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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힘찬 도약 발전하는 충남!!! 강경읍 옥녀봉에서 본 2010년 경인년 해넘이


 

아래의 글은 충남도정신문 인터넷판에 기사화 된 내용입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55513

 

 

 

 

힘차게 도약하는 충남을 기원하며

강경읍 옥녀봉에서 본 2010년 경인년 해넘이

[36호] 2011년 01월 04일 (화) 18:10:45 계룡도령춘월 mhdc@naver.com

 





 

강경의 옛 영화가 무상타.
힘찬 도약 발전하는 충남!!! 강경읍 옥녀봉에서 본 2010년 경인년 해넘이




강경읍은 충청남도 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하여 풍요로운 금강을 끼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과 접경지역으로 예로부터 호남과 호서지방의 관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100년 전, 강경은 나라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곳 가운데 하나였는데,
조선 팔도에서 부보상과 거상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던 강경장은 조선 후기 평양장, 대구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 가운데 하나로 손꼽혔으며, 금강을 타고 충남과 호남의 물자가 모이던 강경 포구는 원산 포구와 함께 전국 2대 포구 중 하나였습니다.
거기다 비단과 소금을 실은 중국의 무역선과 일본의 배들도 강경을 찾았으니 강경의 포구는 밤낮없이 떠들썩했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강경은 수탈 전진기지로 이용되며 강경의 전성기는 계속되는데 1902년에는 충남 최초의 우체국이 세워졌고 충남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고 상하수도가 놓였다고 합니다.
1920년대에 지방법원 지원과 전매서, 경찰서 등이 들어서고 호남지방 최초의 강경극장이 세워진 것도 이때라고 합니다.

강경의 지명은 江景浦에서 유래되었는데 금강을 낀 포구의 이름이 이 지방의 지명으로 대표하게 되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은진현 강경호가 있으며 '미내다리'비에도 강경촌이라는 지명이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오래전부터 이어내려온 지명으로 강경포의 이름을 따서 江景面[강경면]으로 하였으며 1931년 江景邑[강경읍]으로 승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강경도 1905년 경부선,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어 금강을 통한 물류 운송을 철도가 대신하게 되면서 기울기 시작하여 교통과 상업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1990년 금강하구둑의 완공은 강경 포구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켜버립니다.


그러한 역사의 우여곡절이 가득 담긴 강경에서의 의미를 두고, 참으로 다사 다난했던 2010 경인년을 보내는 마지막 해넘이를 보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옥녀봉의 정상에서 담은 일몰 사진이 좀 묘합니다.
특이하게도 태양이 마치 용광로가 불길을 내어 뿜 듯, 아니면 불길을 뿜으며 날아가는 로켓처럼 묘한 여운을 남기는 모습으로 담긴 것입니다.
태양도 2010년 경인년 한해가 너무도 지긋지긋하여 마치 추진체를 발사하면서까지 어서 빨리 떠나려는 듯한 모습같기도 하고 가는해가 아쉬워 마지막 기운을 넘겨 주려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곳 강경에는 해발 56미터의 위용[?]을 자랑하는 해운산과 해발 43.8미터의 강경산이 있습니다.
강경산은 일명 옥녀봉[玉年峰]이럭 불리는 곳으로 아주 작은 봉우리입니다.


그 옥녀봉의 봉우리에는 법원 검찰청의 강경읍 존속을 위해 상경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타계한 송재 윤훈선생을 기려 松齋亭[송재정]이라 이름 붙여진 정자가 있고, 정자를 오르는 한켠에는 순국열녀 안순득여사추모비, 강경항일독립만세운동기념비, 송재 윤훈선생추모비, 목촌진창옥선생공적비, 등 비석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몇 발짝만 더 가면 옥녀봉의 정상으로 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계단을 걸어 오르다 보면 좌측에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어 버티기 조차 힘들어 버팀목을 받쳐 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고, 제일 높은 곳에는 2007년 복원된 봉수대가 커다란 느티나무와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옥녀봉은 조선시대 지리적 요충지로 산 정상에는 복원한 봉수대가 있으며, 옥녀봉의 봉수는 조선 전기《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옥녀봉의 이곳 저곳에는 유난히 특이한 형상을 한 바위가 많이 눈에 뜨입니다.
바위마다 물범바위, 멧돼지바위 등의 이름들이 붙어 있는데 부엉이바위도 있어 지난 2009년 5월을 되새기게도 합니다.
이 10여개에 이르는 바위들의 이름은 2002년에 구전되어 오던 것들을 정리하여 붙인 모양인데 멧돼지 바위는 이름과 잘 맞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위 사진의 아래 좌측이 멧돼지 바위이고, 우측은 삼존불바위라고 한답니다.

이 작은 옥녀봉은 산봉우리의 모습이 옥녀가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옛날 이 산 아래로 흐르는 금강의 강물은 아주 맑았고,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었으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이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한번이라도 이곳을 다녀간 선녀들은 이를 영광으로 알고 자랑을 하곤 하였답니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딸 옥녀는 선녀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곳에 한번도 내려 오지를 못하여 부러워하며 꼭 가보고 싶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해 팔월 보름날 옥황상제의 딸 옥녀는 드디어 허락을 받아 이곳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옥녀는 맑디 맑은 물과 너무도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어 그만 돌아 갈 시간을 넘겨 버렸습니다.
결국 그 일로 옥녀는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게되고, 아무도 지상으로 내려올 수 없도록 하늘 문을 닫아버려 하늘로 다시 오르지 못하고, 하늘에서 가져온 거울로 하늘의 모습을 보며  옥황상제의 노여움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다 이 땅에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산 위에는 봉수대 아래 조그맣게 봉우리진 곳이 있는데 이 곳을 옥녀가 죽은 자리라 하여 옥녀봉이라 부르고 그녀가 들여다보던 거울은 바위로 변하여 용영대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옥녀봉을 떠나는 시간 옥녀가 죽었다고 전하는 바위에서 바라본 정상의 느티나무에는 하늘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새'가 옥녀의 슬픈 한을 하늘로 이어 주려는지 가득 무리지어 않아 있습니다.

논산과 강경은 평야로 유명한 곳입니다.
크게 굽이져 흐르는 금강 덕분에 형성되어 이루어 진 것으로 추측되는 퇴적층이라 주변에 큰 산이 없습니다.
옥녀봉이 바라다 보이는 곳 자그마한 야산에는 이곳 출신 작가 박범신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강경포구는 이미 옛영화를 버리고 새로운 도약을 꿈구고 있습니다.

멀리 옥녀봉과 눈앞에 보이는 강경젓갈전시장...
세모라 일찍 문을 닫았는지 구경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전국에서 유명한 젓갈시장으로 거듭 옛영화의 불씨를 이어가는 강경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이곳 산위에는 조그마한 전망대가 있습니다.
휘돌아 이어진 골뱅이계단을 올라가면 ...


강경시내는 물론 멀리 전북 땅까지 보이는 것이 맑은 날에 한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쇠락해 한척의 배도 보이지 않는 강경포구에서 옛 영화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1997년 “강경되살리기 운동” 제창이후 강경포구유원지 공사, 기능대학 설립, 특산물 축제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새롭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논산8경중의 하나인 옥녀봉과 금강을 연계한 지역적 특성을 살린 축제들이 많으며, 매년 10월 중순에 열리는 “강경젓갈 축제”는 전국적 규모의 행사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지역의 특산물 황복탕, 위어회등 전통음식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지정학적 장점을 살려 나가려 노력하는 강경의 모습에서 지역 소도시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0년의 마지막을 알리며 스러지는 저 태양의 모습은 전국 어디에서도 관찰되지 않은, 불꽃이 살아 이는 듯한 특이한 형태였는데, 강경 옥녀봉에서의 해넘이 모습은 문화가치와 소통을 앞세우며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재 도약의 기치를 힘차게 밝히는 충청남도와 강경의 오늘 아니 내일의 모습은 아닐까?




[2010년 12월 31일 충남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에서 맞은 해넘이에서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