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鷄龍山의사계/행사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비는 갑사 괴목대신제가 국립공원 계룡산 갑사입구에서 열렸습니다.



 

아래의 글은 충남도정신문 인터넷판에 기사화 된 내용입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56952

 

 

'마을의 안녕과 화합 기원' 갑사 괴목대신제

국립공원 계룡산 갑사입구에서 열려

[36호] 2011년 02월 07일 (월) 12:42:08 계룡도령춘월 mhdc@naver.com

 

 

2011년 2월 5일(신묘년[辛卯年] 음력 정월 초사흗날),

올해도 어김없이 국립공원 계룡산 갑사입구에서 ‘괴목대신제’가 열렸습니다.

갑사 사하촌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며 갑사입구의 괴목앞에서 정성을 다한 제를 올렸습니다.

올해의 경우 전국적으로 만연한 구제역 때문에 축제의 형식은 제외하고 조촐한 마을의 제례로 거행되었습니다.

12시 갑사주도의 괴목대신제가 열리고 이어 마을의 주민들이 다시 제를 올리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 갑사 입구의 괴목


제는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제수를 차리고 제관과 축관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 제를 준비하는 마을대표인 제관들

 

예년과 달리 구제역 때문에 축제가 사라지고 조촐한 마을 행사로 끝나게 되었지만,  비록 널리 알리지 않고 축제도 없었지만 입춘이 지나고 풀린 한파 덕에 계룡산 등산을 온 많은 사람들로 괴목대신제는 기대 이상의 열기로 진행되었고, 제관들이나 마을주민들은 더욱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제에 임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예를 다합니다.


▲ 정성을 다해 예를 올리는 제관들


구제역 때문에 풍물도 대대적인 잔치도 없었지만 우연히 참여하게된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소지공양을 위해 자신의 기원을 소지에 담고 있습니다.



▲ 소지에 인적사항과 기원을 담는 관광객들


다들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요?


▲ 기원을 담아 소지 공양을 하는 갑사 수정식당 김태순사장 

 

제와 소지공양을 마치고 제수는 주변의 모든 분들과 나누었습니다.
예년처럼 성대하지는 못하였지만 주민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으리라 생각됩니다.


▲ 제수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등산객들


제라는 것은 굳이 소원을 이루고 말고를 떠나 농경사회에서 마을 주민들의 화합이 무었보다 중요했던 그 옛날의 삶의 방식에서 서로가 협동하고 마음을 모으는 중요한 행사였을 것입니다.

덕분에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들끼리도 이 자리를 빌어 화해하고 서로를 다독거리는 그런 날 말입니다.

 

구제역이 더 이상 피해를 남기지 말기를 기원하며 내년 더욱 더 풍성한 축제가 되길 기원했습니다.

 

 


 

 

 

갑사 괴목대신제 유래

갑사동 용천교 입구에 수령이 1600여 년이 넘은 괴목이 있다.
갑사의 창건과 역사를 같이 한 이 괴목은 임진왜란 때에는 영규대사와 많은 승병들이 모여 그 그늘 밑에서 작전을 세우기도 한 호국불교를 증거 하는 신수(神樹)이다.

 

300여 년 전 갑사 장명등 기름이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이상이 여기신 스님들은 어느 날 밤에 장명등 기름이 없어지는 이유를 밝히고자 몰래 밤에 장명등을 지키기 시작하였는데, 덩치가 큰 누군가가 기름을 훔쳐 가는 것이었다.

 

놀란 스님들은 당장 그 물체를 찾아가니 바로 이 괴목의 당산신이었다.

 

기름을 훔쳐간 연유를 묻자 당산신은 사람들이 담뱃불로 이 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내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갑사의 장명등 기름을 가져가 발랐다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를 알게 된 스님들은 마을 사람들과 괴목의 주위를 잘 정리하였다.

 

그 후 갑사의 장명등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으며, 마을에 돌았던 역병이 없어져 스님과 마을 주민들은 괴목의 당산 신에게 매년 정월 초사흗날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 내 용 (2011. 2. 05)
-15:00 괴목대신제
-15:30 로신제

 

 

 

 

[2011년 2월 5일 구제역 때문에 축소되어 버린 갑사 괴목대신제에서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