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녹두장군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올려보는 동학농민가(東學農民歌) 검붉은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의 설움이 받쳐 보국안민 기치가 높이솟았다 한울북 울리며 흙묻은 팔뚝엔 불거진 핏줄 황토벌판에 모여선 그날 유도 불도 누천년의 운이 다했다 농민들의 흐느낌이다 검은 강물 햇살에 잠겨 억눌림의 설움이 받쳐 척양척왜 기치가 높이 솟았다 개벽고 울리며 주린배를 움켜잡고서 죽창들고 일어선 그날 태평곡 격앙가를 볼것이다 농민들의 아우성이다 한울도 울고 땅도 울었다 가렴주구의 설움이 받쳐 제폭구민 기치가 높이 솟았다 성주소리 드높이며 초근피죽 한사발에 울고 울었다 갈가마귀떼 울부짖던 그날 춘삼월 호시절을 볼 것이다 농민들의 불망기이다 저 흰산위엔 대나무 숲을 이루고 봉황대엔 달이 비춘다 검은 해가 비로소 빛을 내던날 황토현의 햇불이 탄다 하늘 아래 들판에 산위에 가슴마다 타는 분노는 무엇.. 더보기
옛 길따라 역사따라 [동학농민군의 한 용못 송장배미전적지] 송장배미(웅진동) 공주 시내에서 곰나루로 이어지는 길에 금강변에 못미쳐 용못이 있다.이 용못은 강물은 말라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이 용못에 붙어 있는 논이 송장배미이다. 관군들 기록에 11월 9일, 송장배미 근처 박산소에서 이른 아침부터 공주로 넘어 오려는 농민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관군 백락완이 기록한 남정록에 의하면 박산소 부근의 전투는 매우 팽팽하여 육박전까지 벌어졌으며 이 싸움에서수십명의 농민군이 전사하였고, 송장배미에서만도 십수명이 죽었다고도 하고 또는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밀려 퇴패하던 동학농민군들이 용못에 빠져 죽었다는 설 그리고 곰나루 마지막 격전지였으며 패배한 농민군의 시신이 골을 메우는 바람에 송장배미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도 한다. 동학농민전쟁전적비.. 더보기
옛 길따라 역사따라 [동학농민군의 한 우금치/우금티전적지] 동학 [東學] 최제우는 전통적인 유교(儒敎)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교 경전을 배워, 성년이 되어서는 지방의 유학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당시 조선은 어린 헌종의 즉위로 외척(外戚)의 세도정치가 계속되면서 정권다툼으로 지배층의 알력이 극도에 달하였고, 양반과 토호(土豪)들은 백성들에 대한 횡포와 착취를 자행함으로써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각지에서 농민봉기를 일으키는 등, 사회는 매우 불안한 상황에 있었다. 더구나 일본을 비롯한 외세(外勢)의 간섭이 날로 심해져 국운이 위기에 처하는 한편, 국민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유교·불교가 극도로 부패하여 조정은 민중을 제도(濟度)할 능력을 상실하였다.게다가 새로 들어온 서학(西學:천주교)의 세력이 날로 팽창하여 그 이질적인 사고(思考)와 행동이 우리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