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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진주여행 1] 진양호와 촉석루, 의기 논개가 숨쉬던 그곳 진주성과 삶을 돌아보는 여행이야기

 

지루한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 ...
하늘은 더없이 말고 푸릅니다.
덩실 덩실 뭉게구름이 더 다니고...

 

7월 16일 페이스북에서 알게된 부자와 함게 진주/남해/통영/마산/봉하마을을 잇는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유성톨게이트 옆 만남의 광장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는 왜 떠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일까요?

사실은 떠나는 것이 자신의 속으로 들어 가는 것인데...^^

 

여러분은 진주 하면 제일 먼저 뭐가 생각나시는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논개...

의기라고 부르는 주논개입니다.

논개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장황하게 늘어 놓을 일은 아닌 것 같고...

진주는 논개 다음으로 진주성의 촉석루, 그리고 진양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먼저 진양호부터 들러 보았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에 위치한 진양호는 1970년 남강(南江)의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을 막아서 만든 남강댐에 의해서 생긴 인공호수로 면적 29.4㎢, 유역면적 2,285㎢, 저수량 3억 1000만t이라고 합니다. 

홍수 조절과 주변 일대의 상수도·관개용수·공업용수 등으로 이용되는데, 한때 오염이 심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금은 낚시등 어로 행위가 금지되어 비교적 물이 맑은 편인데 이번 장마로 흙탕물이 유입되어 물의 색상이 누렇게 보입니다.

 

주변에는 동물원, 진주랜드, 가족 쉼터, 물문화관 등의 시설이 있으며, 진주8경의 하나인 진양호 노을과 석양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날 한여름의 태양빛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피부가 따끔거려서 다닐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진양호야 사실 어린이가 아니니 전망대에 올라 진양호를 바라 보는 정도의 구경으로 마치고, 다음으로 진주성으로 논개를 만나러 떠났습니다.



 

진주에는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 도청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부산으로 도청이 이전하면서 진주는 쇠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러한 진주의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토성이던 것을 석축으로...증개축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면서 더욱 잘 알려지게되었습니다.

지금도 진주성 내에는 김시민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성의 둘레는 1.7㎞ 정도로 잘 정비되어 걷기에 좋은 시민 공원이 되었습니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있고,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흥산성, 고려시대에는 촉석성, 조선시대 이래로는 진주성 또는 진양성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진주성은 그저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있었으나 1992년부터는 성 외각의 정비사업을 추진하여 국립진주박물관이 들어서고 시설물등을 재 정비하여 지금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진주 시민들은 무료로 이용을 하게 되어있구요.
하지만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등 다소 관리에 문제는 있는 듯 보입니다.


 

계룡도령 일행은 진주성 3곳의 출입문 중 2002년에 준공된 공북문(拱北門)을 통해 들어가게됩니다.



 

성으로 들어서자 넓게 펼쳐진 잔디밭...



 

예전 계룡도령이 왔을 때와는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진주성...
이정표는 소중한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
진주성 하면 그래도 제일 먼저 촉석루로 가야할 듯합니다.

밀양의 영남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3대누각으로 알려진 진주의 촉석루는 남강변 의 수려한 경관을 품고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복문을 거쳐 지나오는 길가 강변쪽으로 는 잘쌓여진 석벽이 아름답게 늘어져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눈부신 주황색을 발하는 능소화는 기나긴 역삭 속의 편린들을 고스란히 이고 아름다운 자태를 봄내고 있습니다.



 

적당한 높이의 전투형 석벽은 이런 저런 시설물들을 만나면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 지기도 하는 모습이 서양의 자른 듯이 반듯한 성들과는 그 모습이 완연히 다른데, 이는 동서양의 우주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서양문화는 이차원...
즉 선의 문화이고 동양의 특히, 한국의 문화는 3차원적 점의 문화입니다.
점?
점은 임의의 약속으로 있지도 없지도 않은 것이니...
^^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경남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촉석루는 남장대로도 불리웠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제법 넓직한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주 남강을 바라보면 우측에 지수문과 의기 논개를 기리는 사당인 의기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의기대에는 논개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데.....

단아하면서도 의지가 강해 보이는 모습이 전혀 기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현재의 모습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 상황에서 실제의 모습인지는 계룡도령이 알 수 없고 그렇구나 정도로 느껴봅니다.



 

의기대 한켠...
오죽들 사이로 짙은 주황색의 홑왕원추리의 맑고 고운 모습은 목숨을 초개같이 내 던진 논개의 넋은 아닌지...




촉석루 바로 앞 절벽아래에는 의암이라 불리며 논개가 왜장을 끌어 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바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르내리기에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이곳...
지금이야 안전을 고려해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어떠했을지 상상만해도 아찔해 집니다.


 

의암의 바로 뒤 촉석루 쪽으로 '의기논개지문'이라는 비각이 들어서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의로움을 기리는 마음은 한결같은데 어이해 친일한 놈들이 득세를 하고 대한민국을 좌지 우지, 친일이 자랑스러운 듯이 포장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는 바른 길...정도가 있습니다.

그 정도를 밝혀 모범이되게하고 이를 따를 수 있도록해야 하는 것이 건만...

그저 돈이나 많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 무조건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세태는 완전히 미친 세상 같습니다.

 

의를 말하되 의인은 없고, 정신을 말하되 바른 정신이 없는 이러한 대한민국...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후세에서 이 시대를 뭐라고 평가할지 걱정입니다.



 

장마로 물이 많이 불어난 남강...
뜨거운 태양 아래 물살을 가르며 내달리는 수상오토바이의 굉음은 역사와 미래세대에 대한 부그러움에 젖은 계룡도령의 생각을 현실로 돌려 놓습니다.



 

시원한 남강의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촉석루를 나와 발길을 옮긴 곳은 '전통공예명품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입니다.



 

국립진주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한 곳...

참나리가 석양에 기대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나리의 나리는 나으리의 나리입니다.

예전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이지요.

 

계룡도령이 알기로...삼국시대 이전에는 지금과는 달리 왕을 하려하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추천을하고 마지못해 자리를 맡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우주의 원리를 담은 우리글 한자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政治], 정사 政에 다스릴 治로 알고 있는 이 단어...
사실은 정사 政에 다스릴이 아닌 다살릴 治였다고 합니다.

 

다 살릴 자신이 없고, 그러한 막중한 책무를 서로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다스린다는 뜻으로로 바뀌어 통용되어 버렸고 정치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다 살린다...
그것이 정치 아닌가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살아야 그 가운데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우주로 봐서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
우주의 시간으로 너무도 짧은 시간을 살다가는 우리는 주체와 주체 사이에 누군가를 다스린다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주창한 우리의 선조는 사해일가[四海一家]를 알고 이를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나만...
이런 생각들이 우리 사회와 지구촌을 병들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 살림살이를 합시다.
내가 삶으로해서 남도 살리는 '살림'살이...

우주가 평화로워지는 길입니다.

 

 

 

 

 

 

[2011년 7월 16일 다녀 온 진주에 대해 생각하면서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