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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상 수상 PD, 현장서 ‘정권 방송 장악’ 비판

방송대상 수상 PD, 현장서 ‘정권 방송 장악’ 비판
“세상은 바뀌어도 정권의 방송 탐욕은 안 변해”
‘수상 소감 동영상’ 퍼지며 누리꾼들 댓글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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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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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KBS 홀에서 열린 35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박명종 부산 MBC PD가 ‘지역공로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방송화면 중 캡처)

사실 처음엔 틀에 박힌 수상소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지난 3일 방송의 날을 맞아 35회 한국방송대상 지역공로상을 받은 박명종 부산MBC PD의 입에서 뜻밖의 수상소감이 나왔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방송생활 30년동안 방송대상을 3번이나 받게 돼 영광이다.

제행무상이라고 세상은 자꾸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정권이 방송을 탐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상소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냥하는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데 그 개를 주구라고 한다. 권력의 주구가 돼서 지금도 방송을 어떻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 없이 자유롭게 방송을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왔으면 좋겠다.”

 

수상식이 열린 서울 KBS 여의도홀은 순식간에 박수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그의 돌발적인 수상소감은 전국의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됐다.

 

방송대상을 수상한 박명종 PD의 수상소감이 뒤늦게 누리꾼 사이에 화제다.

박 PD는 부처님오신날 특집다큐멘터리 <아가마의 길, 2552년만의 귀향>으로 지역공로상을 받았다.

공개적인 시상식 자리에서 터져 나온 그의 소신은 누리꾼들을 열광시켰다.

지난 3일 이후 인터넷 다음 <아고라> 게시판을 중심으로 그의 ‘수상 소감 동영상’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고 누리꾼들의 댓글이 몰리고 있다.

누리꾼 ‘하느리’는 “공적인 자리에서 소신을 밝히기 어려웠을 텐데, 박명종 PD의 용기가 존경스럽다”고 말하며 그의 수상소감을 칭찬했다.

누리꾼 ‘shea’도 “박명종 PD와 같은 분들이 시발점이 돼 우리 방송이 원래 위치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들도 “촌철살인의 수상소감이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 밝히는 박명종 PD / 유투브

 

박명종 PD의 이런 수상소감은 즉흥적인 것은 아니었다.

정권의 언론 장악 논란이 벌어지는 시기에 방송의 날을 맞아 “미리 이런 내용을 준비한 것”이라고 박 PD는 설명했다.

박 PD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미리부터 마음 먹고 준비한 것이다. KBS 사장 교체 등의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권력이 방송을 장악하려고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PD는 “앞으로 공영방송의 사장을 정권이 임명하는 구조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 정권에서도 노 대통령의 언론특보였던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할 때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정권에서도 똑같이 이를 반복하고 있다”며 “어떤 정권이든 관계없이 방송에 의해 권력이 휘둘리는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NHK와 영국의 BBC처럼 우리나라도 방송사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대안을 덧붙였다.

 

 

광우병 관련 보도로 MBC의 조능희 CP가 보직해임돼 시사교양국으로 발령난 것 등에 대해서 그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박명종 PD는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진행자의 말실수 몇 개를 갖고 전체 내용 자체가 잘못됐다고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며 “전체 내용은 진실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MBC 엄기영 사장이 언론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9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을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앞두고 있다.

박명종 PD는 “지난 번처럼 사과만 하고 이후 행동이 다를 것 같아 큰 기대는 안하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방송을 장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기를 바란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누리꾼들 역시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수상소감에도 동의하는 것”이라 말하며 누리꾼에게 감사를 표했다.

 

박 PD는 지난 1978년 부산 MBC에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PD로 명성을 쌓았고 지금은 정년퇴임 1년을 앞두고 있다.

1989년 다큐멘터리 <갈대>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세 번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허재현기자catalunia@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86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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