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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날, 설날과 떡국의 유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이 2009년 기축년 (己丑年) 소의 해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60년에 한번 돌아오는 2010년 경인년 (庚寅年) 백호의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먼저 새해를 맞아 모든이들이 많은 복을 지어 천년 만년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지으세요!!!

^^

 

 

이렇게 인사를 올립니다.

 

내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날,

떡국은 먹어야 하는데... ㅠ.ㅠ

그래야 꼬진 나이지만 한살을 더 먹게 되는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 '설'과 '설날'

무슨 뜻이고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궁금하지않은가?

 

설날은 한자어로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으로 불리는 데,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일컫는 우리나라 고유의 말이다.

 
그 뜻은 `낯선, 시작하는, 삼가는 날'이란 말로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새해에 대한 낯설음'과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설날로, 또는 설날을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니 위의 설명과 두루 어울리는 말이 되겠다.

 

뭐 그 뜻이야 어떻든 설날은 설날이라고 한다면 나도 할말은 없다.

ㅎㅎㅎ

 

설의 유래는 역사적 문헌에 드러나는 것은 신라시대때부터라고 한다.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와 『구당서(舊唐書)』에는

신라인들이 원일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갑자기 신라부터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농경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음력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음력을 사용하는 시작점부터 설이 유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겠다.

 

요즘의 우리는 설날 아침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 차례는 종손이 중심이 되어 4대조까지만 모시고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설을 맞는 섣달 그믐날 밤인 오늘 밤은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는데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때의 일이다.

밤새 가래떡을 써는 어머니 곁에서 구경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눈썹이 온통 하얗게 변한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어쩔줄 몰라하는 내 모습에 밤을 샌 모든 사람들이 박장 대소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고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다들 웃기만 해서 잔뜩 화가 난 나에게

어머니께서 물수건으로 눈썹을 닦아 주시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잠든 나를 놀리려고 쌀가루를 눈썹에 칠한 것이었다.

ㅎㅎㅎ

요즘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추억이다.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하고,

세찬(歲饌)은 차례상에도 오르고,

명절식으로 가래떡을 썰어 넣고 끓인 떡국은 대표적인 설음식이 되겠다.

 

설날에는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하는데,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재미있는 속설이 있기도 있다.

ㅎㅎㅎ

정말로 그렇다면 절대 노처녀나 노총각이 생길 수 없을 것이다.

 

<모아이님 블로그 사진 [http://blog.naver.com/jeong876]을 재 구성한 것임>

 

역시 떡국의 유래에 대해서도 오래된 문헌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때를 가리지 못하지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떡국을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 적고 있는데, 즉,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이라 했으며,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 했다고 나와 있다.

또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는 데서 유래하여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떡국은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만든 떡을 흰떡[白餠]이라 하는데,
이것을 얄팍하게 돈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말하며 지방에 따라서는 떡국에 만두를 빚어 넣기도 한다.

 

설날음식인 떡국에 요즘에는 쇠고기나 닭고기를 넣는데 원래는 꿩고기를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꿩고기가 구하기 어려워지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닭고기를 넣게 되었는데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이래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ㅎㅎ

꿩대신 닭!!!

 

보통 설날 아침에 떡국으로 조상제사의 메(밥)를 대신하여 차례를 모시고, 그것으로 밥을 대신해서 먹는 것이 보통이다.


 


설날의 놀이로는 남녀가 다 같이 윷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들은 널뛰기, 남자들은 연날리기를 한다. 
정초에 널을 뛰면 그해에 발에 좀(무좀)이 슬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짚신에 웬 무좀?

앞뒤가 맞지않지만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ㅎ

 

또한 섣달그믐 무렵부터 즐기던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까지 한다.
대보름이 되면 ‘액연(厄鳶)’이라 하여 연 몸통이나 꼬리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써서

멀리 날려 보내려는 것이다.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수난을 겪었다.

한 때 음력설[舊正]과 양력설[新正]로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날을 의미하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에 의한 설이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에 태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부터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다.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명치절(明治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켰다.
광복 후에는 박근혜의 아버지인 친일 독재자 박정희가 이중과세라는 낭비성만을 강조하며 설을 없애려 하였다.
하지만 국가가 아무리 신정을 강요해도 국민들은 설날을 진정한 명절로 여겼다.
그래서 설날은 급기야 ‘민속의 날’이라는 어색하고 이상한 이름이 붙여지고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어서야 본명인 ‘설날’을 되찾게 되었다.
이때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 만에 설날을 찾았다며 떠들썩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자들의 의식은 문제가 있었나 보다.

민의를 거스르려는 그런 의식 말이다.

 

오늘날 설날 무렵이면 추석과 함께 ‘민족대이동’이 이루어 지고 있다.
명절 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인데,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친지들간의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소중하다 하겠다.

그래서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는데, 
또 다른 세시풍속과 전통 민속놀이는 일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그래서 설의 세시풍속은 언론매체에 소개되는 것이 일종의 ‘세시풍속화’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민속박물관과 민속촌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민속놀이판을 벌이고 있으며,

이를 찾는 가족들도 날로 늘고 있다.

떡국을 끓일 가래떡을 기계로 빼거나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직은 떡국을 명절음식으로 하는 세시풍속이 전승되고 있고,
설날과 떡국은 우리 민족에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번 설에는 제발 아무 사고없이 귀성 귀경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이번 정월 초사흗날에 이곳 계룡산 갑사입구 사하촌에서는 괴목대신제와 주민한마당 잔치가 열린다.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어 관광객들과 한판 어울림 마당이 펼쳐지니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발원하고 즐거움을 가득 담아 가시길 소원해 본다.

 

지난 행사의 모습은 아래의 글을 참고 하시기 바람!!!

http://blog.naver.com/mhdc/150041969303

 

 

 

 

[2010년 2월 13일 계룡산 갑사입구에서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 설날을 기다리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