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향한 왜곡과 은폐의 악순환…지금이 끊을 기회다"[기고] 드레퓌스, 워터게이트, 박종철, 그리고 용산 참사기사입력 2009-01-23 오후 12:05:31
1894년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에서 일하던 유태계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도로 유배되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거짓말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그 말이 얼마나 맞는지를 실감할 것이다. 권력이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면 아주 작은 사소한 거짓말일지라도 권력의 명운이 걸리기 때문에, 극악무도할 정도로 지독한 거짓말의 연쇄고리를 만들고야 만다. 지금 용산 참사 진상 규명이라는 것이 그렇다.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난하는 시민에 대해 검찰과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소리를 베를린 장벽처럼 써먹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진상이라는 것이 결국 "농성자들의 화염병 때문"이라는 용산경찰서의 초기 발표의 반복에 불과하지 않은가? 발화의 직접 원인이었다고 검찰이 상상하는 화염병의 실체가 밝혀지지도 않았고 검찰의 발표와 상반되는 증언들도 많다. 진상 규명이란 일방적 시나리오가 아니라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어야 설득력을 얻는다. 다른 모든 가능성들이 널려있는데도 무조건 문질러버린 채, 농성자 몇 명에게 물증도 없이 혐의를 씌워서는 최악의 경우 제2의 6월 항쟁까지를 유발할 위험이 대단히 높다. 애당초 이번 사건은 협상이나 설득에 필요한 노력이나 시간도 들이지 않고, 경찰 자체의 수칙도 어기면서 서둘러 특공대를 투입한 경찰 책임이다. 구체적인 발화 원인까지 경찰이 제공했다면 그만큼 책임이 더 커지겠지만, 발화 원인이 화염병 때문이라고 해서 줄어들지는 않는다. 설령 화염병 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격앙된 상태의 농성자들이 인화물질을 가지고 있는 좁은 공간에 서둘러 무모하게 무력 진압을 시도한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잘못을 호도하기 위해 쟁점을 자꾸만 발화 원인에 관한 "진상 규명"으로 돌리고, 나아가 그것마저도 농성자 잘못이라고 미리 정해진 결론에 짜 맞춘다면, 오히려 이 근처에 결정적으로 은폐해야 할 뭔가 있지 않느냐는 구린내가 풍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강경 진압에 청와대가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특공대를 투입하는 정도의 일에 청와대와 사전교감이 없었다면 극히 이례적이라는 의혹은 이미 김종률 의원에 의해서 제기된 바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강경책을 서둘렀기 때문에 그런 의혹이 당연히 나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검찰의 "진상 규명"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하고 일방적이다. 나도 처음에는 단지 이 일이 제2의 촛불로 번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일반적인 우려 때문에 신속하게 수습하려는 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이 진상을 서둘러 덮고자 하면 할수록 특별히 감춰야할 내용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점점 커져간다. 권력 조직은 은폐의 기술에 익숙하다.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비밀"이라는 영역을 모든 나라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권력자들은 자신의 비리와 범죄를 "국가 안보"에 섞어서 은폐할 유혹을 본능적으로 받게 된다. 대개의 경우 수사권이라는 것을 정부가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 박종철 사건에서 보듯이, 결정적인 역사의 계기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진상을 밝히고야 만다. 서울경찰청이 순전히 단독으로 특공대 투입을 강행했다고 보기는 어차피 어렵다. 청와대의 성향과 의지를 지난 1년 동안 겪어본 서울경찰청장이 경찰청장까지 시켜준다는 대통령에게 충성을 과시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강경 진압을 청와대가 직접 승인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국정운영 방향이 무력에 의존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정도는 청와대가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에 그치더라도 대통령과 정부는 그동안의 강공 드라이브를 철회하고 시민의 불만과 요구를 경청해야 한다. 억압과 응징이 아니라 소통과 설득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어렵기는 해도 현재의 국내적 국제적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국민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물리력으로 저항을 계속한다면 누가 봐도 "생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못할 이유가 특별히 있는가? 불이 시너 때문에 크게 번졌고, 시너는 농성자들이 갖다 둔 것임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들이 전에 화염병을 만들어 던졌다는 것도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의 와중에 어떻게 불이 나서 경찰관까지 사망할 정도로 번졌는지는 검찰이 전혀 해명을 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왜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체를 부검했으며, 왜 핵심 사항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덮고 기소하는가?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 이외에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이 정말로 있는 것인가? 오바마는 취임식 다음날 집무를 개시하면서 각료와 참모들에게 "공중이 신임한 직책에 아무리 오래 봉사했더라도, 우리가 공중의 심부름꾼으로서 이 자리에 머문다는 사실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대단히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워싱턴에 "그동안 비밀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자기가 이끌 행정부는 "정보를 감추는 사람 편이 아니라 정보를 알리는 사람 편"에 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권력 조직이라는 것이 비밀을 만드는 생리를 가지고 있음을 깊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바마가 비밀을 줄이는 데에 얼마나 성공할지, 아니면 초심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당연히 미지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정부는 그런 마음조차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해외 언론에서도 모두 '1980년대 상황을 새삼 언급하면서 보도하는 참극이 일어났는데,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나선 검찰의 행보를 보면 아무리 봐도 "정보를 알리는 사람 편"이라기보다는 "정보를 감추는 사람 편"으로 보인다. 내가 지금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는가 아니면 검찰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가? 드레퓌스 사건에서 진상이 온전히 밝혀지는 데에는 12년이 걸렸다. 워터게이트 사건도 2년이 넘게 걸렸다. 개인이 은폐를 하더라도 밝히기가 쉽지는 않은데, 권력이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하면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대한민국의 간첩 조작이나 의문사 중에는 30년 후에야 진상이 밝혀진 것도 있고, 전쟁기의 학살에 관해서는 60년이 걸려 밝혀지는 일도 있다. 아직도 안 밝혀진 것들도 많다. 그렇지만 모든 진상은 시민사회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백일하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다만 30년이 지나서 밝히기보다는 지금 밝히기가 더 쉽다. 용산 참사를 또 하나의 의문사로 남겨두면 장차 30년 동안 대한민국이 피곤할 것이다. 지금은 "과격 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아니라 "왜곡과 은폐의 악순환을 끊을 계기"다. 왜곡과 은폐의 악순환이 끊어진다면 과격시위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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