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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광복 의미 무시…분단정부 자괴감이 없다”

“광복 의미 무시…분단정부 자괴감이 없다”


‘남쪽만의 8·15행사’ 여는 백낙청 6·15 실천 상임대표     이제훈 기자 권혁철 기자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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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 앞둔 한겨레와 백낙청 교수와의 인터뷰. 김명진 기자littleprince@hani.co.kr


 

건국절로 바꾸기 역사인식 천박…성공 못할 것
‘6·15와 10·4 계승’ 공표가 남북관계 푸는 열쇠

 


“근본적으로 너무나 천박한 역사인식이기 때문에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광복 63주년 기념 8·15 민족통일대회’를 앞두고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건국 60년 행사와 관련해 “1948년 정부수립을 주도한 세력조차 분단 단독정부 수립이란 자괴감과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최근 건국 60년 담론에는 이런 현실 인식이 아예 없어진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민족통일대회는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6·15와 8·15를 남북이 공동 기념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8·15 민족통일대회의 경우 2001년과 2003년엔 평양, 2002년과 2005년엔 서울에서 공동행사로 치러졌다.

그러나 2004년과 2006~08년엔 정세 악화, 수해 등 여러 이유로 8·15 공동행사가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이번 8·15 민족통일대회가 15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남쪽만의 행사로 치러지는 것에 대해 “금강산 6·15 공동행사로 (남북 공동행사의) 명맥은 이어놨고, (8·15 행사 분리 개최는) 6·15 행사 때 합의사항”이라며 “아쉽지만 좌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백 상임대표는 최근 남북관계 악화와 관련해선 “6·15 및 10·4 선언 계승 입장의 공표가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내심 유신시대로까지 역주행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며 “경륜과 역사인식이 없으니 갈팡질팡하며 자기들도 고생하고 국민들도 고생하는 결과가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인터뷰는 13일 낮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8·15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정부가 ‘건국 60년’에 초점을 맞춰 논란이 일고 있다.


“1948년 8월15일 당시 표현은 정부수립이었다. 당시 전국 현상공모에 당선된 표어가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었다.

‘건국’ 주도세력 스스로가 ‘정부수립은 기쁜 일이지만 단독 정부수립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있었고, ‘남북이 통일된 온전한 건국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정부가 수립돼 60년이 됐으니 꺾어지는 해를 기념하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광복의 의미가 사라지거나 폄하되고, 분단 정부 수립이란 자괴감, 문제의식이 없어지는 일이다.”


-뉴라이트가 굳이 광복 대신 건국을 고집하는 이유는 뭐라 보나.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은 굉장한 역사적 사건인데 뉴라이트에게는 그런 인식이 없다.

광복을 단독 정부 수립에 필요한 수순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너무 천박한 역사인식이다.

우파정권이 들어섰다고 해도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데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법석을 떨다가 정체를 드러내고 끝날 일이 아닌가 싶다.”

 


-남북관계가 삐걱거린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한편으론 이 정부의 체질과 관련 있고 다른 한편으론 무능과 무식의 소치다.

미국에만 잘 보이면 잘 풀릴 것이란 망상이 있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못사는 사람을 깔보는 성향이 있다.

이런 자세는 안 통한다.

실용을 표방하면 대북관계가 잘 되는 게 유리할 텐데, 그것을 할 실력이 없는 것 같다.

남북관계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


-이명박 정부가 6·15 및 10·4 선언에 대한 이행 의지를 밝히는 데 소극적인데.


“10·4 선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정서는 이해간다.

노무현 정권이 임기 말기에 후임자가 해야 할 많은 일을 합의해버려 기분 나쁠 것이다.

그렇지만 10·4 선언을 존중한다는 전제 위에 이행의 완급을 협의하는 게 필요하다.

같은 정상간의 선언이지만 6·15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10·4 선언은 6·15 선언의 실천강령으로 나온 것이지 동일한 차원의 새로운 선언으로 되어있진 않다.

6·15 선언은 이 정부가 부담을 느낄 게 없다.

통일방안과 관련해 ‘낮은 단계의 연방’이란 표현이 들어있지만, 내용은 북쪽이 고려연방제를 철회한 것이다.

이제 국정을 책임졌으니 선거 때 구호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6·15와 10·4 계승 입장의 공표가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라고 본다. 특히 6·15 선언을 인정하면 일이 뜻밖에 잘 풀릴 것으로 본다.”


-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이 해법을 못찾고 한 달을 넘겼다.


“전문성의 부족이 남북관계를 꼬이게 한 좋은 예라고 본다.

남북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다.

비무장 50대 주부가 사망했고 유가족과 국민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북은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했다.

최근 통일부에서 진상 규명 방법에 대해 남북이 만나서 협의하자고 밝힌 것은 통일부의 전문 식견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지금 같은 남북관계에서 대통령이 나서 ‘남쪽 당국이 참여하는 공동 현장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 운신의 폭이 없어진다.

어느 나라든 자기 주권 관할구역, 그것도 군사구역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적대적 국가와 공동조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쪽이 남쪽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성의있는 해명과 남녘 동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진솔한 유감 표명을 하고, 남쪽은 좀 더 성숙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폭주, 역주행이 뚜렷한데.


“정부 내 역주행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내심은 5·6공 정도가 아니라 유신체제까지 역주행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접촉사고와 인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륜이나 역사인식이 없으니 갈팡질팡하면서 자기들도 고생하고 국민들도 고생하는 결과가 될 것 같다.

정부는 역주행이 안 된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 자세를 바꿔야 한다.”


-앞으로 통일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똘똘 뭉쳐서 투쟁하는 양식은 6·15 이전 방식이다.

6·15 이후엔 달라졌다. 투사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할 길이 열렸고, 다양성과 시민들의 창의력을 존중하는 6·15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역주행이 보이니까, 통일운동도 과거식의 강력한 투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있다.

싸울 일은 싸워야 하나 크게 봐서 역주행은 저쪽의 일방적인 소망사항일 뿐이다.

촛불 정국이 보여주었듯이 우리 사회는 시민 역량의 엄청난 축적이 이뤄져 있다.

이런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이 돼야 한다.

6·15 남측위는 ‘연대와 합의’ 정신으로 운영한다는 규약대로 느슨한 결합체로 가야한다.

단단한 단일조직으로 비끄러매려고 하면 시민들한테서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촛불시위가 100일이 지났는데 촛불이 다 꺼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70년대부터 민주화 현장을 지켜온 원로로서 소회가 궁금하다.


“저를 포함한 각계인사 32인이 지난달 1일 성명을 내어, 촛불축제는 위대한 국민 승리를 성취했기에 7월5일 모여 승리를 대대적으로 확인하자는 제안을 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이 제안을 상당부분 받아들여 국민승리선언대회가 성공적으로 열렸다.

국민승리 개념은 승리의 기준을 정부가 87년 6·29 선언 같은 것을 내놓고 쇠고기 재협상하겠다고 항복하느냐 마느냐에 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상, 아니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유례가 드문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승리라는 것이다.

이런 국민승리를 정부가 인정해 6·29처럼 항복선언을 하면 정부가 지면서도 이기는 길이고, 폭력 집회를 유도하고 탄압하면 정권의 몰락을 재촉하는 길이다.

정부가 그 시점에서 폭력 진압하며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나왔는데, 이에 말려들지 말고 우리 할 일을 하자는 취지였다.

지금은 정부가 촛불이 꺼졌다고 기고만장하는 것 같은데 그런 정권의 앞날은 암담하다.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계속 시위할 사람은 시위하고,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도 하고, 언론분야에서 싸울 건 싸우면서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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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극복’ 화두진보학계 원로 백낙청 선생은 ‘분단’을 화두삼아 그 극복을 모색해 온 진보학계의 원로다.

                               일찍이 남북한을 ‘서로 독립적인 체제가 아니라 상호연관을 가진 복합체’로 인식하는 분단체제론을 설파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60~70년대 한국 지식인층의 사회·문학비평 담론을 이끈 계간〈창작과 비평〉을 창간하고,

                               민족문학론을 설파한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개헌청원 지지 문인 61인 선언’에 나섰다가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되기도 했다.

 

                               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 <시민의 방송>(RTV) 명예이사장, <창작과 비평> 편집인이며,

                               2005년 3월부터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1938년 대구에서 났다.

 
 
글 이제훈 권혁철 기자nomad@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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