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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쇠고기 재협상? 우왕좌왕 정부, 발표도 해명도 ‘흐릿’

우왕좌왕 정부, 발표도 해명도 ‘흐릿’
08:30 당정 “재협상”
10:30 정운천 “30개월 이상 수입금지”
18:00 외교부 “자율규제 요청”    
  권태호 기자 김수헌 기자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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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정부의 쇠고기 대책 시간대별 상황 

정부가 미국 쪽에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요청한 3일, 하룻동안 청와대와 정부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특히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놓고 정부 안에서도 혼선을 빚어 이날 결정이 얼마나 다급하게 이뤄졌는지를 짐작게 했다.
오전 8시30분,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한승수 총리,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류우익 대통령실장 등이 참석한 고위당정협의회가 열렸다.
회의 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미국과 ‘재협상’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쇠고기 문제를 협의하기로”라고 전했다.
정부 쪽에서 ‘재협상’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순간이다.
이 회의에서 검역 중단도 결정됐다.
정부 쪽이 검역 중단을 꺼리자, 회의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아직도 사태를 안이하게 보고 있다”며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10시30분, 정부과천청사에서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긴급 브리핑이 열렸다.
정 장관은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에 대해선 수출을 중단해 주도록 미국 쪽에 요청했다”며 “미국 쪽으로부터 이에 대한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아홉 문장밖에 안 되는 짧은 원고를 읽은 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브리핑 뒤 복도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도 “우리도 자세한 진행 상황은 잘 모른다.
자율 규제를 받아들일지, 수입위생조건을 고칠지 등에 대해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오전까지도 정 장관이 말한 ‘미국 쪽’이 ‘미국 정부’를 말하는 건지, ‘미국 수출업자’를 말하는 건지에 대해 농식품부는 뚜렷한 답변을 못했다.
특히 ‘재협상’ 여부를 놓고선 ‘재협상은 아니다’, ‘재협상이라고 할 순 없다’, ‘사실상 재협상’, ‘추가협상’ 등 정부 안에서도 말이 달랐다.
외교부 쪽에서 미국 쪽과 협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부처간에도 서로 ‘떠넘기기’에 바빴다.


‘재협상’ 여부에 대해 농식품부는 “외교라인에서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미국에 재협상 의사를 전달했느냐’는 질문에 “농수산식품부에서 연락을 하고 있다.
현 단계에선 농수산식품부에서 여러 조처를 취하고 있으니 그쪽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미국과의 재협상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미국과 교섭된 상태에서 (농식품부 발표가) 나온 건 아니다”며 “진통이 있겠지만, 우리 입장을 존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라고만 말했다.


사태의 윤곽은 역설적으로 오후 3시30분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유 외교장관을 만나고 나온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입을 통해 분명해졌다.
버시바우 대사가 한국 정부의 고시 연기에 강한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재협상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고 말한 것이다.


외교부는 아예 이날 오후 6시께 “미 업계가 자발적으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출을 자제하는 등 통상마찰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미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재협상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라던 이날 오전 고위 당정협의회 발표의 모호성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권태호 김수헌 조혜정 기자ho@hani.co.kr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914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