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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와 MB 정부 사생결단 [시사IN]

MBC와 MB 정부 사생결단

미디어산업법이 개정되면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되고 신문사와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20%까지 소유할 수 있다.

공영방송을 정부 통제 아래 두는 ‘공영방송법’도 준비 중이다. 둘 다 MBC를 겨냥한 법이다.

‘재벌 방송’이냐 ‘한나라당 방송’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MBC 노조는 투쟁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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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2008년 12월 29일 (월) 09:30:49고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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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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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언론노조 총파업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언론장악 7대 악법’ 이름이 적힌 얼음을 깨고 있다.

이것은 전쟁이다.

정권과 언론 간의 전쟁이 났다.

선제공격을 한 곳은 이명박 정부다.

2008년 12월3일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미디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7개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한나라당의 개정안을 ‘언론장악 7대 악법’이라고 규정한 언론노조는 12월26일 오전 6시부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한나라당의 개정안은 지상파 방송사를 국민에게서 빼앗아 정권과 조·중·동과 재벌에게 주려고 만든 ‘약탈법’이다. 전 언론계가 나서서 이를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MBC를 겨냥한 것이었다.

정권과 언론 간의 전쟁이되, 구체적으로 정권과 MBC의 싸움인 것이다.

개정안이 민영화를 통해 MBC가 조·중·동과 재벌 소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터주었기 때문이다.

신문법 개정으로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되고 방송법 개정으로 신문사와 재벌이 방송사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면 MBC는 조·중·동과 재벌 소유가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번 언론노조 총파업의 중심에 MBC가 있다.

MBC는 ‘언론노조 총파업’의 ‘대마’다.

“MBC가 무너지면 언론노조 총파업이 무너지고, MBC가 버티면 언론노조가 승리한다”라며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아예 MBC 노조에 상주하면서 파업을 진두지휘한다.

MBC 노조가 이번 파업의 ‘본진’이라는 것은 언론노조 출정식에서도 확인되었다.

참석자의 8할이 MBC 조합원이었다.

MBC 노조가 언론 총파업 ‘본진’


12월19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20주년 기념식장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MBC에 뒤늦은 선전포고를 했다.

최 위원장은 “MBC의 ‘정명(正名)’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라고 말하며 MBC를 압박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 회의실과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며 법안 상정을 막았다.

이에 MBC는 <뉴스데스크> <뉴스 후> <PD수첩> 등 뉴스·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의 언론관련법 개정을 맹비난했다.

<PD수첩> 송년특집 방송에서는 언론 관계법을 두고 벌어지는 국회 상황을 주요 꼭지로 보도했고, <뉴스 후>에서도 언론관계법 개정을 다뤘다.

<뉴스데스크>에는 매일 관련 아이템 2~3꼭지를 편성했다.

12월22일, 정부에 강력한 우군이 나타났다.

조·중·동 보수 언론 3사는 공정언론시민연대의 방송 모니터 보고서를 대서특필하며 MBC와 KBS가 편파 보도를 일삼았다고 공격했다.

이들 3사는 “2002년 병풍사건부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올해 광우병 사태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의 뉴스 보도가 일관되게 한 방향의 편파성을 보였고 점점 심해졌다”라고 보도하며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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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민주당 문광위 소속 의원들은 상임위 회의실을 점거하고 한나라당의 법안 상정을 막았다.

이로써 언론 전쟁의 구도가 간단하게 정돈되었다.

한쪽에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방송시장 재편을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 언론 그리고 행동은 하지 않지만 돈을 싸들고 대기 중인 재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MBC를 앞세운 언론노조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있다.

대한민국 파워집단의 건곤일척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발의한 ‘미디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7개의 법률개정안’은 신문법, 언론중재법,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전파법,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으로 구성돼 있다.

한나라당이 세 가지 논리를 내세우며 이 개정안을 추진한다.

‘언론자유의 신장’ ‘미디어산업의 활성화’ ‘대국민 서비스 향상’이 그것이다.

한나라당 개정안의 핵심은 신문·방송 겸영 규제 폐지(신문법 개정)와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용이다(방송법 개정).

개정되면 이들은 지상파 지분을 각각 20%(컨소시엄을 구성할 경우 40%까지 가능)까지 소유할 수 있고 케이블 종합편성 채널이나 보도 채널의 지분 49%를 가져갈 수 있다.

김재용 MBC 노조 대변인은 이런 한나라당의 개정안에 대해 ‘오래된 미래’라고 지적한다.

그는“한나라당은 꾸준히 방송 장악을 꾀해왔다. 2003년 언론대책특위, 2004년 언론발전위원회에서도 같은 논의를 진행했다. 2008년 미디어산업발전특위로 이름만 바꿔서 같은 내용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내용은 바뀐 것이 없지만 외부 조건은 급변했다.

한나라당은 여당이 되었고 다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한 MBC 노조 간부는 이명박 정부가 ‘최악의 경우의 수’ 두 가지를 놓고 선택을 강요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유하자면 정부는 ‘한나라당 방송 할래?’ 아니면 ‘재벌 방송 할래?’ 하면서 선택을 강요한다.마치 키가 크면 침대 크기에 맞춰 다리를 자르고 키가 작으면 몸을 늘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MBC를 자기 입맛에 맞는 공영방송이 되든지 아니면 자기들과 한통속인 언론사나 재벌이 소유하는 민영방송이 되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공영방송법’으로도 압박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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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공영방송법’을 제정하면 MBC는 이 법을 따르는 공영방송이 되거나 아니면 민영방송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한다.

MBC 노조에서는 이 경우 민영방송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공영방송법’의 기조는 80% 수신료와 20% 광고료로 운영되는 것인데, 시청료 인상에 이어 MBC에까지 시청료를 내라고 하면 시청자가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영방송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러면 이미 정한 법대로 신문사나 재벌의 방송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법의 제정을 기필코 막아야 한다고 본다. 

사실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는 이전 정권에서도 있었다.

특히 김대중 정부에서 심했다.

보수 언론은 이 부분을 집중 부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 빼먹은 사실이 있다.

그때도 MBC 노조는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사실이다.

1999년 방송법 개악에 MBC 노조는 파업으로 맞섰고 결국 법안 개정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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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한향란
MBC 엄기영 사장(위)은 ‘

박성제 노조위원장은 이번 싸움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우리가 지난 9년 동안 참 편하게 살았다. 정권은 끊임없이 방송 장악을 시도했다. 그러나 우리가 시위하고 집회하면 만나주고 만나면 얘기가 통해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정부는 DNA가 다르다. 독재정권 시절로 되돌아갔다. 저들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처럼 무지막지하게 나오면 우리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절처럼 치열하게 싸우면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 정권과 MBC는 이미 전반전을 치렀다.

발단이 된 것은 <PD수첩> ‘광우병편’이었다. ‘광우병편’을 제작한 이춘근·김보슬 PD에 대한 검찰의 강제 구인을 MBC 노조는 사수대를 조직해 막았다.

MBC 경영진은 방송통신심의위의 시청자 사과 명령에 ‘<PD수첩> 사과방송’을 내보내며 굴복했지만 MBC 노조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이후 MBC 노조는 사과 방송을 내보내는 등 정권 친화적인 결정을 내린 이사 2명에 대한 퇴진 운동을 벌여 이들의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 방지 약속을 얻어냈다.

이후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 편성도 막아내는 등 전열을 재정비했다.

지난 12월10일에는 평기자 75명이 “MBC 뉴스가 권력의 사정을 봐주고 있다”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보도국 간부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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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MBC 노조가 이번 ‘언론노조 총파업’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지방 MBC 노조원도 파업에 적극 참여

1998년 노조가 설립된 이후 MBC 노조는 총 여섯 차례 파업을 벌였다.

이 중 1988년 첫 파업은 구속자가 많았고, 1992년 파업은 50일 동안 지속된 가장 긴 파업이었으며, 1999년 파업은 ‘방송법 개악 저지’를 위한 파업이었다.

MBC 노조는 이번 파업이 이 세 파업을 합칠 정도로 큰 희생을 치르고 장기간 지속하는 파업이 되리라 예상한다.

이 싸움을 위해 MBC 노조는 1년을 준비했다.

‘<PD수첩> 사태’는 노조가 전열을 가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수대를 운용하면서 투쟁의식을 고취했다.

이번 파업에는 특히 지방 MBC 소속 노조원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제주 MBC에서 72명 조합원 전원이 상경 투쟁을 벌이는 등 전국적으로 1000여 명 가까운 조합원이 파업 출정식에 참석했다.

지방 MBC 소속사가 이번 파업에 집중하는 것은 정부가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하면서 지방 MBC의 존립 기반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비조합원 간부들도 상당수가 이번 파업을 심정적으로 지지한다.

한 간부는 “감개무량하다. 후배들이 권력에 대항하는 MBC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대견하다”라고 말했다. 한 노조 조합원은 “선배들의 무언의 지지가 느껴진다. 회사 경영진도 그리 압박하고 있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내에 적이 없는 행복한 파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08년 12월25일 파업 전야, 노조원인 박혜진 앵커는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에서 파업 참가를 알리며 서막을 올렸다.

그는“본사를 포함한 언론노조가 내일 아침 방송법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조합원인 저는 이에 동참해 당분간 뉴스에서 여러분을 뵐 수 없게 됐습니다. 방송법 내용은 물론 제대로 된 토론도 없는 절차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모두 힘든 때, 혹여 자사 이기주의 그리고 방송 이기주의로 보일까 걱정되지만 그 뜻을 헤아려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시청자의 양해를 구했다. 

12월26일 오전 10시, MBC 본사 1층 로비에서 노조 출정식이 열렸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 되어 우리 나선다.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가가 울려퍼지는 사이 노조원들이 로비를 빼곡히 메웠다.

정영하 노조 사무처장은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회사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지우십시오. 이제부터 회사 생활이 아닌 조합 생활을 하게 됩니다. 모든 행위는 노조의 지시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오후 2시, 언론노조 전체 출정식이 영하의 날씨에 여의도 국민은행 빌딩 앞에서 열렸다.

형식상 언론노조 출정식이었지만 내용으로는 MBC 노조 출정식 2부였다.

참가자 대다수가 MBC 노조 소속 조합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MBC 노조가 이번 파업에 절실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권도 강공으로 맞섰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노사 교섭 대상에 속하지 않는 사유를 내걸고 있는 명백한 불법 파업이고 정치투쟁이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방침이다. MBC 등 방송사의 파업은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특정 방송사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유화하는 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정부 각 기관이 빠르게 움직였다.

심지어 지방 노동청에서 언론노조 지·본부에 파업 참가 여부를 조사할 정도였다.

<시사IN>에도 노동감독관이 전화를 걸어와 언론노조 총파업 참여 여부와 참여자 숫자, 그리고 파업 참여 방식 등을 물어왔다.

이를 통해 정권이 이번 언론노조 총파업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파업에 돌입한 MBC 노조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KBS가 연대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노조 간부는 “KBS 노조 집행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아쉽다. KBS에 낙하산 사장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연대 파업도 준비했었는데 KBS가 파업을 벌이지 않아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함께하면 힘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같이 싸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MBC 노조만의 외로운 싸움은 아니다.

최대 노조인 KBS 노조가 파업에 동참하고 있지 않지만 300여 노조원이 첫 파업을 벌이는 SBS와 장기 파업 경험을 가진 CBS의 참여로 언론노조 파업은 위력을 발휘한다.

정부의 지역신문 지원기금 삭감 조처에 항의하는 지역신문들도 지면 파업을 벌이며 열성적으로 참여 중이다.

특히 도움을 주는 곳은 YTN 노조다.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는 YTN 노조는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보도 투쟁’을 통해 파업 상황을 전한다.

YTN 노조가 그동안 보여준 굳은 결의는 타사 노조원의 참여의지를 고취하고 있다.

한 언론노조 관계자는 “150일 넘게 퇴진 운동을 벌인 YTN 노조처럼 우리도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YTN 노조 효과’가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길고 치열한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MBC 노조에게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지만 정권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언론관계법을 2월 임시국회로 돌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지만 지도부는 ‘지금 할 수 없다면 그때도 할 수 없고, 그때 할 수 없다면 지금도 할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싸움이 제대로 붙었다.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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