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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018 홍익(弘益) 위대한 유산(遺産) 한자의 기막힌 발견 저자 조옥구의 한자편지

 

 

위대한 유산 漢字, 고대로부터의 편지 018. 홍익(弘益)


 

홍익(弘益)


‘홍익(弘益)’이라면, 동방의 작은 은둔의 나라 한겨레가 가진 정신적 가치에 주목하여 ‘미래 인류 구원의 사상’이라고 외친 작가(게오르규, 25시의 저자)가 떠오릅니다만 굳이 그런 예를 찾지 않더라도 우리 겨레의 정신을 상징하는 용어로 ‘홍익(弘益)’을 제외하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홍익(弘益)’은 우리 한겨레 고유의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외세의 침략이나 국력의 침체기마다 겨레 단결의 구심점으로 작용한 것,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교육의 이념으로 ‘홍익(弘益)’을 채택한 것 등은 우리 겨레의 삶 속에서 ‘홍익’의 가치와 의미가 여전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하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홍익(弘益)’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홍익(弘益)’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단군사화(檀君史話)’에 ‘고기(古記)’의 기록을 인용한 형태로 처음 등장한 이래 많은 세월이 흐른 탓도 있지만 오늘 우리가 ‘홍익(弘益)’의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도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모든 인식은 개념의 정의(定義)가 그 출발점입니다. 학문 또한 용어의 개념 정의(定義)가 기본입니다. ‘홍익(弘益)’의 정의(定義)는 무엇입니까?
막연히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 ‘홍익(弘益)’의 전부일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일까요?


‘홍익(弘益)’이 중요한 만큼이나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홍익(弘益)’의 가치는 퇴색할 수 밖에 없습니다.
‘弘益’을 통해서 ‘홍익’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弘(클 홍, 넓을 홍)’은 ‘弓’과 ‘厶’로 구성되어 있으며, ‘弓’은 ‘활’을 나타내고 ‘厶’는 ‘내려오다’라는 의미이므로 이들을 결합하면 ‘활이 내려오다’가 됩니다.
‘활이 내려오다’와 ‘크다’, ‘넓다’는 일견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논리 체계로 인식하는 우리 두뇌는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활이 내려오다’의 ‘활’은 당연히 ‘상징’입니다. 때문에 ‘활’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활’은 ‘활활’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활활’은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 중심에 ‘불’이 있습니다. ‘활활’은 ‘불의 모습’이므로 ‘활’은 곧 ‘불(=해)’이 됩니다.


‘활’이 ‘불’을 나타내는 것은 활의 구조(활과 화살과 화살촉)가 해의 구조(해와 햇살과 김, 불과 물과 김)와 같다는 점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한자들이 ‘활=해=불’, ‘화살=햇살=물’, ‘화살촉=김=기운’의 관계를 이용해서 만들어 집니다.
때문에 ‘활이 내려오다’는 ‘태양이 내려오다’가 되고 ‘태양이 비치는 영역은 넓고 그 작용은 크다’가 되어 ‘弘’은 ‘넓다’, ‘크다’의 의미를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益(더할 익)’은 ‘八+一+八+皿’으로 구성되어 그릇에 물이 차고 넘치는 모습과 의미를 나타냅니다.


‘益(더할 익)’의 의미를 ‘익’이라는 소리를 통해서 다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익’은 ‘익었다’는 의미이며 ‘익었다’는 것은 ‘무언가와 하나가 되었다’라는 의미라는 것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그릇(皿)에 적용해보면, 그릇은 원래 그 안에 무언가를 담기 위해 텅 빈 공간을 가지게 되며, 그 안에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그릇의 존재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릇이 가득 차게 되면 그릇의 목적이 충족된 것이므로 ‘하나가 되었다’라는 의미에서 ‘익’이라 하는 것입니다.


‘弘益’의 자의를 통해서 살펴본 ‘홍익’은 ‘활(해)이 내려와(작용) 그릇(세상)이 넘치다(하나가 되다)’라는 의미입니다.
해(太陽)는 세상 만물을 살리려고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쳐 그 영향으로 세상에는 만물이 넘쳐납니다.
의도적으로 남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처럼 그저 묵묵히 내 일을 할 뿐인데 그 결과가 세상에 미쳐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 바로 ‘홍익(弘益)’입니다.


그래서 ‘홍익(弘益)’은 ‘살림’입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상에 자신의 삶을 ‘살림살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살아감’이 ‘살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만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림’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자신의 삶을 ‘살림살이’라고 하며 누군가를, 무언가를 살린다고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요?


21세기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주목하면서 우리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뒤돌아보고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관련한자】


弘(넓을 홍; hóng) ; 해의 미치는 영역은 넓고 작용은 크다
益(더할 익;yì) ; 그릇이 넘치도록 더하다
弓(활 궁; gōng) ; 활은 불을 일으키는 도구, 활에서 불이 나오다
厶(사사 사; sī,mǒu) ; 하늘에서 은밀하게 내려오다
皿(그릇 명; mǐn) ; 물건을 담기 위해 만든 그릇

 

 

<글/조옥구/한자의 기막힌 발견의 저자>

 

 

 

'한자의 기막힌 발견' 의 저자 조옥구교수께서  ‘한자이야기’를 시작하면서를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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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러한 것들이 사전에 양해를 얻고 상의를 나눈 것이 아니라 조옥구교수님께 불편을 드릴지도 모릅니다만, 그냥 내 지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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