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하리에 왜 '느끼지' 못하는가 한국판 마타하리 마타하리는 원래 직업무희, 그리고 고급매춘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1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매혹적인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다. 장교와의 결혼과 이혼, 무희로 전업, 고급장교들을 상대로 한 이중 첩보, 체포 그리고 총살...극적인 요소는 모두 담겨있는 게 그녀의 삶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모두가 남자라면 열광해 마지않을, 여자라면 한번쯤은 꿈꿔봤을 '치명적인'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그녀의 삶은 숱하게 영화화 될만했고 어찌보면 전설이 되었다. ▲ 27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검 대회의실에서 탈북 간첩으로 체포된 원정화씨의 앨범이 공개됐다.원정화씨의 결혼사진.원정화사진[조선]
크게 보자면, 간첩은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안보 상업주의는 이렇게 진화했다. 이제 케케묵은 재래형 간첩으로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 독자(국민)들에게 팔리지 않는다. '안보의식'에 어필되지 않는다. 젊은 여자가 등장해야 하고 섹스가 매개되어야 하며, 스파이적 삶은 약간 신비스러워야 한다. 안보와 성의 절묘한 결합, 그래야 관심을 부풀리고 신문판매부수 늘리고 또 이것을 통해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을 질타하면서 군기도 잡을 수 있으리라. 찌라시들 신난다. 일단, 원정화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한국판 마타하리'가 등장했는데 '왜 느끼지 못하느냐, 좀 느껴라!'고 몰아치고, '이제부터 안보에 불감하면 안돼'라며 훈계하는 것으로 기사를 끝 맺는다.
"(한국판 마타하리)탈북자 위장간첩 원정화는..지난 10년 간의 남북 화해무드 속에서 우리 사회가 '안보 불감증'에 깊숙이 중독돼 있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좆선
한국판 마타하리, 아니 '직파' 간첩의 등장. 대한민국 전체가-의무적으로라도-화들짝 놀래야만 하는 큰 사건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이 작품에 공들인 당국자들이 원하는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이 사건을 진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수꼴들을 제외하고는) 드물어 보인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첩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발표된 '절묘한 타이밍'과 '한국판 마타하리'라는 여자 자체에 더 관심을 갖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뭐, 공안들의 의도는 과적으로 반은 성공한 셈이 되나?)
좆선류의 신경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무 반응에다 시니컬하기만 하다. 근데, 만약 우리가 1987년의 민주화 이후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직도 '안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수구언론들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 간첩단 사건을 계기로 추억의 반공 궐기대회라도 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지 않은 것은, 좆선이 옳게 말했듯이, '잃어버린 10년' 탓이다. 왜, 무엇 때문에 '안보 불감증'이 생겨난 것일까.
우선, 사람들은 그 동안 너무나 속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그 이전의 간첩단을 포함한 공안사건들이 많이 뻥튀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예 통째로 '만들어진 사건'도 있었다. 또 그 사건들은 민감한 정치적 이슈 때마다 집권 권력측에 유리하게 써먹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물론 당시에도 반신반의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둘째, '잃어버린 10년' 동안 우리의 대북관이 변했다. 변했다는 것은 있는 사실을 일부러 모르는 척 했다는 게 아니라,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북한의 '실체'를 알게되었다. 독재정권 시절이든 또는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먹던' 시절이든, 북한의 위험성이 과장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북한이 대화가 가능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 적어도, 북한사람들이 뿔(-_-;;)달지 않았고 웃을 줄도 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째, 한국에 대한 자신감이다. 이번 마타하리는 조직으로가 아니라 개인으로 움직인 것 같다. 약간 덜 떨어졌다는 의문을 떠나, 과연 일개 간첩(단들)이 파괴 공작을 편다고 해서 우리가 쌓아올린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어떤 영향을 받을까하는 의문, 곧 우리에 대한 자신감 말이다. 단적으로, 북한의 국력과 경제력은 한국에 도저히 비교 안 되게 열등하다고 떠벌렸던 것은 수구세력들이 아니었던가. '개인' 마타하리가 정보를 외롭게 수집해본들, 장교들과 정사를 갖은들 크게 달라지는 것? 명함 빼내서 뭘 하겠다고?
넷째, 우리의 인식(또는 정보)의 개방, 확장이다. 이제 우리는 간첩이라는 것이 꼭 요인암살이나 군사기밀을 빼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 시대에서 스파이는, 딱히 상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간첩은 남북간에만 왔다갔다하는 게 아니다. 가령 미국의 (산업)스파이들이 서울에 쫙 깔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일상사 되어버린 사이버 해킹도 요즘에는 유력한 간첩질이다.
잊혀진 노블리스 오블리제
더 이상 무엇을 바라나. 불감증 없애려고 이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특히 발표 시점 가지고 장난치면 있던 안보의식마저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간첩사건을 이용해 무엇가를 해보려는 공안권력들을 제외하면, 국민들 안보의식? 전혀 문제없다. 지금 걱정해야 하는 것은, 권력들의 엄청난 병역 미필, 이중국적자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뭔지도 모르고, 알면서도 무시해버리는 그 '불감증'이다. ⓒ Crete (http://blog.daum.net/jose_mouri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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