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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오바마 시대와 한국] ⑩음모설 도는 말콤 엑스의 죽음, 오바마 암살의 위험 이겨내야



오바마 암살의 위험 이겨내야
[오바마 시대와 한국] ⑩음모설 도는 말콤 엑스의 죽음
2009년 02월 06일 (금) 19:16:31 김종철 언론인 ( media@mediatoday.co.kr)

오바마에 비하면 말콤 엑스는, 어머니가 백인의 강간으로 태어난 ‘백인’이었다는 사실 말고는 철저히 흑인의 정체성을 가졌고, 흑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이었다.
말콤은  중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8학년(우리나라의 중학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해버렸다. 어느날 백인인 영어선생과 나눈 대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말콤, 너도 장래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한 번 생각해본 적이 있니?”
사실 나는 생각도 안 해보았었다. 그런데 왜 그런 대답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네, 생각해봤습니다, 선생님. 변호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 당시 랜싱에는 분명 흑인 변호사가-의사도 물론-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내가 그런 야망을 품도록 인상을 심어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실제로 확실히 아는 것은 변호사가 나처럼 접시를 닦지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 말콤 엑스.  
 
오스트로우스키씨는 놀란 것 같았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더니, 두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가서 깍지를 꼈다. 그는 어렴풋이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말콤, 인생에서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건 현실적인 자세다. 내 말을 오해하지는 마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너를 좋아한다는 건 너도 알 거야.  하지만 넌 깜둥이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알아야 해. 너는 네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너는 물건 만드는 손재주가 좋지. 모두들 목수 솜씨를 높이 쳐준다. 왜 목수일을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니? 사람들이 인간적으로는 너를 좋아하니까 일거리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거야.” (<말콤 엑스> 상권, 75쪽).

이 짧은 대화가 말콤 엑스의 정규교육을 끝내버리는 ‘도끼질’이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어머니는 인사불성 상태로 병원에 갇혀 살고, 남매들은 풍비박산이 된 채, 소년원 생활을 하던 그는 8학년이 끝나는 날  학교를 그만두고 이복누나인 엘라가 사는 동부 매사추세츠의 보스턴으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탄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보스턴에서 말콤이 구한 첫 직업은 나이트클럽의 구두닦이였다.  그는 ‘밤의 세계’에 살면서 출세한 흑인들이 백인 흉내내기를 하는 것을 날마다 보면서 그것을 따라한다. 콩크’(conk-곱슬머리를 약물로 풀어 백인처럼 보이게 하는 것)가 그 대표적인 보기였다. 그는 보스턴과 뉴욕을 오가는 열차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접시닦이도 하다가 27세 때인 1943년에 뉴욕시의 할렘으로 ‘진출’한다. 할렘은 세계 최대 도시인 뉴욕의 흑인 빈민가로서 범죄와 타락의 소굴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밀매, 도박, 사기와 공갈, 강도, 뚜쟁이 같은 ‘막장 인생’의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한다.

1945년 말 다시 보스턴으로 간 말콤은 패거리들과 함께, 부유한 백인 주택들을 털다가 이듬해 1월에 체포되어 8년 징역을 선고받고 매사추세츠주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의 자서전을 이 대목까지 읽어보면 동서양에서 나온 어떤 소설에 못지 않게 범죄 경력이 화려하고 다양하다. 나중에 흑인사회뿐 아니라 아프리카 민중운동 진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하나가 된 인물의 과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감옥에서 말콤 엑스의 별명은 ‘사탄’이었다. 그가 종교를 적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옥살이 하면서 만난 ‘빔비’라는 흑인(독학으로 상당한 지식을 쌓은 무신론자)의 권유에 따라 ‘영어통신 코스’를 시작하고 ‘라틴어 통신강좌’까지 받으면서 말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것이 그에게 찾아온 ‘작은 구원’이었다. 그는 ‘게걸스러운’ 독서광이 되어 감방의 불이 꺼진 뒤에도 복도에서 스며드는 불빛으로 새벽까지 책을 읽곤 했다.

1948년에 말콤 엑스에게 생애 최대의 ‘구원’이 찾아온다(이것이 나중에 그가 암살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고 추정되기는 하지만).  그의 형 필버트가‘이슬람 국가’(Nation of Islam, 약칭 NOI)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낸 데서 그 구원은 시작되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말콤의 여러 남매 중 손아래인 레지날드는 가장 열성적인 ‘전도사’였다.

“형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담배를 끊으면 감옥에서 나오는 방법을 알려줄께”라는 그의 글을 보고 흥미를 느낀 말콤은 노포크 교도부락에서 옥살이 하던 기간 내내, ‘검은 이슬람교도들’(Black Muslims)의 지도자인 일라이자 무하마드(Elijah Muhammad, 1897~1975)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일라이자 무하마드는 미국 흑인운동사에서 긍정과 부정 양면으로 아주 중요한(나중에 자세히 살펴볼 마틴 루터 킹처럼) 인물이므로 여기서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조지아주 샌더스빌에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일라이자 풀(Poole)이었다. 그는 말콤 엑스와 그 유명한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원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Cassius Clay], 그리고 루이 패러칸(Louis Farrakanh, 1933년생. 말콤 엑스의 영향을 받아 NOI에 들어가서 그의 부목사로 일하다가 말콤이 탈퇴한 뒤  NOI의 초대 대변인이 됨)의 종교적 스승이자 삶의 지표였다. 그는 침례교 목사의 아들이었으나 성인이 되자 미국 최초의 이슬람 단체에 들어가서 잠시 활동하다가 1934년에 NOI를 창시한 뒤 급격히 교세를 넓혀 강력한 흑인 지도자가 되었다.
1952년 가석방으로 출옥한 말콤 엑스는 디트로이트의 이슬람 제1사원에서 ‘위대한 스승’ 일라이자 무하마드를 만난다.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죄수인 나에게 시간을 내어 편지를 써준 그 위대한 알라신의 사도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우리 흑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그의 생애를 고통과 희생으로 보낸 사람이라고 내가 들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가 말을 시작하자 나는 그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말콤 엑스> 상권,    319쪽) .
 
무하마드를 만나서 설교를 듣고 대화를 하면서 말콤은 독실한 무슬림이 되어 성을 ‘엑스’(X)로 바꾼다. “리틀이란 이름을 가진 푸른 눈의 백인 악마가 그의 성을 나의 아버지쪽 선조에게 붙여준 것 대신에” 이슬람 민족의 성으로 엑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엑스는 노예인 흑인이 선조를 모른다는 의미였다.
 
일라이자 무하마드의 각별한 신임을 얻은 말콤은 ‘이슬람 국가’에서, 세속적으로 말하면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는 1953년 6월, 디트로이트에 있는 제1사원 부목사로 임명된 이래 보스턴 제1사원을 개설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한다. 그는 1959년 뉴욕에서 ‘증오가 낳은 증오’라는 제목으로 NOI에 관해 텔레비전 방송을 한 것을 계기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당연히, 미국 주류사회와 보수세력은 ‘백인은 악마’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말콤을 미국을 전복하려는 ‘불온분자’로 여기게 된다. 연방수사국(FBI)이 그를 도청하고 미행했음은 물론이다.
말콤이 1952년 NOI에 가입했을 때 5백여명에 불과하던 신도가 그가 탈퇴하기 전인 1963년까지 2만5천여명으로 늘어난 데는 그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미국 이슬람운동에서 일라이자 무하마드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말콤이 무하마드와 결별하고 NOI를 떠나는 시간이 온다. 1963년 11월 대통령 케네디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당하자 언론의 논평 요구를 받은 말콤이 ‘자업자득’이라고 대답한 것이 무하마드를 격분시켰다. 무하마드는 말콤에게 6개월 자격정지를 명한다. 결별의 더 결정적인 원인은 무하마드의 간음과 사생아였다. ‘무하마드가 개인 비서들과 간통해서 잇따라 임신하게 했다’는 교단 안의 소문을 믿으려 들지 않던 말콤은 오랜 번민 끝에 당사자들을 만나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을 받고 ‘이슬람 국가’를 떠난다. 이밖에도 그가 무하마드와 결별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세계적 스타’가 된 말콤에 대한 무하마드 자신과 교단 간부들의 질시와 모함이었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열중했던 ‘이슬람 민족’ 운동을 떠난 말콤 엑스는 말할 수 없는 고뇌에 빠져 있다가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하지’(순례)를 떠난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여러 인종의 무슬림들과 대화하고 기도하면서 ‘백인은 악마’라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린다.

여기 이 고대의 성지, 아브라함과 마호멧 및 성서에 나오는 그밖의 모든 선지자들의 고향에서 피부색과 종족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보여준 것만큼 진지한 환대와 참된 형제애의 정신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지난 주일 동안 내내 나는 ‘온갖 피부색의 사람들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친절을 목격하고 완전히 말문이 막히고  넋을 잃을 정도였다 (<말콤 엑스> 하   권, 207쪽).

그는 이때부터 수니파(시아파와 함께 이슬람의 양대 교파)로 개종하면서 엘 하지 말리크 엘 샤바즈라는 아랍식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한다.
말콤은 메카 순례 이후 행동반경을 넓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흑인의 단결과 우애, 모든 인종의 평화공존을 강조한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단결기구(Organization of Afro-American Unity, 약칭 OAAU)의 의장으로서 아프리카 단결기구(OAU)와 연대하여 열정적으로  활동한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온다. 1965년 2월 21일 말콤 엑스는 뉴욕 맨해튼의 오듀번 볼룸에서 열린 OAAU의 모임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 앞줄의 사나이 세 명이 벌떡 일어서서 말콤 엑스를 겨냥하고 일시에 총을 쏘아댔어요. 그것은 마치 총살집행장면 같았어요.”
말콤 엑스는 그를 명중시킨 열여섯 발의 총알 중 첫 알을 맞는 순간 한 손이 가슴 위로 내려졌다. 다음 순간 다른 한 손이 위로 치켜올려졌다. 그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은 총탄에 아스라졌으며 그의 턱수염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는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의 거대한 몸집이 뻣뻣하게 뒤로 넘어지며 의자 둘을 쓰러뜨렸다 (<말콤 엑스> 하권, 351쪽).

미국 경찰은 ‘검은 이슬람교도’ 세 명을 체포했는데, 당연히 ‘1급 살인’으로 사형을 당했어야 마땅한 그들은 20여년 남짓 옥살이를 마치고 풀려났다. 그러나 말콤 엑스의 사후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국가 정보기관이 암살에 간여했으리라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다시 읽으면서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암살당한 백범 김구 선생과 몽양 여운형 선생을 연상했다.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도 생각났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나는2008년 미국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랐다. 부시를 반드시 눌러야 세계가 훨씬 더 편안해질 텐데, 오바마가 후보가 되면 인종주의자들과 극우보수세력의 암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들 부시가 임기 8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잃게 한 그 많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부시의 길을 따를 가능성이 큰 존 매케인의 당선은 막아야 할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2000년에 앨 고어가, 2004년에 존 켈리가 패배함으로써 미국에는 끔찍한 역사의 퇴행이 나타났다. 한반도에서는 더 앞당겨질 수도 있었던 북한의 개방이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같은 보수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극우에 가까운 보수가 집권하면 그토록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과 세계 양심세력의 기대에 맞게 대통령이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가 말콤 엑스처럼 무방비 상태로 비극적 최후를 맞지 않고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면서 4년(또는 연임한다면 8년) 임기를 무사히 마치기를 바랄 뿐이다.
말콤 엑스가 암살당한 1965년에 오바마는 네 살이었다. 그러니 그가 말콤의 죽음을 알았을 리가 없다.

글쓴이 / 김종철

-전 동아일보사 기자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전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현 재능대학교 초빙교수
- 평론으로 <상업주의소설론> 등, 저서로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1992)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1995), 역서로 <말콤 엑스>(공역,1978) <산업혁명사><프랑스혁명사>(1982) <인도의 발견> 등

최초입력 : 2009-02-06 19:16:31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