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던 5월18일,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은 유네스코 총회의 데이비드슨 헵번 의장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지 소장이 ‘점잖게’ 쓰고,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회원 정재성씨가 ‘비즈니스 폼으로 우아하게’ 번역했다는 이 영문 편지는 5·18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할 유네스코의 국제자문위원회 심사위원 14명에게도 함께 발송되었다.
원고지 120여 쪽에 이르는 이 편지에 빼곡히 적힌 내용은 모두 ‘5·18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안 되는 이유들’이다.
자신을 ‘객관적인 연구자’라고 밝힌 지 소장은 편지에서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 혹은 북한의 뜻에 따라 움직인 윤기권·김대중·문익환·서경원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배후 조종한 폭동·반란이다”라고 주장했다.
지 소장은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5·18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 없는데, 내일모레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 심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네스코에 편지를 쓰게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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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광장에서 5월17일부터 열린 ‘5·18 기념 사진전’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보고 있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들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후보에 올라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장인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유네스코 아태지역 국회의원연맹 의장 대행 자격으로 유네스코 파리 본부에 가서 업무 보고를 받던 2009년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필리핀·아르헨티나 등의 민주화운동 기록이 모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는 걸 듣고 우리 5·18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해 현지에서 당장 신청 서류를 갖고 왔다”라고 말했다.
그해 12월 꾸려진 추진위원회는 관련자 1500명의 구술 증언·군사 법정 재판 기록 등 5·18 기록물 3만5000여 점을 모아, 지난해 4월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달라고 공식 신청했다.
지난 4월 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5·18 기록물은 마지막 관문인 유네스코 자문위원 총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민주당 “그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
5·18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반대한다고 유네스코에 의견을 전달한 사람은 지 소장만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1월 ‘국가정체성회복 국민협의회(국정협, 회장 박세환)’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한국지부 대표 서석구)’의 반대 청원이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 전달된 바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한국의 5·18 사건을 리스트에 등재하는 여부에 관하여 충분한 시간과 조사를 거쳐 결정하실 것을 바라는 청원’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쓴 한·미우호증진협의회 서석구 대표(변호사)는 “북한 대남 공작에 의해 놀아난 5·18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5·18이 북한에 의해 일어났다는 이들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지만원·서석구 씨의 편지에 인용된 근거 자료는 주로 “‘5·18 때 600여 명의 북한군이 광주에서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다’와 같은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라는 탈북자들의 진술 혹은 자신이 직접 저술한 저서에서 발췌한 분석들이다.
“무기고 44곳을 불과 4시간 만에 턴 것을 보면 절대로 일반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빨치산의 자녀들도 고아원에서 돌봐준 남한 정부와 미국이 학살을 저지를 수 있겠나?” 같은 심증을 거쳐 이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북한이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 살상해놓고 그 죄를 국군한테 뒤집어씌워 훗날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같은 공산주의 정부가 탄생되도록 조종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5월12일 “청문회 등을 통해 진상이 모두 밝혀진 사실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
특히 국정협이라는 단체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이명박 정부와 이들 단체의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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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지만원씨(왼쪽)와 서석구씨(오른쪽). |
보수 단체의 주장이 유네스코 심사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김영진 추진위원장은 “반론할 수 있는 소명 자료가 필요하다는 유네스코의 연락에 국회의장·대법원장·육군 참모총장 등에게서 5·18 관련 공공 문서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도 좋다는 동의서를 받고, ‘보수 단체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청문회 발언도 영문 번역하는 등 보강을 철저히 해 추가 자료를 보냈기 때문에 등재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등재 여부는 5월22~26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결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