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세계

법원, 사노련사건으로 공안정국 본격화 조짐에 ‘급제동’

법원, 공안정국 본격화 조짐 ‘급제동’

‘도주우려’ 잣대 넘어 “이적단체로 보기 어렵다” 판단
MB정부 들어 공안기관 ‘작심하고 내민 첫 카드’ 좌초
보안법 제한적용 흐름 반영…대법원도 ‘구체적 위험’ 요구 

 이본영 기자 김성환 기자 김명진 기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노련’ 7명 모두 영장기각


법원이 오세철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관련자 7명의 구속영장을 28일 모두 기각함으로써, 최근 본격화 조짐을 보이던 검찰·경찰의 ‘공안정국’ 조성 기류에 일정하게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사노련 사건은 이명박 정부 들어 최초로 불거진 ‘조직 사건’으로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공안정국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번 사건은 최근 몇 년간 새로운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 사건이 터지지 않은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검·경 공안기구가 작심하고 내민 카드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이후 과거 회귀적 공안몰이가 어느 정도까지 가속화할지를 가늠해 볼 ‘잣대’로서 주목됐다.

최근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 혐의자가 적발됨으로써 공안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경찰은 사노련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다며, ‘촛불’을 치켜든 시민운동 전체에 타격을 가하려는 듯한 태도마저 드러냈다.


학계와 시민·인권단체 쪽은 사노련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지닌 조직으로 볼 수 없고, 공개적으로 활동해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며 수사와 구속 시도에 반발해 왔다.

북한에 동조하기보다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국가 변란을 실행할 역량이나 직접적 의사도 없었다는 점도 과잉 수사 논란을 키웠다.


특히 법원은 이날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라는 영장심사 판단 요소를 뛰어넘어, 사노련을 이적단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핵심 혐의로 지목했던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구성 혐의’를 인정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사노련이 “국가의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조성된 단체” 또는 “국가의 존립 및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지닌 조직이라는 점이 소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판단은 민주화 진전 속에서 더 엄격해진 법원의 보안법 적용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도 읽힌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국가보안법의 해석·적용은 이 법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확대 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보안법 조항을 언급하면서, “유추 해석이나 확대 해석을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 정신에 비춰 엄격히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를 이적단체 판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구체적이고 명백한 ‘국가 변란’ 시도 등을 하지 않는데도 보안법을 확대 해석해 사상·표현·결사의 자유를 가로막지 말라는 취지다.

법원은 그동안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노선에 동조한다는 혐의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쪽본부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등을 이적단체로 규정해 왔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사회주의 성향의 조직 사건 관련자들을 무조건 구속했던 과거 관행을 깨뜨린 것”이라며 “실체적으로 사노련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태로운 조직인지에 대해 엄중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본영 김성환 기자ebon@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7303.html

 

 

시민단체 “보안법 혐의 자체가 무리”
경찰 “보강수사해 영장 재신청할 것”

 

‘사노련 사건’으로 체포된 이들의 구속영장이 28일 모두 기각되자, 인권·시민·노동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법원 결정을 반기며 검찰·경찰에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는 해묵은 ‘공안 몰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경찰은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겠다”며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 기준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은, 경찰이 이들한테 보안법 혐의를 씌운 것 자체가 무리였음을 증명한다”며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해 아무런 위해가 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은 이적단체 구성 혐의뿐만 아니라, 이 단체가 촛불집회에 참가한 것까지 연계시키는 ‘색깔론’을 들이댔다”며 “무리한 보안법 수사에 법원이 제동을 걺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신공안정국 조성 흐름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최근 사노련, 여간첩 사건 등이 잇따르는 걸 보면 공안기관들이 실적 쌓기에 급급한 것 같다”며 “국민들한테 오히려 비웃음을 당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이자하 서울지방경찰청 보안1과장은 “사노련 강령 등에 위험성이 크다고 봤는데 (영장 기각은) 충격적”이라고 당혹해하면서도 “보강 조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찰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환 기자hwa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