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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촛불 시민은 경찰의 보호대상이 아닌가”

“촛불 시민은 경찰의 보호대상이 아닌가”

경찰의 시민 보호 ‘이중잣대’ 논란
촛불 끌땐 ‘신속’, 우익단체 폭력엔 ‘수수방관’
“폭행 용의자 경찰 넘겼는데 풀어줬다” 주장도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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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오후 ‘공영방송 지키기’ 1인 시위를 벌인 여성을 각목 등으로 집단폭행한

대한민국 어버이연합회 회원들과 이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경찰을 규탄하고 있다.

대책회의는 당시 폭행 현장 근처에 있던 다른 보수단체 소속 차에서 발견한 쇠몽둥이와 각목, 휘발유 등을 함께 공개했다.

김진수 기자jsk@hani.co.kr 
 

 

지난 23일 ‘공영방송 지켜내자’며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박아무개(50.여)씨는 60~70대 우익단체 회원 10여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박씨는 오후 5시50분께 우익단체 회원들이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된다’며 각목과 주먹 등으로 무차별 구타했다.

당시 이를 말리던 강아무개(43)씨도 우익단체 회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촛불시민은 경찰의 보호대상이 아닌가 보다. 우리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다. 경찰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경찰의 ‘시민 보호’ 이중잣대가 논란을 부르고 있다. 경찰이 박씨처럼 ‘반 정부’ 성향의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폭행을 당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않고 있는 반면 ‘친정부’ 성향의 우익단체 회원들을 지나치게 감싼다는 것이다.

 

당시 여의도 폭행 현장에 있었던 성준호(38·울산시)씨는 “경찰이 박씨가 맞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며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폭행을 막지는 못했더라도 가해자를 붙잡기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오영애(49·서울시 성산동)씨는 “이런 비슷한 일이 열흘 전쯤에도 있었다”며 “KBS 앞 인도에서 시민 100여명이 촛불을 들고 앉아 있었을 당시 ‘고엽제 전우회’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오는데도 경찰이 막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촛불을 든 시민이 각종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방치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에 의해 현행범으로 잡힌 폭행 가해 용의자를 수사조차 하지 않고 풀어줬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창희(34)씨는 “시민들이 폭행 가해자를 현장에서 붙잡아 곧바로 경찰에 인도했는데 그 가해자가 6시께 흰색 자동차를 타고 도망갔다”며 “경찰이 그 사람을 풀어주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누리꾼 ‘피아니스테’는 24일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려 “우리는 경찰로부터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

우리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암울한 새벽이다”고 심정을 전했다.

 

경찰이 우익단체의 ‘폭행 증거물’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광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은 “24일 새벽 영등포경찰서에 각목 등의 우익단체의 폭행 증거물들을 제출하러 갔지만, 경찰은 접수조차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이러한 이중잣대는 촛불집회 참가자와 우익단체 회원 사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 17일에는 화물연대 조합원을 친 교통사고 차량을 경찰이 빼돌려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당시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 송아무개(25)씨는 전남 여수시 상암동 지에스 청룡주유소 앞 길에서 운송차량을 저지하던 중 자동차 바퀴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화물연대 조합원 천아무개(52)씨는 “경찰들이 송씨가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고차량을 검거하지 않고, 오히려 고속도로 순천 나들목까지 경호해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여수경찰서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반발하자, 뒤늦게 경위 파악에 나선 상태다.

 

경찰은 이런 의혹에 대해 “오해”라며 억울해했다.

서울경찰청 임학철 조정수사반장은 “진보단체든, 보수단체든 구분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는 일은 경찰의 의무”라며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의 폭력행위에 대해 지금 내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영등포 경찰서 김병록 경비과장도 “용의자를 조사 없이 그냥 풀어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23일 시민들로부터 인계받은 폭행 용의자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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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부터 경찰청 홈페이지 ‘열린게시판’에 올라오고 있는 시민들의 항의글들.

시민들은 대부분 “촛불집회 참석자들만 왜 과잉 수사”하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의혹과 불만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경찰청 홈페이지는 23일 밤부터 “보수단체 회원들의 폭력은 왜 방관하냐”는 시민들의 항의글로 가득 찼다.

윤정미씨는 “촛불시위 하는 시민들을 연행해가면서, 폭행을 한 우익단체 회원들의 죄에 대해 경찰이 방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적었다.

 

실제 우익단체 쪽 시민들이 폭행 혐의로 입건된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임학철 반장은 “아직까지 보수단체 쪽 시민들이 폭행혐의로 입건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시민들이 붙잡아 인계한 폭행 용의자를 풀어주고, 각목과 쇠파이프 등의 범죄물품의 인계를 거부한 영등포 경찰서 관계자들을 남부지검에 고발할 예정이다.

대책회의 이광철 변호사는 “현행범의 신변을 인도받고 유·무죄 관계를 수사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하는 것은 경찰의 의무이며, 이를 위반했을 때는 직무유기죄와 범인도피죄가 성립한다”며 “폭행 관련 물품들의 인수를 거부한 것도 직무유기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법적 근거를 설명했다.

 

현행 현사소송법 218조에는 “검사ㆍ사법경찰관은 피의자가 놓고간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허재현기자catalunia@hani.co.kr

 

 
 
기사등록 : 2008-06-24 오후 05:14:41  기사수정 : 2008-06-24 오후 06:06:1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50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