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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희망이다

문국현을 검증한다.

 

작성자 장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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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은 국내에서 몇손안에 꼽히는 운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부유층 자제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백내장으로 한쪽눈이 안보이는 어머니와 소아마비로 고생하며 주변의 편견과 힘겹게 싸우다 숨진 누이동생을 지켜보면서 사회의 약자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으로 자라왔다.


그는 대학을 졸업후 아버지 회사의 요직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제안을 뿌리치고 삼성에 시험을 친다. 누구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에 시험을 친뒤 우연찮게 신문에서 본 고 유일한 박사의 기사를 보고, 인생의 진로를 유턴하게 된다.


고 유일한 박사는 일제시대 미국에서 큰 돈을 번뒤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 자금지원활동과 국내고용창출에 재산을 쏟아부은 유한양행의 창업자다.


이분에 관련된 몇가지 감동적인 사건이 알려져있는데, 한가지는 박정희시절 정치자금 제공을 거부한 사건과 또 한가지는 회사를 핏줄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깨끗하게 회사를 떠난 사건이며 다른 한가지는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건이다.


살기등등했던 박정희시절 정권실세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업가들에게 요구했는데, 단 한사람 고 유일한 박사는 끝까지 정치자금 제공을 거부했다고 한다.
화가난 정권실세들이 유일한 박사를 잡아가두고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탈세등 나쁜짓을 저지른 경영자라고 보고를 올렸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 말을 믿고 시범케이스로 고 유일한 박사를 처벌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간 세무조사를 해봐도 탈세한 흔적이 아예 나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회사돈을 1원도 빼돌리지 않았고 부정거래나 로비등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온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실세들의 거짓말을 깨닫고 크게 진노하며 고 유일한 박사를 풀어주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산업훈장을 수여하며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애국자요"라는 치사를 한다.


고 유일한 박사는 나이가 들어 회사를 떠날때 자기 자신이나 친척이 아닌 능력과 도덕성을 인정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깨끗이 회사를 떠난다.

그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겨주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받은 훈장을 물려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경영자가 부끄러움이 없는 경영을 하면 어떤 외압 앞에서도 당당할수 있게 된다. 이 훈장이 주는 의미를 깊이 새기고 참경영을 해라."


유일한 박사는 자식들이 아버지의 돈을 물려받아 돈에 끌려다니며 자신의 삶을 망치지 않기를 바랬고, 자식들이 자신처럼 자신의 꿈을 키워 스스로 자립하기를 바랬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기전에 자신의 재산 전액을 사회에 기부하고 가셨다.

우리나라 경영자중에서는 유일한 족적을 남긴것이다.

 

문국현은 이 기사를 보고 바로 유한양행에 입사시험을 치르고 합격을 한다.

그때 집으로 삼성합격증이 날라왔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합격증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어떤 결정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문국현은 고 유일한 박사를 목표로 경영능력을 닦았고 윤리경영, 따뜻한 경영을 배워왔다.


그것은 IMF시기 유한킴벌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단 한명의 노동자도 해고시키지 않는 유일한 중견기업이 된 이유일것이다.

 

IMF외환위기 바로전에 유한킴벌리 사장에 오른 문국현은 곧 위기에 직면한다.


비달사순, 팬틴, 질레트, 아이보리, 위스퍼, 프랭클스, sk-2등 세계에 알려진 브랜드만 600여종이 넘어가는 브랜드제국 P&G가 한국시장에 진입을 시작했기 때문이였다.

그외에도 태평양, 쌍용, CJ등 대기업들이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며 유한킴벌리의 시장점유율을 급속히 잠식해들어가기 시작했다.


유한킴벌리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10%대까지 추락했고, 거의 모든 사업부문이 적자로 돌아서서 사업폐쇄까지 고려했을정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문국현은 사장자리에 오른다.


유한양행과 함께 유한킴벌리에 공동출자한 킴벌리 클라크는 아시아 시장에서 P&G의 공격경영으로 적자가 크게 나면서 한때 투자를 철수할 계획을 검토할 정도로 사업외부적으로 힘겨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강성노조들은 다른회사들이 IMF이후 대규모 감원을 하는 것을 보고, 잦은 파업을 일으키게 된것도 큰 고민이였다.


이때 문국현은 사람중심의 윤리경영이라는 그 당시로써는 뜬금없는 경영철학을 내놓는다.
다른 회사들은 1원이라도 아끼려고 근로자들을 해고시키느라 정신이 없는데, 노동자를 해고시키지말고 그들에게 더 투자를 해서 위기를 돌파하자는 경영안을 주창하니 모두 비웃었던 것이다.

회사에 출자한 회사의 이사들이 반대하고 노동자들도 헛소리를 한다며 반대했지만, 문국현 사장은 하루종일 회사땅바닥에 앉아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몇주간 이사들 집을 뻔질나게 방문해서 결국 OK싸인을 받아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뒤 유한킴벌리는 매출 3.5배, 순이익 10배라는 경악할만한 성공을 거두었고, 국내 시장점유율은 10%대에서 70%대로 수직상승하게 된다.


이 성과에 놀란 미국 경영계에서는 문국현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미국 MBA 교육에서도 문국현과 유한킴벌리의 성공사례가 삽입되어 교육되고 있을정도다.


유한킴벌리의 대성공이후 유한양행과 함께 유한킴벌리에 출자한 킴벌리 클라크의 이사진들은 문국현을 새롭게 재평가하게 된다.

당시 킴벌리 클라크 북아시아 지사는 대규모의 적자상태에 놓여있었는데, 이 사진들은 유한킴벌리의 성공사례를 접한후 문국현을 구원투수로 내세우자는 의견이 강해진다.

그래서 국내경영자로써는 유일하게 위탁경영을 제의받아 국내의 유한킴벌리와 해외의 킴벌리 클라크 북아시아 지사(일본, 중국, 러시아, 대만, 몽골)의 총괄사장 자리에 오른다.

두개 기업을 동시에 경영하는 자리에 오른것이다.


킴벌리 클라크 북아시아 지사는 직원수만 수십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대기업중의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직원수가 2만 5천명 정도인것을 고려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해볼수 있을것이다.
적자투성이인 북아시아 지사를 맡은 문국현은 3년만에 흑자로 반전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한명도 해고하지 않고 말이다.


입이 째진 킴벌리 클라크 이사진들은 중남미 지사도 위탁경영해달라고 제의한다.

하지만 문국현은 북아시아 시장에서 1위를 할때까지는 다른것은 더 맡지 않겠다며 거절한다.


그러다가 이번에 출마하게 된것이다.
출마가 늦은 이유는 바로 이런 관계때문이다.


문국현의 인간중심 윤리경영 철학에 반한 해외유명인사들이 많다.
20세기를 통틀어 다섯손가락안에 꼽힌다는 세계의 석학자인 피터드러커가 대표적인 분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피터드러커는 문국현을 양아들처럼 여겼을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비록 피터드러커 박사는 돌아가셨지만 그 부인역시 문국현을 양아들처럼 반겨준다.


이런 인연으로 문국현은 몇년전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 한국지부 이사장을 지냈던 것이고, 중국재계에서는 문국현을 한국의 피터드러커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그밖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명저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박사나 <가치사슬이론>으로 미국 경영학계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등이 문국현과 친분이 두텁다.


그들은 문국현의 인간중심 윤리경영을 세계경제를 살릴 철학으로 평가한다.


세계시가총액 1위기업인 GE의 회장 잭웰치도 몇년전 문국현과의 대담토론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근로자 해고를 놓고 토론을 벌인뒤, 문국현의 인간중심 윤리경영 철학에 대해 찬탄을 아끼지 않은바 있다.

그리고 "한국은 문국현같은 경영자를 1천명만 키워내라. 그러면 (한국이) 평생 먹고살수 있는 부를 창출한 인재들을 다 키워낼수 있을것이다."라고 충고했다.


문국현은 세계 다보스포럼의 단골 특강강사이기도 하다.
세계 유명경영자들과 정치인들을 앞에놓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강의하는 것이다.

이런 명성덕분에 그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등에게 초청받아 면담을 가지며 안면을 틀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