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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미화된 독재자 박정희와 잊혀져가는 안중근의사


안중근과 박정희
(서프라이즈 / 개곰 / 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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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 군대와 싸우던 러시아 장교들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호의호식하던 귀족이 줄행랑을 쳤다는 사실, 그런 귀족한테 짐승 취급을 받았던 농노가 목숨을 걸고 침략군과 싸웠다는 사실이었다.

세르게이 볼콘스키 장군은 알렉세이 황제 앞에서 전황 보고를 하면서 귀족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며고개를 떨구었다.

 
농민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침략군을 몰아낸 경험은 러시아 장교들을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이제 유럽, 특히 프랑스 문화를맹종했던 생활을 반성하고 러시아 농민처럼 입고 말하고 먹고 마셨다.

같은 귀족이었지만 모든 사고와 행동의 기준을 프랑스에서 찾는 국적 불명의 상류층에게 벽을 느끼고 싸움터에서 생사를 함께 한 농민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고아원, 학교, 병원을 세워서 농민을 챙겼다.

무도회를 거부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새로운 러시아를 세우기 위한 청사진을 그렸다.

그런데 1825년 새로 황제로 등극한 니콜라이가 전제 정치로 돌아가려고 하자 농노제 폐지와 법 앞의 평등을 요구하면서 핍박받던 농민을 위해 자기들이 먼저 들고 일어섰다.

그러다 일부는 죽고 대부분은 유형을 떠났다.


어느 사회에나 남보다 더 특혜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엘리트라고 부른다.

왜 특혜를 주는 것일까?

왜 더 많은 봉급을 주고 더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좋은 재주로 공동체를 잘 살펴달라는 뜻에서다.

이것이 제대로 된 사회에서 엘리트에게 요구하는 덕목이고 또 엘리트도 자기에게 특혜를 주는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느낀다.


서민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를 바 없는 "세월"의 삶을 산다.

하지만 엘리트는 봄이 지났다고 여름이 꼭 오는 것이 아니고 겨울이 갔다고 봄이 반드시 오란 법이 없는 냉엄한 "역사"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공동체의 안전 항해를 위해 밤잠을 줄여가면서 불침번도 설 줄 알아야 한다.

배부른 사회가 선진국이 아니다.

이런 엘리트를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다.

선진국은 엘리트가 고달프고 후진국은 서민이 고달프다.


"세월"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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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변절과 배신의 역사 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3207


10월 26일은 박정희가 암살당한 날이지만 안중근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기도 하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나온 조선의 엘리트였지만 만주로 갔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일본 육사에 들어갔다고 박정희를 욕할 수는 없다.

자기 공동체의 운명과는 무관하게 "세월"의 삶을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적국의 땅에서도 실연은 서럽고 이별은 아프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진 선장 노릇을 하려는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던질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

쉬운 "세월"의 삶을 마다하고 고달픈 "역사"의 삶을 기꺼이 선택한 사람이라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자기 생존에만 급급했던 조선일보 같은 주류 언론이 공동체에 헌신했던 김대중과 노무현 같은 지도자에게는 시종 악담을 퍼붓고, 일신의 안위만을 챙겼던 박정희를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하고 거짓말을 밥먹듯하는 무능한 사기꾼까지 제2의 박정희로 포장하여 대통령에 앉혔다.

그리고 한국은 또다시 IMF 위기를 맞았다.

조선일보의 저주를 받으면서 두 전임 대통령이 확보해놓은 2500억달러의 외화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벌써 무너졌다.


학력이 높다고 엘리트가 아니다.

서울대와 고려대를 나온 김영삼과 이명박은 한국을 IMF로 몰아간 주역이다.

위기의 한국을 살린 것은 고졸이라고 한국의 정계 언론계 학계 관계에 구데기처럼 들끓는 쓰레기 대졸들한테서 괄시를 받으면서도 공동체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도록 경제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은 김대중과 노무현이었다.


"지역민"과 "시민"


러시아의 12월당을 이끈 장교들은 침략군과 싸우면서 같이 피를 흘린 자국민의 권익 신장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 들고 일어났다.

한국에서 5.16 군사반란을 일으킨 박정희는 해방 전에는 만주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던 동포를 때려잡았고 해방 후에는 정작 빨갱이는 본인이었으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때려잡았다.

군인이라고 다 같은 군인이 아니다.


국민이라고 다 같은 국민도 아니다.

광주 시민들처럼 한국 민주주의가 군사 깡패들에게 짓밟힐 위기에 처했을 때 들고 일어난 이들은 국민이고 "시민"이다.

반면에 아무리 전체 공동체에 해악을 끼쳤어도 같은 고향이라며 묻지마 지지를 보내고 그 딸까지도 추앙하는 국민은 그저 주민이고 "지역민"일 뿐이다.

식민지를 겪은 한국의 비극은 세월에 묻어 산 지역민이 역사에 몸을 던진 시민에게 아직도 큰소리치고 부끄러워할줄 모른다는 것이다.

조중동처럼 나만 챙기며 호의호식한 세력이 우리를 생각하며 풍찬노숙한 사람들 위에서 아직도 군림한다는 것이다.


안중근이 이토를 암살한 것은 이토가 한중일의 평화 공존에 걸림돌이 된다고 정말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국경을 넘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던 안중근은 동양이 합심하여 서양의 공세를 막아내자는 이토의 말을 정말로 믿었다.

그래서 을사늑약으로 약속을 뒤집은 이토를 동양 평화의 암적 존재라며 응징했다.

이토는 일본이라는 공동체에게는 진정한 엘리트였을지 모르지만 자기 공동체를 강탈당한 안중근의 입장에서는 용서 못할 적장이었다.

하지만 처지가 바뀌었고 이토가 진정한 엘리트였다면 이토도 아마 안중근을 저격했으리라.


안중근은 죽는 순간까지도 공동체의 앞날을 걱정했다.

동생 안정근에게 남긴 유언은 한국의 앞날을 위해 공업이나 임산 전문가가 되어달라는 당부였다.

그러나 한국 지역민 대다수가 존경하는 인물은 안중근에 가까운 길을 걸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아니라 안중근과는 반대의 길을 걸은 박정희다.

한국의 패권을 장악한 지역민 세력이 진정한 국민과 시민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다.

한일 화해도 요원하다.

독립도 못했는데 어떻게 화해를 할까?

 

ⓒ 개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