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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먹거리이야기

그 유명한 전북 전주의 막걸리 골목 '전주막걸리'에서의 성찬!!!

 

 


전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었일까요?

아뇨...
^^
먹거리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유명한 전주 비빔밥!!!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전주 막걸리와 막걸리 골목입니다.
술 만 시키면 안주는 끝없이[?] 제공된다고 알려진 전주 막걸리...

지난 8월 7일 블로그 이웃님과 함께 치과에서 치료도 받을 겸해서 전주 나들이를 했습니다.
엄청나게 더운날씨에 치과 진료를 마치고 전주 한옥마을을 들러 구경을 하고,
 이곳 삼천동 막걸리 골목으로 행차를 했습니다.

전주에는 유명한 막걸리 골목이 2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이곳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또 다른 한 곳은 역시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입니다.

택시를 타고 삼천동에 도착을 하니 도로의 사방이 전부 막걸리 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로에 가로수가 무성하여 제대로 된 풍경을 담을 수 없어 부득이 나무가 없는 곳을 택하다 보니
먹걸리집이 많아 보이지 않는 곳이 담겼습니다.
^^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3시경이라 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아 선택의 여지도 없이 문이 열려 영업을 하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ㅠ.ㅠ

그런데 묘하게도 전주의 전주막걸리집입니다.
ㅎㅎㅎ
 


들어서니 가게 벽면은 온통 낙서투성이입니다.
이것도 나름의 영업 전략일 수 있겠습니다만,
막걸리를 주문하고 낙서를 해 놓은 것들을 하나 하나 읽어 보는데...
그냥 낙서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결국, 역시나로 끝났습니다.
^^
필자의 눈에 운치가 있는 글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들어가기 전부터 술을 마시는 손님이 한팀 있습니다.
술집이다 보니 초상권 시비가 있을 수도 있고 해서 얼굴을 뭉개 버렸습니다.
어랏!!!
글을 써놓고 보니 뭉갰다는 말이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부정적인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잠시 기다리니 10가지 남짓의 안주들을 가져다 줍니다.
막걸리 1되에 15,000원
안주를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추가로 술을 더 시켜야 또 다른 안주들이 나옵니다.


거창해 보이는 술상을 받고는 므흣한 표정을 짓고 계신 논산 손소아청소년과의원 손영기박사님입니다.


안주라는 것이 이렇게 여러가지가 나오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이라면 어떤 안주를 선택해서 주문해 놓고는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것 보다는
널려진 안주 중에서 몇가지 입에 맞는 것만 먹어도 되는 것이 장점이 되겠지요.

나쁜 점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집중공략[?]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딱히 먹고 싶은 안주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필자는 고딩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통술집을 드나들던 체질이라 
술집의 이름만 들어도 어떤 류의 안주가 전문인지를 알아 버리는 초능력[?]이 있습니다.
ㅎㅎㅎ
믿거나 말거나요~~~!!!

70년대초까지의 통술집은 그야말로 5~8가지 정도의 안주를 푸짐하게 장만해 두고는 안주가 떨어질 때까지 장사를 합니다.
당시는 술이래야
흔히 대포라고하는 큰잔에 데워 마시던 청주가 주류였습니다.
맥주는 그렇게 활성화 되지 않은 시기이고,
값싼 소주나 막걸리를 팔아서는 안주 가격을 메울 수가 없어서 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점점 변해서 청주가 비싼 술 축에 끼이지 못하게 되자 통술집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소의 수지나 부산물, 어묵 등을 안주로 파는 수복집[백화 수복 전문점]입니다.
술과 안주는 제값을 받는 대신 통술집에서 인기가 있던 안주류가 주류를 이루는 형태였지요.
그러던 중 1차 생맥주 열풍이 불어 닥칩니다.
통기타의 대중화에 힘입어 이때부터 술에 따라 세대가 갈라지는 분단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젊은 세대는 생맥주,
좀 덜 젊은 세대는 소주와 청주
하지만 막거리는 당시에도 세대간의 분단이 적은 술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고정된 장소에서만 먹어야 하는 생맥주에서 사서 어디든 이동이 가능한 병맥주로 시류가 변화 하면서
한동안 생맥주집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제 2차 생맥주 파동이 밀어 닥칩니다.
흔히 오비베어니 뭐니 하면서 100원짜리 안주를 키트화 해서 간단하게, 저렴하게
신선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을 전면에 내세운 맥주업계의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지요.

 


그리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3S 우민화 정책이 정점을 달할 때까지 OB베어 등 생맥주 전문점은 호황을 누립니다.
박정희정권이 끝나는 순간부터 막걸리는 싸구려 술로 취급되며 최악의 상태로 곤두박질치게 됐구요.

그러다 다시 소주의 소비가 급증하게 되지만 막걸리는 치명타를 입어 회복하지 못하였고,
상대적으로 맥주 소비가 줄자 생맥주집은 이상한 형태로 진화를 하고 맙니다.
좀 불건전한 방향으로 말입니다.
ㅠ.ㅠ

그러는 과정에 부산에서는 국제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통술집을 표방한 실비집들이 번성하게 됩니다.
물론 막걸리를 파는 것은 아니구요.
주로 맥주를 팔았는데...
10여가지의 안주를 끝없이 제공하며 맥주가격은 병당 시중보다 1,000원정도 더 받는 것으로 끝입니다.
한창 번성 할 때인 80년대 중반에는 조금만 늦으면 술을 마시지 못하고 되 돌아가야 했습니다.
자리가 없거나 안주가 떨어지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의 내용들은 부산에 살았던 필자의 경험만을 기초로 한것이니 전주와는 발전 과정이 다르겠지요?
명색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와
당시 박정희로 부터 상대적 소외를 받던 전라도 시골의 조그마한 시와는 차이가 많았을 것입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주라는 조그마한 시에서 큰 소비는 없었을 것이고,
대학생 상대 위주의 영업을 하다보니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건강에도 덜 해로운 막걸리가 자리를 잡고
명맥을 이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인심하면 전라도아닌가요?
전주의 특성이 바다가 가깝고 산이나 들에서 나는 식재료들이 가격도 싸고 풍부하다 보니
술값이 좀 비싸긴 해도 막걸리만 시키면 돈없는 대학생들이 원없이 먹을 수 있으니 인기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필자가 학창시절 막걸리를 한창 마시러 다닐 때에는 막걸리가 금방 가라앉아서
이야기 하다 마실 때에는 반드시 새끼손가락으로 저어서 마셨습니만,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인지 그렇게 빨리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때를 회상하며 일행에게 부탁하여 약지로 저으라고 하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을 하였습니다.
ㅎㅎㅎ
 


전주의 막걸리집이 다 그런지는 몰라도
필자 일행이 들른 '전주막걸리'에서는 손님이 남긴 안주나 먹거리를 몽땅 한군데에 다 쓸어 모아 폐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안주가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세상 이치는 늘 높고 낮은 흐름이 있기 마련!!!
이번에 처음 들러 본 전주의 막걸리 골목...
필자 일행이 간 곳만 그런지는 몰라도...
여기 저기 방송에서 요란을 떨면서 전주막걸리골목을 홍보한 탓에
필자 같은 외지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였던 원치 않았던 간에 쓸데 없는 높은 기대감을 심어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 기대감에 맞추려면 업주들의 눈높이가 더욱 더 높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객의 기대치를 맞추려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전주막걸리를 찾는 소비자는 양을 따지던 가난한 대학생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가게된
'전주막걸리'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1가 623-7에 위치한 곳으로
택시 기사님께나 지역분들께 삼천동 먹걸리 골목을 문의하면 다들 잘 알려 줍니다.
전주막걸리 전화 063-225-0808





[2010년 8월 7일 전북 전주의 유명한 막걸리 골목을 다녀와서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