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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의승장 기허당 영규대사 421주기 추모제

 

 

의승장 기허당 영규대사 421주기 추모제 열려

왜군과 맞서 싸운 3분의 대표적 승장(僧將)중 한분

 

의승장 기허당 영규대사 421주기 추모제가 25일 오전 11시 계룡면 유평1리 영규대사 영정각에서 봉행되었습니다.

 

 

 

영규대사사적현창회(회장 박순규)의 주관으로 열린 이날 영규대사추모제에는 

고광철 공주시의회 의장, 윤홍중 공주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우영길 공주시의회 의원, 이동섭 전 공주시의회 의장,  

많은 정치인들이 참여했으며 

전병득 계룡면장, 원효사 주지 해월, 계룡면 유평리 김호중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계룡초등학교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해 영규대사의 우국충정을 기렸습니다. 

 

 

스님들의 독경에 이어 고광철 공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공주 향교 헌관들의 제향, 

국화꽃 헌화가 이어지는 불가식,유가식,기독교식의 제례가 이어졌습니다. 

 

 

 

 

박순규 영규대사사적현창회장는 영규대사에 대한 일화와 

심각한 부상임에도 지원군 요청을 위해 뛰어와 쓰러진 곳이 

현 계룡면사무소 앞 정려각 자리이며 그렇게 붙여진 이름 무넘이고개에 대한 이야기에는 

모두가 숙연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영규대사(?~1592)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맞서 싸운 3분의 대표적 승장(僧將)으로 꼽히는데 

청주성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한양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와 

평양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운 사명대사(1544~1610)가 있습니다.  

 

영규대사는 현재의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서 태어난 충남의 인물로 

그는 일찍이 출가, 계룡산 갑사에서 머리를 깎고 수행을 시작하여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함께 당대의 고승이었던 서산대사에게로 가서 가르침을 받고 

여러 명산대찰을 다니며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갑사로 돌아와 청련암에 자리를 잡고 학승들에게 참선수행을 지도하는 한편 

학승들의 건강을 위한 신체단련 운동과 무예도 가르쳤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국의 일념으로 전국에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 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영규대사의 승병과 조헌선생의 의병 700여명이 함께 한 금산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왜군에게 협공을 가해 큰 전과를 올리며 모두가 죽는 그 순간까지 싸우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는 계룡면까지 와 순국하였습니다.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번지에 있으며, 

봉분과 상석 사이에 있는 높이 87㎝, 너비 37㎝, 두께 14㎝의 묘비 앞면에는 

“의병승장군영규지묘(義兵僧將軍靈圭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칠대방손박경진경태봉사(七代傍孫朴景震景兌奉祀)가 묘비를 세운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와 승병들 

그리고 수많은 의병들의 희생은 작금의 친일세력들과 매국 세력들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추어 볼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하겠습니다. 

 

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희생정신이 더욱 더 필요한 시기인지라 

호국불교의 선봉장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 순국 421주년 추모대제의 의의는 참으로 크다 하겠습니다.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는 문화재 자료 제56호 (공주시)인 영규대사비靈圭大師碑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양력 9월 25일 오전 11시에 대사의 묘소가 있는 계룡면 유평리 제각에서 

영규대사사적현창회 주관으로 추모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3년 9월 25일 열린 의승장 기허당 영규대사 421주기 추모제를 다녀 온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