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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논산문화탐방]기호유교의 본산 논산, 조선시대 공립학교 노성향교

 

 

 

 

[논산문화탐방]기호유교의 본산 논산, 조선시대 공립학교 노성향교

 

논산 블로그 기자단에 합류함으로 해서 그동안 논산에 대해 알거나

또는 잘 몰랐던 부분을 하나 하나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며 글을 올려 보려고 합니다.

 

그 중 세번째로 기호유학의 본산인 논산의 돈암서원에 이어 沙溪 金長生[사계 김장생]의 묘역을 둘러 보았으며

아래의 이유로 서둘러 논산의 기호유교 뿌리라 할 서원과 향교에 대해 알아 보고 있는 와중에 둘러 본

노성의 노성향교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충남도는 내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논산시 인근에 기호유교문화의 중핵기관인 ‘유교문화원을 건립할 예정이라는 보도와 예산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는 바로 대전광역시에서 자신들의 지역에 유교문화원을 건립하겠다며 여러 방안을 추진해 나가면서라고 합니다.

 

충남도에서는 대전시가 기호유교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대전시의 억지는 수그러 들기는 커녕 오히려 유동인구수를 들어 대전 시내에 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뚱맞은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매년 논산에서 개최되는 논산 딸기 축제를 유입인구가 더 많은 대전에서 열면서 논산 딸기 축제라고 부르자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기호유교문화 개발 중심지역은 대한민국 모두가 다 알 듯이 바로 논산입니다.


논산은 기호유교 이념을 구현하려는 선비들의 문화가 뿌리내리고 활발한 활동이 펼쳐진 곳으로 기호유교 세력 가운데 율곡 이이의 적통을 계승한 김장생·김집·송시열·권상하 등이 있고 논산의 자랑인 명재 윤증선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논산에는 기호유교의 뿌리라 할 향교와 서원이 즐비한데 연산향교, 노성향교, 은진향교가 현재까지 보존돼 있또한 돈암·노강·죽림·구산·금곡·봉곡·충곡·행림·효암·휴정서원이 있습니다.  

 

이러한 싯점에 계룡도령이 논산 블로그 기자단으로서 논산의 문화를 알리려고 글을 올리고 있는 것과 맞물리는 듯하여 서둘러 논산의 여러 서원과 향교에 대해 글을 올려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야만 바른 여론이 형성되고 대전시의 딴지같은 억지 주장이 사라질 듯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더 부지런히 논산의 기호유학과 연관된 문화와 인물에 대해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대전시와의 의견차이를 보인다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급해진 계룡도령이

화요일을 택해 우선 노성 주변의 파평윤씨 노종파 윤문의 흔적부터 다시 찾아 다니기로 작정을 하였으나

많은 양의 비가 내려 부득이 하루 더 지난 24일에야 다녀 올 수 있었습니다.

 

24일 점심 식사 후 노성의 이곳 저곳을 다녔는데...

완전 여름날씨에 땀을 비오듯 흘리며 다녔다는 슬픈 전설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ㅠ.ㅠ

 

노성의 대부분 문화 유적지는 파평윤씨 노종파 윤문과 연관이 지어져 있습니다.


그 중 한 곳인 노성향교[魯城鄕校]는 충남 논산시 노성면(魯城面) 교촌리에 있는데

계룡도령이 존경하는 명재 윤증선생의 고택과 담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명재 윤증선생고택의 연못을 지나면 붉은 홍살문이 있고,

홍살문 뒤로 외삼문 너머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바로 노성향교입니다.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선시대 공립학교였던 노성향교는

1878년(고종 15) 현유(賢儒)의 위패(位牌)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을 교화할 목적으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창건 시기가 잘못알려진 것으로 보이며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조 9년(1631)에 대성전을 보수하였다는 명륜당 현판의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지금의 노성초등학교 자리 근처에 세웠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1700여 년경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고

1967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대성전은 충남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노성향교의 외삼문을 지나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이 바로 명륜당입니다.

 

 

노성향교의 건물 배치는 한가운데에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인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명륜당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유생들이 기숙하였던 곳인 양현재(養賢齋)가 있으며,

좌측에 수직사[守直舍]인 모화당(慕化堂)이 있습니다.

 

그리고 명륜당 뒤로 약간 높은 곳에 내삼문 그리고 대성전(大成殿)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성향교는 서재를 생략하고 그 자리에 수직사[守直舍]인 모화당을 두고 있는데,

수직사를 별도로 구역을 설정하거나 향교와 격담을 두지 않는 등

일반적인 배치와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명륜당 뒤 대성전으로 가려는데...
내삼문은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부득이 담 너머로 들여다 보는 수 밖에는 없는데...
계룡도령의 작은 키에는 담 아랫 돌담을 밟고 올라서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계룡도령은 키도 작지만 만만치 않은 내공이 깃든 변복[똥배]이 나와 있고,

보다시피 좁은 댓담이라 올라서기가 여간 위태로운 것이 아닙니다.
ㅠ.ㅠ 

 

 

겨우 겨우...
어찌 어찌해서 넘겨다 본 대성전의 모습입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공자를 중심으로 증자(增子), 맹자(孟子), 안자(顔子), 자사(子思)의 성위를 모시고,

동무에는 송조(宋祖)1현과 동국(東國: 우리나라) 9현을

서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우리나라)의 9현을 모두 5聖20賢등 25위를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성전에 송나라 2현만을 모신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합니다.

   

     

유림에서는 선현의 위덕을 받들어 나가기 위하여 매년 음력 2월과 상정일(그 달의 첫 번째 '丁'자가 들어 있는 날)에

선현들을 위한 제사를 올리고 있는데

이를 석존제(釋尊祭) 또는 대제(大祭) 석제(釋祭) 라고도 한답니다.

 

 

 

힘들고 어렵게 대성전을 담고 까치발을 내리는데 발 아래 둥굴레의 새싹들이 돋아 있습니다.

 

노성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는 것으로 향교의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돌아서 나오는 길,

노성향교 정문 옆에 피어있는 하얀 라일락을 보며

문득 얼마 전 대전시가 유교문화원 건립 장소로 옛 충남도청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킨 것을 보고 든 생각이 있는데,

송준길의 삶터인 동춘당과 송시열의 흔적을 남긴 우암사적 공원을 제외하면

기호유학과는 연관도 없는 대전시에서 유교문화원 건립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수수꽃다리였던 것이 외국에서 변형되어 다시 한국으로 수입되어 인기를 얻자

돈을 벌자는 욕심만 앞세워 라일락을 수수꽃다리라고 하며

대한민국 전역에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심보는 아닌지 궁금합니다.

 

모든 일에는 바른 길...

즉 정도가 있으니

대전시는 쓸데없는 욕심으로 혼란만 가중 시키는 행동과 유교문화원 건립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충청남도청의 원안대로 진행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2013년 4월 24일 다녀 온 노성향교에 대해 이야기 하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