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자들이 돌아왔다"[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사고'인가, '범죄'인가?기사입력 2009-01-27 오전 11:37:46
김영삼 시대의 '사고 공화국'을 지금 돌이켜보면 과도기의 특성이란 면을 생각하게 된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앞만 보고 달리며 안전 시스템 확보를 무시했고, 사고 통제는 억압 기제에만 의존했다. 독재가 끝나 억압 기제의 힘이 대폭 줄어들었는데도 안전 시스템을 계속 소홀히 함으로써 다양하고 엽기적인 사고들을 겪게 된 것이었다. 사고 중에도 큰 사고가 IMF 사태였다. 강만수, 윤증현을 포함해 당시 경제 관료들은 위기가 닥쳐오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그들의 '무능'을 탓할망정 그들의 '악의'를 따질 여지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군사 독재 아래 경제 관료들은 '성장'만을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있었다. IMF 사태 같은 상황은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사의였을 것이다. 그래서 IMF 사태는 하나의 '사고'로 생각하는 것이다. 위기의 막바지에 정략적 의도로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부수적인 것으로 본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 위기는 다르게 보인다. 경험도 있고 경고도 있었다. (나 같은 경제 문외한까지도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계가 임박했다는 의견을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밝힌 바 있다.) 분배냐, 성장이냐 등 경제 정책의 선택 범위에 관한 논의도 적지 않게 쌓여 있었다. 그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 내용이 현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미네르바 구속을 통해 정부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이명박도 강만수도 아닌 일개 시민이 입을 (손가락인가?) 잘못 놀린다 해서 수조 원을 날릴 위험을 안은 경제 운용을 누가 현명하다 할 것인가? 미네르바 같은 사람이 10명만 있었으면 나라가 떠내려갔겠다. 흐루시초프가 돌대가리라고 욕하다가 '국가 기밀 누설죄'에 걸렸다는 어느 시절의 소련 백성이 생각난다. 범죄 냄새가 난다. 그것도 과실범이 아닌 악질적 범죄. 무엇보다 범행 동기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2%를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2%가 입을 손해를 막아주기 위해 국민 세금과 공적 자금을 퍼 넣고, 국가 지출 확대의 필요성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2%의 세금을 줄여주는 일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다. 10년 만에 되풀이되는 위기요, 공황이지만 국가 경제의 위축 자체가 참극은 아니다. 더 자주 겪는다 해서 50년 전의 절대빈곤으로 돌아갈 염려는 없다. 참극을 만드는 요인은 위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사회 안전망'의 의미가 무엇인가?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큰 인명 사고가 되지 않도록 헬멧 하나씩이라도 씌워주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안전 수칙을 시행한다. 사회 안전망을 더 늘릴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최저 임금을 낮추는 등 거꾸로 가는 것은 사고 난 공사장에서 인부들 헬멧을 벗기는 꼴이다. 경제 위기 자체는 이번에도 하나의 '사고'일 수 있다. 그런데 국가의 위기를 소수 가진 자들의 기회로 전환시키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거대한 참극을 불러올 '범죄'다. 내 머릿속에 또 하나의 범죄에 대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음을 독자들은 눈치 채셨을 것이다. 너무나 닮은꼴이다. 범행 동기부터 똑같다. 조합과 건설사 등 가진 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려는 것이다. 범행 방법에 있어서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 장치를 제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20여 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폭력 국가가 아직도 이 땅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온 국민에게 알려주는 일이 벌어졌다. 희생자들을 '테러범'으로 몰아붙이는 자들,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자들이 살아 돌아온 것인가?
기획·연재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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