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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서천 남당리로 조선전기 3대 여성 문인으로 꼽히는 김임벽당을 만나러 갑니다.

 

 

 

 

 

 

 

 

 

 

 

아직 알지 못하지만 오늘부터 알기 위해 김임벽당을 찾아 갑니다.

 

 


김임벽당(金林碧堂, 1492-1549)은 의성 김씨 김수천(金壽千)의 딸로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 비인현 기계유씨 유여주(兪汝舟)에게 시집갔다.

증조부 김숭로와 조부 김축에게 글을 배웠다.

유여주는 1518(무인, 18세)년에 현량과에 추천되어 이름이 높았으나, 기묘사화(1519) 때 고향 비인에 은거하여 배꽃 ․ 복숭아꽃과 더불어 살았다.

이로 인해 동네 이름이 도화동(桃花洞)이 되었다고 한다.

물 고인 곳에 연못을 파 못 가운데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선취정(仙醉亭)’과 ‘임벽당(林碧堂)’을 조성하였다.

서천 비인면 남당리에는 집터와 부부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5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현재 마을을 지키고 있다.


김임벽당은 많은 수의 한시 작품을 지었을 것이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7수밖에 없다.

김임벽당의 7세손 유세기(兪世基)는 각기 흩어져 전해지고 있던 7수의 시를 수습하여 각 명사에게 서와 발문을 청하여 『임벽당칠수고』를 발간하였다.

서문은 유세기(숭정후 10월)와 남구만(1693년 6월)이, 발문은 조지겸 ․ 윤증(1686년 정월) ․ 조인수 ․ 한태동(1686년 3월) ․ 남용익(1691년 봄) 등이 썼다.

7수의 시 가운데 <제임벽당> 2수는 임벽당이 베개에 자필로 수놓은 시이고, <증질자> ․ <증별종손> 2수는 『국조시산』에, <별증> ․ <빈녀음> ․ <고객사> 3수는 『열조시집』(명나라 전겸익이 엮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다.


 

다음은 <제임벽당>시이다.
 

<임벽당에 제하여>

작은 마을 그윽이 깊은 한 구석 小洞幽深別一區

자연 몹시 사랑하니 근심 잊을 만하네. 膏肓泉石可忘憂

인간사 옳고 그름 얽매이지 아니하고 人間非是渾無累

꽃 피면 봄, 잎 지면 가을인 줄 안다지. 花發知春葉脫秋 

<번역: 문희순, 배제대 강사>

 
이 시에 대하여 남구만(南九萬)은 “암송하면 성률이 화평하고, 음미하면 흥취가 그윽하고 한가로워『시경』이남(二南)의 유풍을 계승하였다”고 평하였다.

그리고 “ 세속을 벗어난 아취와 자득의 즐거움, 가난하나 검약하여 화려함을 그리워하지 않았다”며 도연명과 임포의 작품들과 견줄 만 하다고 극찬하였다.

이 시는 임벽당이 베개 양쪽 모서리에 자신의 필체로 수를 놓은 것인데 남구만이 서를 쓸 당시(1693년)까지 약 200여 년 간 후손이 보관해 내려 왔다고 한다.

후손들의 임벽당에 대한 존숭을 엿볼 수 있으나, 완전한 문집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여성 자신이 자작시를 베개에 직접 수를 놓아 애장 ․ 완상한 흥취는 여성에게서만이 발견할 수 있는 멋일 것이다.

 

<한시 감상>

*종손과 작별하며

외진곳 찾아오는 이 적고 地僻人來少

두메라 속세일 드믈구나. 山深俗事稀

가난한 살림에 술 없고 보니 家貧無斗酒

잘 손조차 밤중에 돌아서네. 宿客夜還歸

<번역 : 문희순 박사>

 

*이별후에

한스런 이별 세 해가 지나가고 恨別逾三歲

갓 옷 한 벌 의지해 추위를 막아본다. 衣裘獨禦冬

가을바람 짧은 귀밑머리 스쳐가고 秋風吹短鬢

차디 찬 거울 속에 비친 야윈 얼굴. 寒鏡入衰容

풍진 속에 나그네 꿈은 여울거리고 旅夢風塵際

이별의 시름 겹겹이 쌓여지누나. 離愁闕塞重

부질없이 생각나는 가깝고도 먼 일들 排徊思遠近

창가에 가득히 흐르는 근심과 눈물이여. 流歎滿房櫳

<번역 : 문희순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