성령에 의한 잉태- 즉 남녀간의 '정자·난자의 결합'이 아닌 방법-에 의한 임신이라는 부조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처녀출산'이 기본적으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짜라투스트라가 창설한 '파르시교'의 교리에 따르면 - 그들의 아베스타 경전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것이지만- 지금도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구세주 사오슈안트는 처녀출산으로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이다.

 

신비적인 출생이 거론되는 사람 가운데는 고대 페르시아의 왕 큐로스 2세가 있다 그는 기원전 538년에 바빌론을 공략하여 '바빌론의 포로(유대인)'을 석방시킨 사람이다.

 

전설적인 로마 건설자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테베강에서 건져내어 늑대젖으로 키웠다고 한다. 로마 건설은 기원전 753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 기원(紀元)은 이 해를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외에도 많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필립2세의 친아들이 아니라 제우스의 번개에 의해 수태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웅이 된 자는 그의 부친이 왕족이거나 귀족 출신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버지를 부인하거나 '전설'을 만들어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예수가 전도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양부'요셉은 이미 죽고 없었다. 때문에 예수는 '과부의 아들'로 불렸다.

 

시조(始祖)탄생설화에 있어서는 대강 그 시조 이전의 부계(父系)를 설정해 놓으면서도, 그 시조의 탄생 그 자체는 그 부계와 무관하다는 구조로 나타난다. 처녀생자(處女生子), 감천생자(感天生子), 그리고 난생(卵生)의 설화 등등은 모두 이러한 부계사회를 배경으로 태어난 것이다. 중국의 시조나 성인은 모두 이러한 탄생설화를 빌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주몽탄생설화나 또 박혁거세의 탄생설화 등등도 그렇다. 마태복음에 보면 "A는 B를 낳고"로 죽 연결되어 문자 그대로는 마치 A가 B를 생산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지만, A이고 B이고 다 남자이다. 희랍어성서나 영어성서는 모두 "A는 B의 아버지이며"의 문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계보가 우선 철저하게 부계상속의 부권사회구조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의 감천생자(感天生子)탄생이나 은(殷)나라의 契나 주(周)나라의 后稷의 감천생자(感天生子)탄생이나 동명왕 주몽의 감천생자탄생은 이 모두가 부계혈통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종적(縱的)인 부계사회의 권력의 절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강구된, 즉 부계를 강화하기 위한 부계의 부정의 논리로 은폐된 시조(始祖)신화의 특수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즉 세속적인 계보의 혈통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시조(始祖)의 시조적 절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마리아의 처녀 수태설은 당시의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과부의 아들'이란 당시 활약했던 예언자들의 공통적인 자격조건이었던 것이다. 예수의 라이벌이었던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도 어머니가 신의 아이를 처녀 수태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왕이나 귀족이 아닌 바에는 아버지란 존재는 오히려 장애요인일 뿐이다. 예수의 경우에도 시시한 목수의 아들이라고 알려지는 것보다는 좀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편이 유리했을 것이다.

 

당시 유태인들은 자신들 나름의 전통을 가진 이교도들의 방대한 세계에 둘러싸여져 있었다. 이교도들의 전설에서는, 위대한 영웅, 즉 기적을 행하는 사람은 신의 아들이라는 것이 상당히 관례적이고 통상적인 사항이었다(사실상, 거의 필요조건이다시피 했다). 처녀는 마법적인 방법으로 신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될 수 있었다―이것은 그리스 전통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원래 그렇듯, 유태인들은 유태교의 사고가 편협하고 보수적이었던 유대 지방에만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의 영향이 강했던 알렉산드리아나 기타 지방에도 살았다. 그리스판 성경은 이사야의 인용구에서 "처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마태오는 처녀 출생을 뒷받침하기 위해 히브리어판이 아닌 그리스어판을 따랐던 것이다. 만일 처녀 출산이 로마와 같은 이방인의 도시를 설립한 사람들을 찬양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왕국을 설립하는 사람을 찬양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그보다도 훨씬 정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태오는 예수의 출생에 관해 두 가지 전통, 즉 다윗의 후손이라는 엄격한 유대의 전통과 처녀 출산이라는 주변 민족의 전통을 둘 다 - 서로 배타적이긴 하지만 -를 수용했던 것이다.

 

▣「욥기」

 

히브리 성서에 전해진 「욥기」와 매우 흡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작품이 있다. 수메르어로 기록된 이 글이 쓰여진 연대는 BC 17~18세기로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의 에덴동산, 선악과, 노아의 홍수 등 많은 내용이 다른 민족의 신화의 내용을 차용하여 주인공만 여호와신과 유대인으로 바꾸어 편집한 허구의 신화이다. 즉 유대인들은 이집트 노예시절, 바빌론 포로시절을 거치며 민족 단결의 필요성을 느꼈고 민족을 결집시키기 위하여 자기 민족만이 선택받은 민족으로 만들기 위하여 주변의 페르시아신화, 이집트신화, 수메르신화 등을 편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가공해 낸 신화를 기반으로 한 원죄론 등의 교리는 허구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참고 문헌》
[ 김상일 <한철학> 전망사, 1985 ]
[ 조철수 <수메르신화> 서해문집, 1996 ]
[ 조철수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신화> 길, 2000 ]
[ 민희식 <오리엔트문명과 불교> 山房, 1989 ]
[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신화의 힘> ]
[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1989 ]
[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著, 박성식譯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가람기획 ]
[ 나카마루 아키라著, 이원두譯 <성서의 미스테리> ]
[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통나무, 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