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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한국의 이명박은 일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축소판

 

 

‘MB’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축소판

 


‘MB’를 이해하기에 더 없이 좋은 모델이 바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다. 만약 ‘MB’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고 싶으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를 살펴보면 된다. 그 정도로 둘은 흡사한 점이 많다.

 

일단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 끝에 ‘정주영’ 회장에게 발탁 되어 대기업 사장에 이어 대권까지 거머쥔 성공 과정은 평민 출신으로 갖은 잡일을 하다가 ‘오다 노부나가’에 발탁 되어 파격적으로 사무라이 계급으로 뛰어 올라 ‘천하인’이라는 일본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간 ‘히데요시’의 입지전적 성공 과정과 정말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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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공 과정을 좀 더 깊숙이 들어가 어린 시절부터 살펴봐도 일찌감치 집을 나간 ‘히데요시’가 혼자 천하를 떠돌며 이런저런 온갖 잡일을 하며 꿈을 닦는 것과 ‘MB’가 고학으로 꿈을 찾아가는 과정도 여러모로 흡사하다. 그리고 유능한 보스를 만났을 때 그 보스에게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고속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역시 서로 판박이다.

 

‘히데요시’는 남들이 쉽게 못하는 일을 떠맡아 그 일을 성사 시킴으로써 능력을 인정 받아 마구간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건축 담당으로 그리고 사무라이로 계속 발정해 갔다. 그리고 급기야 큰 전공을 세워 다이묘(영주)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넘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MB’ 역시 마찬가지로 평사원에서 출발해 특별한 업무 실적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해 현대건설 사장 자리를 차지하고 그 경력을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 했다.

 

두 명 다 그렇게 크게 성공하기까지는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히데요시’의 일본측 평가를 보면 그는 대단히 영악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잘 다루고 기회에 무척 강하고 임기응변에도 강했다. 그래서 몇 번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위험에서 잘 벗어났다. 그래서 그는 혼란한 전쟁 틈에 그 동안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좋게 말하면 파격적이고 비하해 말하면 잔머리와 꼼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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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또한, 좋게 말하면 파격적인 방법으로 비하해 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법과 불법으로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서갈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 동안의 전과와 각종 사건들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들의 이런 잔머리와 편법, 불법은 모두 전쟁과 경제 성장기라는 특별한 시대적 상황에서 행해졌기에 그들의 그런 꼼수와 편법이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었고 용서 되고 오히려 능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는 확실히 붙잡을 줄 알았고 그로 인해 일본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일본 제일의 실력자 ‘오다 노부나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와 전혀 예상치 못한 시기에 그 부하의 반란으로 허무하게 죽었을 때 ‘히데요시’는 지금이야 말로 일인자로 나설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가장 빨리 주군의 복수에 나서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후 천하의 주도권을 잡았다.

 

물론 대권을 차지하는 과정에 주군의 복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주군의 직계 후손들을 교묘하게 죽이거나 자살하게 끔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과정은 ‘오다 노부나가’가 오랜 시간 천하 통일의 기반을 닦은 과정에 비해 의외로 수월 했다. 좀 과장해서 잘하면 ‘오다 노부나가’가 거의 만들어 놓은 보물을 거의 주워 갖다시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MB’ 또한 서울 시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반대 세력들의 견제를 뿌리치고 단 한번의 도전으로 대권을 차지 했다. 그 이전에 몇 번의 대권 과정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성공 했거나 끝내 떨어졌던 YS, DJ나 회창옹에 비하면 거의 주워 먹는 수준이었다.

 

이런 이들의 성공 신화에 가장 밑바탕이 된 것은 사람을 움직일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고 그로 인해 남들보다 탁월한 실적을 발휘 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대중들을 움직였기에 대권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만약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고작 ‘노부나가’에게 인정 받아 하급 사무라이에서 끝날 운명이거나 ‘정주영’ 회장에게 인정 받아 고급 관리자 자리에서 끝났을 것이다.

 

자, 그럼 이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였는지 살펴보자.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움직였길래 그런 대단한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까. 남들보다 탁월한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그 대단한 능력의 가장 큰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믿어지기 힘들겠지만 바로 허풍과 허세였다. 오죽하면 ‘히데요시’를 허풍의 명인, 허풍의 달인으로 부르겠는가. 그는 항상 자신의 능력이 적고 자신이 가진 것이 적어도 많이 가진 것처럼 선전하고 허풍을 쳐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오죽하면 자신의 행렬 앞에 미리 ‘허풍꾼’들을 풀어 대단한 인물의 행차하니 잘 보라는 선동을 하게 했을까. 그는 그런 선전, 선동에 탁월한 재주를 발휘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다. 남들보다 5배 , 10배의 보상을 해줌으로써 그 소문이 나서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그 당시 일본인들은 오랜 전쟁으로 영주, 무사, 산적이든 간에 겉으로는 강한 체하지만 내심으로는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장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해 허세를 부르며 강한 척 했지만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얼른 비위를 맞춰야만 죽음을 면하는 세상이었기에 늘 마음 속으로는 더 강자가 나타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사무라이 정신을 강요하며 복종 보다는 할복을 찬양하지만 거꾸로 보면 그만큼 죽음이 두렵기에 그토록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혼란의 시대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면 어떤 경우에도 호탕하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도 허세를 부르며 ‘이까짓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웃는 허풍과 허세가 필요 했다. ‘히데요시’는 그 점을 간파했다. 그리고 남의 위에 서겠다는 모진 결심으로 잔뜩 허풍을 떨며 통 큰 사람으로 행동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허풍과 허세는 주효 했다. 그런 그의 허세를 믿고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 했다. 워낙 강자만이 살아남고 강자에 붙어 있어야만 목숨 부지 할 수 있는 세상인지라 그의 허세가 통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허풍 꾼들을 흔히 본다. 사업가라면서 겉으로는 번듯한 대형 외제차를 타지만 속으로는 빚 투성이거나 조폭이라고 외제차에 좋은 양복 입지만 집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는다. 불나방 같이 철없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를 따른다. 대부분의 사기꾼들이나 한탕주의자들이 그런 식이다. 사회가 혼란하고 어지러울수록 그런 사람이 득세하고 사회가 안정되어 있고 정상적일수록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기가 힘들다.

 

그런데 100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혼란과 혼란이 거듭된 일본의 전국 시대였기에 ‘히데요시’의 허풍은 그를 진짜 강자로 착각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힘이 되고 밑바탕이 되어 그는 일본 전국을 천하 통일 할 수 있었다. 그의 허풍은 허풍이 아니라 현실이 된 것이다.

 

자, 다시 500후의 한국으로 넘어와서 ‘MB’ 역시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대권을 움켜 쥐었다. 일본이 거듭된 전쟁으로 하나같이 그 누구든 강자가 나타나 천하통일을 해주면 하는 바램 속에 ‘히데요시’가 나타났듯 오직 ‘돈’, ‘돈’만을 외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그 누구든 돈의 마술사가 나타나 부자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속에 ‘MB’가 나타났다.

 

만일 일본에서 오랜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런 볼품없는 출신의 허풍쟁이가 인정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의 출신을 따져 그 자리를 인정하지 않았을 거고 평화 시기라면 그의 허풍이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역시도 돈에 미친 ‘쩐의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의 ‘747 공약’이나 ‘경제대통령’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풍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허풍과 허풍이 통하는 사회 분위기의 최고 수혜자라는 점까지 똑같다. 그래서  ‘MB’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대권을 움켜쥔 이후의 행보를 살펴보자.

‘히데요시’는 전국시대를 통일하자 그 동안 허풍으로 자신에게 복종하면 엄청난 영지를 준다고 했는데 막상 통일을 하고 나니 나눠줄 영지가 부족 했다. 사람들을 끌어 모을 때는 다른 주군들에 비해 5배, 10배의 영지를 준다고 허풍을 쳐 영주들을 복종 시켰는데 그것이 누적되다 보니 이제 통일은 하였지만 일본 전체를 영지로 내주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약속을 지킬래야 지킬 수가 없고 안 지킬래야 안 지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새로운 영지가 필요 했다. 게다가 몰락한 영주(다이묘), 무사 등의 불평을 무마하기 위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 했다.

 

주머니에 칼을 넣어두면 튀어나온다는 것을 너무 잘아는 그였고 자기 역시도 주군의 후손을 헤치고 그 자리에 섰기에 내심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오랜 내전의 강한 군대의 칼끝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고 조선 출병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임진왜란은 터졌고 조선은 쑥대밭이 되어 경제는 반토막이 나고 인구도 근 30%가 줄었다. 결국 ‘히데요시’의 허풍은 조선에는 잊을 수 없는 치욕과 아픔과 고통을 주었고 일본 국가적으로는 나름대로 실리를 챙겼지만 출병 했던 일본 군인들에게는 권력자의 야욕에 덩달아 아무런 이유 없이 이국 땅에서 죽어가야 하는 운명을 맞이 하게 했다.

 

이제  ‘MB’의 대권 이후의 행적은 어떤가. 그 역시 논공행상으로 ‘고소영’ 내각을 꾸미고 각종 낙하산 기관장들을 투여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 했다. ‘히데요시’에게 영지가 준다는 허풍이 있듯이 ‘MB’에게는 ‘747 공약’과 ‘경제대통령’ 허풍이 있었다.

 

‘히데요시’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결국 조선 출병을 결심하듯 ‘MB’ 역시 권력 기반 유지를 위해 조선(대한민국)의 경제를 건드렸다. 일단 환율 조정으로 환차익을 통한 무역수지를 끌어올리고 대기업 후렌드리, 부자 특혜 정책으로 자신의 ‘747 공약’을 엇비슷하게라도 맞춰보려 했다.

 

그런데 왠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이순신 장군에 의해 막혀 버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별 소득 없이 단지 조선에 엄청난 피해만 입히고 끝났듯이 환율 조정과 대기업 후렌드리, 부자 특혜 정책은 별 소득 없이 조선(대한민국)의 경제에 엄청난 피해만 입히고 있다. 한발 더 나가 ‘히데요시’의 일본군이 조선의 영토를 짓밟았듯이 이제 대운하 비스무리 한 것으로 전 국토를 휩쓸려는 것 같은 조짐이 보여진다.

 

이 얼마나 흡사한가. 두 사람이 정말 놀랍도록 일치하지 않는가. ‘히데요시’는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MB’는 아직 현재 진행형의 사람이다. 그럼, 과연 그 끝은 어찌될까?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은 별 소득이 없었고 그는 노쇠해 갔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한창 전쟁통에 있을 때의 그의 총기는 사라졌다. 망령인지 노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점점 늙그막에 얻은 어린 아들에 매달리는 평범한 노인으로 전락했다. 그는 자신이 ‘노부나가’의 후손들을 없애버렸듯 자신의 아들을 부하들이 자신 사후에 헤칠까봐 두려워 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들을 지켜달라고 애원하며 맹세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죽고, ‘죽이고’가 일상화된 그들에게 권력과 탐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반드시 아들을 지켜주고 그 자리를 물려 받게 해주겠다는 부하들의 약속은 ‘히데요시’ 사후에 부질없는 허공의 메아리로 사라졌다.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몇 십년을 절치부심 속으로만 대망의 칼을 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기어이 칼을 빼어 들었다. 그리고 그토록 ‘히데요시’가 매달리고 사랑했고 자신의 위치를 물려주고 싶어 했던 그 아들은 불타는 창고 안에서 쓸쓸히 자결을 하며 생을 끝 맺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아들이 ‘히데요시’의 자리를 물려 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 출병에 빠져 있었고 그로 인해서 다른 영주들이 수많은 피를 흘릴 때 고스란히 자신의 병력을 유지하며 내실을 기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다른 영주들도 똑같이 조선 출병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렇게 쉽사리 천하 패권을 차지 했을지는 의문이다. ‘이에야스’가 실력자임에는 분명 사실이지만 그렇게 출중한 무장이나 지략가는 아니었기에 그런 의문은 더더욱 클 수 밖에 없다.

 

다시 ‘MB’로 이야기를 돌려 보자. ‘히데요시’가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그의 가문은 명문으로 이어질 수도 이었다. 마찬가지로 ‘MB’가 조선(대한민국)의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 역시 그의 존재가 이어질 것이며 만약 지금처럼 경제적 고통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 끝은 누가 봐도 뻔하다.

 

‘히데요시’가 반란이 두려워 일본 역사에 최고로 튼튼한 ‘오오사카’성을 쌓았지만 별 방어막이 못되고 맥없이 함락 되었다. 지금 아무리 국정원을 강화하고 언론 통제, 인터넷 통제, 시위법 강화를 해서 자신의 방어할 성을 쌓아도 때가 되면 그렇게 맥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권력 유지를 위해 국회의원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뽑고, 안기부와 보안대, 기무사를 비롯해 별별 안전 장치를 다했던 독재자 박정희도 마지막엔 맥없이 삶을 끝맺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럼, 과연 ‘MB’의 끝은 어찌될까? 한국 근대사에 정치 보복이 없던 적은 거의 없다. 정권의 핵심부가 그런 의지가 없더라도 과잉충성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냥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흔한 말로 알아서 긴다. 최근의 검찰 수사도 그런 냄새가 짙다. 지금은 ‘MB’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오리발을 내밀며 안면 깔고 뒤를 캐는 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습성이고 전통이다.

 

그나마 그 동안의 전례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관리를 잘했다는 노통이 이 정도 시끄러우니 취임 초부터 ‘언니 게이트’니 하며 잡음이 나는 ‘MB’의 퇴임 후는 안 봐도 불 보듯 훤하다. 게다가 히딩크와 사진 찍을 때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난 그의 아들이 ‘MB’의 총기를 이어 받아 계속 명문 가문으로 이어갈지는 의문이다. 하긴 ‘MB’ 같은 총기가 있으면 사돈댁 회사에 다니고 있겠느냐 만은 과연 어떻게 될지 다같이 기대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히데요시’가 자신은 평민의 자식에서 사무라이 계급으로 뛰어 올랐지만 어이없게도 농부들의 칼을 빼앗고 신분 이동을 금지 시킨다. 그 당시 일본에서 칼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도구였다. 그 칼을 회수 당하면 더 이상 평민이 출세할 길은 없다는 것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원천금지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MB’께서도 교육 개혁을 명분으로 교육 차별화 정책을 추진 중이시다. 점점 지방에서 서울의 명문대 가기는 힘들고 못사는 집 자식이 명문대학 가기는 애당초 틀렸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세상의 차별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점까지도 어찌 그리 비슷하신가.

 

간혹 ‘MB’와 ‘히데요시’가 허풍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니 그런 삶을 부러워하거나 흉내 내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분들께 충고 한다. 그렇게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하지 않아야 한다. 왜? 올바르지 않기에, 반칙하는 경기보다 정당하게 경기를 해서 이기는 것이 진정 경주에서 이기는 거고 그것이 스포츠맨 쉽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미 ‘MB’가 써먹을 만큼 써먹었기에 그런 허풍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독같이 그런 방법은 역효과 나기 딱 좋으니 조심들 해야 할거다. 허풍이 통할 때는 그 사회가 전쟁이 나거나 어떤 미친 광풍이 몰아치는 시기에나 통하는 것이다. 그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만을 하면 되는 시기인데 이제 이 나라가 슬슬 그런 광풍에서 깨어나고 있는 조짐이 보이는 중이니 각별히 주의하기 바란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해보자. ‘MB’와 ‘히데요시’의 공통점은 허풍으로 성공했고 또 허풍 때문에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 임기가 완전히 끝나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08년은 그러했다. 이쯤에서 제발 ‘MB’와 ‘히데요시’가 틀린 길을 걷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그나마 조선(대한민국) 백성(국민)들이 덜 힘들고 덜 고통 받는다.

 

현재의 경제 위기로 엔화의 조선 침략은 이미 시작 되었다. 반드시 엔화 환투기 자본뿐이 아니다. 일본 관광객 넘친다고 좋아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거꾸로 그만큼 한국이 일본에 만만히 보였다는 것 만 알면 된다. 임진왜란 때 각종 기술자들이 일본에 끌려가듯 지금 일본의 한국인 불법체류가 크게 늘고 있단다. 끌려가는 거나 자발적으로 가는 거나 질은 틀리지만 하여간 지금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몸뚱아리 팔고 노동력 팔려고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거기서 한발 더 나가 슬슬 교과서까지 친일 미화로 바뀌고 있다. 모두가 그 속이 뻔한 허풍에 속았기 때문이고 그런 허풍을 좋다고 추종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지만 그것을 탓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단 말이다.

 

우리는 일본을 이웃하며 몇 천 년을 살았다. 그들이 이 나라에 한번이라도 도움이 된 적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들을 피하려 했다. 그래도 그들은 끈질기게 껄떡거린다. 과연 이번에는 또다시 무슨 피해를 줄 건가. 그렇지만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일본을 미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분들께 한 말씀만 더 드리면서 이 글을 끝맺겠다.

 

비굴하고 나약한 평범한 인간들은 말한다.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고 그 시대 때는 다 그랬다고. 좋다, 그것은 이해 하겠다. 그런데 일제 시대 때에도, 군부 독재 시절에도 일본 놈보다 일본 놈 앞잡이 형사가 알아서 독립군들 무기징역 살리고 총살형 시키는데 앞장섰다. 실제로 일본 놈들이 총살형 시킨 것 보다 알아서 잡아다 총살형 시킨 것이 더 많다. 독재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상층부에서 그런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은 없고 간첩죄 뒤집어 씌우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 지들이 더 잘 먹고 잘 살려고, 잘 보이고 출세 하려고 알아서 과잉 충성 한 것이다.

 

지금도 안 그런가. 촛불시위 까뭉개는 보수 언론들, 출두명령 내리는 검찰들, 인간 사냥하는 경찰들, 인터넷 알바들. 모두 한 건이라도 더 만들고 한 명이라도 더 잡아 승진하려고 다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 어떤 비겁하고 악독한 매국 행위, 반사회적 행위라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다. 히틀러가 그랬고, 일본 전범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 평화를 위해 전쟁 했다는데 그걸 어쩌겠나. 그런데 당신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결국 자기들만 잘 살려는 이기주의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이 가장 비겁하고 야비한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당신들에게 무슨 역사 의식과 조국의 미래를 말 하겠나. 제발 적당히 좀 해라. 아무리 당신들이 한일합방을 원하고 일본의 속국이 되길 간절히 원해도 대한민국은 5천년 간 독립국가로 이어져왔다. 그리고 또 앞으로 이어갈 것이다. 그건 분명히 검증된 과거고 현재고 미래다.

 

'강목어' 블러그 "사람과 희망"  http://blog.naver.com/ua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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