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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박근혜의 애비 친일쿠데타 독재자 박정희의 친일 행각 재 조명

 

 

정의가 사라진 나라!!!

박근혜의 애비 친일쿠데타 독재자 박정희의 친일 행각 재 조명

 

 

박정희 전 대통령 혈서 쓰고 만주군 지원 

 

만주군은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일본군 현역 장교가 직접 지휘하는 경우도 많았다.

 

창립 당시부터 일본인이 고문을 맡아 조종하였고,군대의 이동과 연습,장비 교체,인사 이동과 같은 주요 결정에 관동군(만주 주둔 일본 육군부대)의 승인을 받는 지휘체계였다. 

 


 

민족문제연구소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 뒷받침 신문 기사 공개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이 오는 8일 공개되는 친일인명사전에 실리는 데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가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을 뒷받침하는 신문 기사를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연구소는 5일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에 실린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개했다. 지난달 28일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부친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게재되는 것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낸 데 대한 공식 반박인 셈이다.

연구소 측은 박 씨의 가처분신청으로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질이 흐려진데다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고 판단해 신문기사 사본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 공개한 신문 기사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라고 언급하며, "(친일인명사전 게재에 대한)불필요한 논란 확산을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문제가 된 신문은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을 감격시켰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였으나 연령 초과로 일차 탈락하였다.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이 썼다는 혈서에는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보도 사실과 관련해 연구소 측은 "만주군은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일본군 현역 장교가 직접 지휘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복무했기 때문에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하며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친일인명사전에 올리는 것은 정당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1105234247n5200

 


29일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정희 혈서 입대 재인증"이라는 제목으로 '박정희 혈서'가 조작이 아니라는 증거 사진들이 올라왔다. 

글쓴이가 일본 국회 도서관에 있는 마이크로필름을 직접 촬영한 사진들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과 혈서(血書)라는 글자와 함께 혈서의 내용이 담겨 있다. 

과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 사본을 공개한 것과 똑같다.


그동안 '박정희 혈서'는 인터넷 상에서 여러 차례 거론됐다. 많은 연구자들이 만주 지역의 대학이나 도서관 등에서 증거를 찾아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박정희 혈서' 내용이 쓰인 만주신문이 만주 지역의 신문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주신문은 일본에서 발행되던 지방지다. 
연구자들이 오랜 기간 증거를 찾지 못했던 이유다.

논란의 중심에 선 '박정희 혈서'는 박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둔 뒤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혈서'를 써 일본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내용이다. 


증거로 발견된 '혈서 군관 지원, 만주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23살이던 박 전 대통령은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 군관을 지원했으나 자격 연령(16~19세) 초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1939년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라는 혈서를 지원 서류와 동봉해 군관에 다시 한번 지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편지에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것으로 보도됐다.

http://media.daum.net/politics/all/newsview?newsid=20120830165718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