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鷄龍山의사계/행사

창건 1592주년 영산대재와 순국 420주년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 추모재

 

 

 

 

 

 

 

계룡산 갑사 창건 1592주년 영산대재와 순국 420주년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 추모재 봉행

 

 

2012년 10월 27일 오전 9시

계룡산국립공원 갑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창건 1592주년 영산대재가 열렸습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치뤄진 행사는 스님들의 독경과 바라춤이 아름다우면서도 중장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팔랑이는 나비처럼 사뿐사뿐 자연과 독경에 어울지며 이어지는 춤사위는 가을 붉은 단풍처럼 아름답습니다.



 

이어 11시 순국 420주년을 맞은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 추모재가 봉행되었습니다.

 

궂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봉행된 행사는 군악대, 취타대, 의장대와 계룡대 호국사 주지, 군종 특별교구장 자광스님, 계룡대 호국사 통합신도회장 정태희 소장, 육군신도회장 정부수 준장 등과 충남정부부지사, 공주시장, 박수현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영규대사(?~1592)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맞서 싸운 3분의 대표적 승장(僧將)을 꼽자면 한양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와 평양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운 사명대사(1544~1610) 그리고 청주성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규대사는 현재의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서 태어난 충남의 인물로 그는 일찍이 출가, 계룡산 갑사에서 머리를 깎고 수행을 시작하여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함께 당대의 고승이었던 서산대사에게로 가서 가르침을 받고 여러 명산대찰을 다니며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갑사로 돌아와 청련암에 자리를 잡고 학승들에게 참선수행을 지도하는 한편 학승들의 건강을 위한 신체단련 운동과 무예도 가르쳤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국의 일념으로 전국에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 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영규대사의 승병과 조헌선생의 의병 700여명과 함께 한 금산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왜군에게 협공을 가해 큰 전과를 올리며 모두가 죽는 그 순간까지 싸우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는 계룡면까지 와 순국하였습니다.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번지에 있으며, 봉분과 상석 사이에 있는 높이 87㎝, 너비 37㎝, 두께 14㎝의 묘비 앞면에는 “의병승장군영규지묘(義兵僧將軍靈圭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칠대방손박경진경태봉사(七代傍孫朴景震景兌奉祀)가 묘비를 세운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와 승병들 그리고 수많은 의병들의 희생은 작금의 친일세력들과 매국 세력들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추어 볼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하겠습니다.

 

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희생정신이 더욱 더 필요한 시기인지라 호국불교의 선봉장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 순국 419주년 추모대제의 의의는 참으로 크다 하겠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