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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진실..-범인은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돌아와 경제 깨뜨린 그들이여
(위클리경향 / 조득진 / 2008 11/11)

 

MB와 경제수장들, 11년 전 IMF 장본인들과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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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8년 현재의 경제 위기. YS와 MB는 11년의 시간을 건너 많이 닮았다.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팔순 축하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6·25 이후 최대 국난으로 일컫는 1997년 11월의 외환위기. 정확히 11년 만에 대한민국엔 '제2의 IMF'라는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만 믿고 현 정권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스스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위기의 터널에 막 들어선 형국"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정부의 목소리엔 온도 차가 심하다.

현재 경제 상황이 외채 현황, 환율, 경상수지 등에서 외환위기 때와 닮은 점은 있지만 '제2의…' 운운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정부는 기업 부채비율이 1997년 424%에서 올해 1분기 기준 92.5%로 떨어지는 등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눈에 띄게 개선됐고, 가용액이 얼마냐는 논란은 있지만 외환보유액도 올해 8월 말 2,432억 달러로 1997년 말 204억 달러의 10배가 넘는 것을 근거로 "제2의 IMF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이미 국민과 시장의 신뢰는 MB의 경제팀을 떠난 상태. 현 경제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들이 11년 전 그들과 닮은 점이 많아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잇는 '트윈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외환위기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개신교 장로, 당선 시 나이(YS 65세, MB 66세), 경제부처 관리(YS 당시 한승수 경제부총리·강만수 재정경제원 차관, MB 정부 한승수 국무총리·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비슷한 점을 넘어 박세리와 박인비의 LPGA 최연소 우승, 허정무 국가대표 감독 등용에 서태지 컴백까지 인과관계가 별로 없는 공통점까지 등장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현 정부로서야 반가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YS정권 말, 혹독한 경제 위기를 겪은 국민들로서는 이 같은 공통점은 가슴을 서늘케 한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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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MB와 YS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대통령선거의 열기로 뜨거웠던 1997년 11월 19일, YS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경제팀을 경질한다고 발표했다.

이틀 후 가용 외환 보유고가 불과 73억 달러에 불과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금융 지원 요청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발표는 국민들을 충격과 분노에 몰아넣었다.

이전까지 "경제 위기는 없다"던 YS는 이후 '고통분담'을 강조했고, 국민들은 '금 모으기'로 정부의 정책 실패를 '땜방'해야 했다.

"달러를 충분히 비축해두었으니 지난 IMF와 다르다"고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을 바꾸는 MB의 인식 정도도 YS와 크게 다르지 않다.

MB 역시 결국은 '전두환의 땡전뉴스'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마이크 앞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 시절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기업과 국민의 고통 분담을 강조했다.

여당 일부에선 '달러 모으기' 발언이 나와 국민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경제 위기를 두고 남 탓하는 것도 일치한다.

YS가 IMF 외환위기는 DJ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탓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로, 최근까지도 그는 외환위기가 DJ 탓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MB 또한 임기 초까지만 해도 '7·4·7 경제성장'을 주장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만들어냈다.

바로 '고유가'와 '미국발 금융위기'.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환율 정책으로 서민들의 물가 고통이 극심해진 다음에야 7%의 고성장이 어려워 궤도 수정을 한 MB는 여전히 고유가 탓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양심적인 경제학자들은 "7·4·7 성장은 허구"라며 집단 성명을 낸 바 있다.

 

가장 심각한 공통점은 리더십의 부재다.

1997년 YS는 한보철강 부도 여파로 차남 현철씨가 사법 처리된 이후 무기력해졌다.

당시 YS의 지지율은 8%대로 곤두박질쳤고, 부실기업 정리가 절실했지만 추진력을 잃고 내내 부실기업에 끌려다녔다.

한때 60%를 넘었던 MB의 지지율도 현재 바닥권이다.

촛불시위 이후 10%대로 추락했다가 간신히 20%대로 올라섰지만 "영이 서지 않는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다른 면도 있다.

YS가 출범 초기 '역사 바로 세우기'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적 조치들을 통해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면 MB 정부는 실용정부를 표방하며 '7·4·7 공약'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현실성 없는 정책으로 초장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다.

YS가 정권 말기에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 등 국내 문제로 경제 위기를 초래한 데 반해 MB는 정권 초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와 환율 대응 등 정책 실패로 국민의 원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범인은 현장에 다시 돌아온다?

YS와 MB에 버금가도록 소름끼치게 닮은 인물이 바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강만수 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강 부총리는 1997년 3월부터 11월 경질 때까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지냈고, 강 장관은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냈다.

다시 말해 현 강 장관은 IMF 외환위기의 핵심적인 책임 라인에 있었던 사람이다.

이 점이 그의 장관 취임에 대한 우려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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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수 총리는 MB정부의 심각한 인재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초까지 경제부총리를 맡았던 그는 현재 대한민국의 총리다. 오른쪽은 1996년 12월 노동관계법 개정에 관한 대국민 합동담화문을 발표하는 한승수 당시 경제부총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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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당시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오른쪽)과 강만수 차관의 모습. 당시 ‘IMF 주범’으로 지목됐던 강만수 차관은 11년 만에 다시 경제수장으로 돌아왔다. <경향신문>

이 두 사람에게도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경제 위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오기'가 그것이다.

외환 위기 직전 당시 강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은 튼튼하다"고 했고, 현 정부의 강만수 장관도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고 탄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독선적 리더십에서도 강 부총리와 강 장관은 닮았다.

강 장관은 환율과 추경 등을 놓고 심지어 여당과도 불협화음을 빚은 결과 '대리경질'이란 경고장을 받은 적이 있고, 흩어진 민심을 보듬고 나가야 할 판에 오히려 종부세를 없애겠다고 고집해 중산층과 서민층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강 부총리 역시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 사태를 맞은 기아의 김선홍 회장과 자존심 대결을 하며 기업정리의 적기를 놓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IMF 외환위기 당시 YS처럼 MB 또한 경제팀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것. 그간의 경제 실책의 책임을 물어 여당과 야당이 모두 강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지만 MB는 “일의 중간에 내치지 않는다”며 이를 무시하고 있다.

"국가의 혈관을 잘라내는 기술자인 강만수라는 인물을 잘라내지 못하고는 경제 회복은 요원하다"는 세간의 말에 MB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이다.

한승수 총리에 이르면 MB 정부의 심각한 인재난, 미흡한 경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한 총리는 1996년부터 강경식 부총리가 발탁되는 1997년 3월까지 역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지냈다.

외환위기의 씨앗이 자라고 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시 당시에도 "IMF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후 YS정권 말기 외교통상부 장관을 끝으로 야인생활을 하던 그는 MB의 부름을 받고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11년 만에 그가 돌아오자 경제 위기도 함께 컴백한 꼴이다.


은행·기업의 여전한 구태 관행도 문제

그동안 1997년 외환위기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 학계와 언론에서 많은 토론과 분석이 있었으며 감사원의 조사는 물론 국회청문회도 열린 바 있다.

그 결과 한보 사태 이후 김영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가 외환위기 발생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됐으며, 경제 관료와 재벌 집단의 도덕적 해이 또한 환란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재벌과 은행의 구태 또한 11년이 지난 지금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돈은 벌면 전부 내 것이고 빚을 지면 나라가 대신 갚아주는' 방식의 도덕적 해이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주택·건설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팔다가 남은 값비싼 미분양 주택과 비업무용 토지를 사주거나 담보채권 발행을 도와 자금난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나, 은행 부실에 대해 1,000억 달러의 지급 보증을 서고 은행채 25조 원 매입을 통해 털어주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은 이 같은 구태를 지원하고 있는 꼴이다.

 

다른 점도 분명 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11월 중순 우리나라는 대통령선거의 열기 속에서 차후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나라살림이 다시 제자리로 올 수 있느냐가 화두였다.

그리고 당선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견이야 있지만 "YS가 팔아먹은 솥단지를 찾아왔다" "빈 금고를 다시 채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MB는 당선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상태. 남은 기간을 두고 "오히려 더 두렵다" "앞으로 4년이 걱정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총리와 경제수장을 비롯해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경제팀 전반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는 충고를 등한시할 경우 국민들의 걱정은 현실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 출처-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8699

 

ⓒ 조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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