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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유성명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전당 국립대전현충원

 

 

 

 

 

유성명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전당 국립대전현충원

 

 

며칠 전 해병수색대의 훈련 중 헬기사고로 안타까운 희생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곳 계룡산과 가까운 대전시 유성구의 대전국립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사실 대전국립현충원은 계룡도령의 아들이 1034기로 해병대를 지원해 다녀 오면서 인연이 있는 곳으로 자녀들을 해병대에 보낸 해병대가족모임카페의 간부로 활동을 해 오던 중 수 차례에 걸친 사고로 희생된 해병 가족들을 위로하고 위문금을 모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안장식이나 추념식에 참여하게 되는 등 있어서는 않될 좋지 않은 일들로 인연이 된 것이라 유성구청 블로그 기자단이 되어 유성구를 소개하기 위해 나선 걸음이지만 이번 방문이 안타까운 해병대의 사고소식까지 겹쳐 썩 내키지 만은 않았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國立大田顯忠院]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룡로 1558 (갑동 산 23-1번지)에 위치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계시는 곳으로 민족의 성역이라 하겠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일제침략과 6·25전쟁, 월남전 등에서 활약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7월 15일 서울 동작동에 설립한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어 지방 국립묘지 설치를 검토하면서 1976년 4월 14일 충남 대덕군 유성읍 갑동리(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의 현 위치에 대전국립묘지를 설치하기로 결정 하며 설치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국방부가 1976년 5월 11일 지방 국립묘지 설치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979년 4월 1일부터 공사를 착수하여 같은 해 8월 29일 국립묘지관리소 대전분소로 출범하였고, 1985년 국립묘지를 준공한 뒤, 1991년 국립묘지대전관리소 승격을 거쳐 1996년 6월 1일 지금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으며 1985년 11월 13일 전체 면적 약 322만㎡(97만 4천평)에 안장 능력 6만 3250기(2006)의 현 국립대전현충원을 준공하였고, 2006년 1월 30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국립대전현충원의 소관부처가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공사기간 중이던 1982년 8월 27일부터 사병을 처음 안장한 이후 1985년 2월 장교 및 경찰관, 1986년 11월 장관급 장교, 1989년 10월 국가유공자, 1994년 12월 소방관(일반묘역)을 각각 처음으로 안장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국립대전현충원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을 모시고 있으며 그분들의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의 전통미와 현대감각의 조화, 자연경관의 최대 보존, 기존 국립묘지의 미비점 보완, 전 묘역의 호국공원화를 기본 방향으로 잡아 조성하였는데 묘역은 애국지사 제1·2묘역, 국가유공자묘역, 장군묘역, 일반묘역, 장교묘역, 사병묘역, 경찰관묘역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밖에 현충관(1,800㎡)과 호국관, 봉안관 등이 있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국립대전현충원을 살펴 보자면 문필봉을 조종산(祖宗山)으로 옥녀봉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있으며, 명산인 계룡산을 태조산(太祖山)으로 삼고 있는데 택리지에 의하면 태조산인 계룡산은 삼각산, 오대산, 구월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의 역량 있는 큰 터 중 하나라고 하였고, 문필봉은 형상이 붓끝처럼 생겨 유래한 이름으로 우뚝 빼어난 봉우리는 불길이 이는 듯 하여 마치 현충원을 두루 비치고 있는 듯 한데 이 문필봉에서 다시 솟구쳐 내려 이룬 옥녀봉은 마치 옥녀가 금반(金盤)을 대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국립대전현충원의 지형은 명산인 계룡산의 맥을 이어 받은 문필봉과 옥녀봉을 정점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좌우능선이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어 묘역으로 아주 이상적인 명당(明堂)자리라 합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기리는 현충탑 뒷편에 위치한 국가원수묘역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부부가 안장되어 있고 3기가 더 안장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원수묘역에서 북동쪽의 야트막한 둔덕에는 제1장군묘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초대 해병대 사령관이었던 신현준 장군의 묘소를 만나게 되어 묘한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되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신현준’이라는 이름은 ‘귀신잡는 해병대’의 초대 사령관, 또는 ‘해병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1946년 6월 조선해안경비대 견습사관으로 한국군에 입대한 이래 그는 15년간을 군에서 보냈는데, 해병대 창설은 물론 6.25전쟁 때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1961년 예편 후에는 모로코 대사, 바티칸 대사 등을 역임했는데, 지난 2004년 해병대 창설 44주년을 맞아 전 재산 1억원을 해병대 발전기금으로 기탁했는데, 해병대사령부는 이를 기초로 해병대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한 ‘신현준장학회’를 설립,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그는 2007년 10월15일( 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 주 차남 자택에서 향년 92세로 별세하여 18일 유해가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진 뒤 20일 해병대장으로 영결식이 치러지고 이곳에 안장된 것입니다. 

 

 

높은 사람들의 묘역을 내려와서야 실전에서, 훈련 도중에 희생된 병사와 소방관 그리고 경찰들의 묘역이 넓게 마련되어 있는데 희생의 가치에 비해 죽어서도 차별받아 상대적으로 초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흔히 보훈의 성지, 민족의 성역이라 불리는 국립대전현충원[國立大田顯忠院]에서는 현충일 행사, 합동 및 개별 안장식, 호국영화 상영, 유품 및 전리품 관람, 학생 참관교육, 묘역 가꾸기 봉사 등의 활동과 국민모두가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현충원길 걷기대회, 사진·UCC공모전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보훈산책로, 보훈과수랜드, 야생화공원등을 조성하여 휴식하면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열린 현충원 밝은 현충원'의 모토 아래 '열린 호국공원'으로서의 역활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각 직급 공적별 묘역을 둘러 보고 출구로 향하다 장례 버스를 만났습니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인데 무슨 일일까하고 다가가 보았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유해·유골 안장 및 생전의 업적 추모사업을 하고 있는데 안장되는 조건은 다음 과 같습니다.

 

-군인 및 군무원으로 전사 또는 순직한 자
-전사한 향토예비군,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자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이 현저한 자
-국장(國葬)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군인·군무원·경찰관·소방관으로 전투·공무수행 중 상이를 입고 퇴직 후 사망한 자
-임무수행 중 전사·순직한 경찰관·소방관,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자
-대한민국에 공로가 현저한 외국인 사망자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번에 만나게된 안장자는 아마도 훈련 중 또는 군 복무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야 심사가 끝나 안장이 되는 듯 보였습니다.

 

안타까운 젊음이 또 하나 이슬이 된 것입니다.

 

생떼같은 자녀를 군에 보냈으면 국가와 군에서 잘 관리하고 운용하여 안전하고 정확하게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주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 않은 수많은 묘지들이 다듬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희생이 더 이상은 없어야 겠다는 생각이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듯 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유명한 명사 중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은 국가유공자묘역 제10호에 안장되어 있으며 '어린이 날' 노래 등 많은 동요의 노랫말을 지은 윤석중은 국가유공자 묘역 제12호에 안장되었고, 백범 김구의 모친 곽낙원과 김구의 맏아들 김인은 애국지사 771호와 772호에 안장되어 있고, 6.25전쟁 중 군수품과 피난민을 수송하다 전사한 철도원 150명의 위패와 13명이 안장되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또한 최초의 한국 영화 아리랑의 감독인 라운규의 묘소도 있다고 하는데 그의 묘는 제2묘역 257호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의 사이버 참배 코너에서 안장자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국립대전현충원을 둘러 보았는데 안타까운 희생의 묘역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된 거룩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커다란 역사의 감동이 전해지는 그런 국립대전현충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충원을 나섰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바로가기
 

개방시간

하절기 (3월 ~ 10월) 개방시간 전후 방문 시 정문에서 확인절차를 거친 후 입장 가능 (06:00 ~ 18:00)

동절기 (10월 ~ 2월) 개방시간 전후 방문 시 정문에서 확인절차를 거친 후 입장 가능 (07:00 ~ 18:00)

 

 

 

 

 

  

[2013년 4월 11일 다녀 온 국립대전현충원에 대해 이야기 하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