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이희망이다

‘정권 핵심’ 향한 분노 “청와대로 청와대로”

      
‘정권 핵심’ 향한 분노 “청와대로 청와대로”
대학생 100여명 연행 소식에 5만 촛불 “이명박 물러나라”
새벽1시 물대포 아수라…“날밝아도 집엔 안가” 밤샘구호
     최현준 기자 하어영 기자 황춘화 기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가 끝난 뒤 청와대로 행진해온 시위대가

31일 밤 서울 삼청동 들머리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경찰이 쏜 소화기 분말에 괴로워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hyopd@hani.co.kr 
 
  
 

“청. 와. 대. 로! 청. 와. 대. 로!” 시민들은 청와대로 몰려갔다.
경찰의 1·2차 저지선을 모두 뚫고 턱밑까지 갔다.
1960년 4월19일 이후 처음이다.
지난 31일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청와대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효자로와 삼청동길은 수만명의 분노와 함성으로 가득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 삼청동 시위대에 물대포 무차별 발사

 

■ 청와대 턱밑까지 31일 저녁 8시30분. 서울 시청앞 광장에 ‘대학생 10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와대 턱밑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다.
평화롭게 촛불행사를 치르던 5만여 시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문화제가 채 끝나기 전, 시민 3천여명이 먼저 “이명박은 물러나라, 쥐새끼를 때려잡자!”고 외치며 광장을 빠져나갔다.


곧이어 나머지 시민들도 차례차례 광장을 빠져나와, 안국동, 사직터널, 세종로 등 세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안국동과 사직터널 쪽은 청와대를 좌우로 우회하는 길이고, 세종로는 직선으로 통하는 길이다.
이전 거리행진 때 시위대는 경찰에 막힐 경우 신촌이나 서울역 방면으로 밀려나면서 우왕좌왕했지만 최대 인파가 모인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밤 10시께 먼저 안국동 방면에서 경찰 저지선이 뚫렸다.
시위대가 청와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삼청동길 들머리까지 진출한 것이다.
광화문로와 사직터널 방향으로 갔던 시위대도 저지선을 뚫고 효자로에 들어섰다.
세종로 저지선을 뚫거나 우회한 시위대도 합류했다.
밤 11시께 경찰은 광화문 앞길을 시위대에 내준 뒤 청와대로 가는 최종 저지선까지 완전히 밀려났다.


■ ‘고시 철회’에서 ‘독재 타도’로 31일 자정. 청와대로 통하는 대로를 틀어막은 시위대는 3만여명으로 불어났다.
시위대 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고시 철폐,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던 시위대의 구호는 어느새 ‘독재 타도’, ‘이명박은 물러나라’ 등으로 바뀌었다.
18개월짜리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정아무개(28·여)씨는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 이게 바로 독재다”라며 “이젠 대통령직을 내놓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정을 지난 새벽 1시. 시위대의 위세가 거세지자 경찰은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밀집해 있던 시민들은 피할 새도 없이 물벼락을 뒤집어썼다.
일부 여성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내 다시 모였다.
이 과정에서 <한겨레> 취재영상팀을 비롯해 여러 언론사의 취재진도 물벼락을 맞았다.
물에 젖은 시위대 수백여명은 새벽 찬공기에 떨었고, 일부는 오한 증상이 심해 긴급히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경찰의 물대포 공격에 시위대는 한층 더 격앙됐다.
시위대는 ‘폭력경찰 물러가라’, ‘독재 타도’,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전경버스에 위에 올라가 항의하다 물대포를 맞고 떨어져 다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물대포 안피한다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31일 밤 촛불집회 마치고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학생들이

1일 새벽 청와대로 통하는 삼청동 들머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고시 철회와 재협상,

이명박 대통령 퇴진 등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다

강제해산에 나선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맞으며 버티고 있다. 김정효 기자hyopd@hani.co.kr 


■ 아침 6시 “집에 가지 않겠다.” 1일 새벽 4시. 서서히 동이 터왔다.
여전히 시민 1만여명이 경찰과 대치를 지속했다.
시위대는 어디선가 배달된 김밥과 물, 따뜻한 음료 등을 서로 나눠 먹으며 추위를 달랬다.
길가에 불을 피워 젖은 옷을 말리는 이들도 보였다.
서울 이문동에서 온 강진원(28)씨는 “날이 빨리 밝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날이 밝아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물대포와 함께 방패를 앞세운 진압 병력이 시위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경찰 특공대도 수십명이 투입돼 강제 해산에 나섰다.
일부 시민들이 경찰 방패에 맞아 피를 흘리기도 했다.
7천여명의 지친 시위대는 금세 광화문을 지나 안국동까지 밀려났다.
아침 6시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져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8시께 모두 해산됐다.

 

 

최현준 하어영 황춘화 기자haojune@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0949.html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