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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말뜻을 잘 살펴보고 적절하게 써 보자.

 

요즘 세상은 늘 학습을 강요한다. 중등, 고등학교 때 전혀 자율적이지 않은 야간 “자율”학습을 강요하던 것과 비슷하게 지금도 여전히 자율학습을 강요한다.

그다지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어 보이는 듯해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눈 뜬 채 코를 탈취당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광우병으로 촉발된 국민의 요구를 폄하하기 위한 천민민주주의, 언론/방송장악을 시도하던 과정에 나왔던 vCJD와 CJD 그리고 한미 FTA의 투자자- 국가 소송제, 금융대란 때 파생상품 등등.

이번에 제시된 전혀 자율적이지 않게 학습해야 할 단어는 지난 몇 달 동안 신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아주 낯익은 단어다.

바로 ‘포퓰리즘’이다.

 

우선 용어 하나 조정하자면

 

초등학생 무상급식에서 시작된 이 작은 이야기가 어느 대도시 시장님의 강남 3구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과 그 위에 계신분의 자기식구 편들어주기로 살이 붙더니 무상급식에 무상보육과 무상의료가 덧붙여지자 결국 오늘의 학습 내용인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먼저, 포퓰리즘 딱지가 붙은 무상이란 말부터 바로 잡자.

무상은 사전적 의미로 상환 의무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는 대부분 어린이나 노약자가 대상인데, 이들이 대출해서 점심 먹고 유치원 가고 병원 간 후 나중에 상환 의무를 지지 않는 제도가 아니므로 여기서 '무상'은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제도들이 국가가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의 범주에 속하는가를 논의해야 하므로 의무급식, 의무보육, 의무의료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포퓰리즘의 특성

 

이제, 이러한 의무급식, 의무보육, 의무의료가 정말 포퓰리즘인지 알아 보 자.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알아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포퓰리즘에 관한 책을 찾아보면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흔히 듣던 단어라 특별히 관심을 두지않고 지나쳤는데 저자들은 하나같이 포퓰리즘을 명확히 정의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의미를 정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의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그 공통분모만을 모아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알아가 보자.

다양한 포퓰리즘의 공통점으로는 이런 특성을 언급할 수 있겠다.

 

첫째, 포퓰리즘에는 자유, 평등,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손꼽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포퓰리즘은 외부에서 그 중심가치를 차용하거나 특정 지도자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둘째, 포퓰리즘에서 제기되는 주장들은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갖는다.

예를 들면, 대중을 전면에 내세우고 대의제를 반대하지만 대의제의 중추역할을 하는 정당과 같은 제도를 주요수단으로 활용한다.

스스로를 제한하는 이러한 근본적인 딜레마로 인해 포퓰리즘은 체계화되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셋째, 포퓰리즘의 공통점은 당시 상황에 따라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포퓰리즘을 단지 정치적 영역으로만 한정할 경우 특히 경제적 성격의 포퓰리즘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포퓰리즘 구체 사례

 

이렇게 포퓰리즘에 대해 윤곽을 대략 그려 보았지만 역시 이를 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학습 진행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매우 효과적인 학습방법 중 하나는 구체적인 예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근래에 이러한 포퓰리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가 있었다.

지금은 그저 지우고 싶은 기억일지 몰라도 2008년 제18대 총선 때 포퓰리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정책이 있었다.

바로 ‘뉴타운 추가 지정 공약’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뉴타운 지정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서울의 대부분의 선거구를 싹쓸이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뉴타운 정책에는 포퓰리즘의 모든 공통분모가 다 들어가 있다.

 

먼저, 뉴타운 정책에는 어떠한 보편적 가치도 들어 있지 않다.

부동산 투기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뉴타운 정책은 결국 용산참사라는 잔혹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둘째, 뉴타운 정책은 그 자체로 근본적인 모순을 갖는 정책이다.

당시 서민들에게 절실한 것은 전세값, 집값 안정이었다.

그러나 뉴타운 정책을 환호하던 대중들의 마음 한편에는 새로운 아파트와 주상복합단지의 건설로 인한 땅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땅값 상승이 예상되는 뉴타운 지정 정책과 반값 아파트 실현이라는 공약이 어처구니 없게도 같은 공약 선전물에 인쇄되어 있었다.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려는 생각이 뚜렷한 정책은 포퓰리즘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면, 의무급식, 의무보육, 의무의료도 어느 시장님의 주장처럼 포퓰리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을까?

의무급식, 의무보육, 의무의료는 흔히 복지라 한다. 복지는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목표 중 하나다.

사람답게 살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은 다른 어떤 가치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이다.

또한, 이러한 복지가 끝없는 비용 지출만을 요구 하지도 않는다 .

독일의 예를 들어 보자. 독일은 과거 동독의 육아 정책에 영향을 받아 1995년 3세부터 6세까지 의무보육을 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 법률은 2008년 개정되어 의무보육 대상자가 1세부터 2세까지 유아로 확대 되었다.

보육에 관한 사항은 주 정부의 소관이므로 대상 확대에 따른 지출도 당연히 주 정부 몫이다.

주정부 입장에서는 지출이 증가하는데도 대부분의 주 정부들이 이 법률에 동의했다.

그 이유는 보육에 필요한 보육교사를 고용함으로써 2013년까지 전국적으로 무려 5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포풀리즘이라 해야 하나?

 

뜻이 명확하게 공유되지 않은 단어들은 종종 어떤 주장이나 정책의 수식어로 사용되어 그 주장과 정책을 비판 없이 거부 혹은 수용하게 만든다.

교육이나 의료에서 빈부상태와 무관하게 혜택을 받게 하자는 뜻에서 나온 정책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사용되고 회자되는 포퓰리즘이란 말은 따라서 적절하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아마도 감정적 거부감을 유도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새로운 단어를 학습하는 김에 이왕이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조어를 하나 만들어 보자.

대기업의 수출을 위해 치솟는 물가를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 국가 경쟁력을 위해 노동 유연성을 가져야 하다며 수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어 내고 그들을 전혀 보호하지 않는 정책들, 아무런 부끄러움도 모르고 “기업 프랜들리”를 외치는 사람들, 이러한 주장과 정책들에 “재벌 포퓰리즘”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여 본다.

이런 신조어에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이대연[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행된 한글 문화지  '풍경'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