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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명박퇴진] 이임을 앞두고 착잡한 버시바우의 심경

[명박퇴진] 이임을 앞두고 착잡한 버시바우의 심경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의 이임이 임박하였다.

 

거물 외교관 버시바우

 

2005년 10월 14일 버시바우의 주한미대사 취임 당시 "최고의 거물급 대사"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정가가 떠들썩하였다.
그도 그럴듯이 버시바우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고 소련연방의 마지막 몇 해 동안 국무부 소련과장을 지냈으며 수많은 미소 정상회담과 장관급 회담에 참여하여 소련연방 붕괴공작을 일선에서 담당하였다.

 

이 자는 1998년 1월부터 2001년 7월까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대사직을 역임했고 2001년 7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주 러시아 미국대사로 재직한 거물급의 외교관으로써 주로 소련연방 붕괴 이후에 러시아에 미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버시바우의 외교노선은 러시아 내의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주의 신장을 주장하며 미국식 가치관을 이식하고 교역증진 및 투자확대를 통해 경제적 예속구조를 확립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이 2005년이란 미묘한 시점에 알렉산더 버시바우라는 거물급 대사를 한국에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이라는 정치적 마디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집권과 남북관계 개선으로 국민들의 냉전의식이 약화되면서 한미군사동맹의 규정력도 차츰 약화되어가던 시기였다.

 

미국은 2005년 알렉산더 버시바우를 주한미대사로 보내면서 한국사회의 보수화, 한미동맹 강화라는 과제를 해결할 것을 그에게 주문한 듯 하다.

 

친미보수세력의 권력장악을 지휘하다.

 

버시바우 대사가 부임하여 처음으로 매달린 작업은 한나라당의 충부한 인맥을 총동원하여 지방자치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2006년의 5.31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와 더불어 버시바우는 뉴라이트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보수진영으로 하여금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벗고 "실력있고 양심있는 보수"로 포장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사회에 뉴라이트 운동은 2004년 11월 동아일보가 총 6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신보수운동을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뉴라이트가 자유시장을 지키기 위해 침묵에서 행동으로 나선 새로운 세력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무현 탄핵국면으로 수세에 빠진 보수진영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방편에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뉴라이트 세력은 버시바우의 취임을 전후하며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이전시기만 하더라도 뉴라이트 진영은 현재 서울 도봉갑 국회의원으로 있는 신지호 등이 소속된 자유주의 연대가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후 뉴라이트 운동은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뉴라이트 전국연합으로 중심이 이동되었으며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각 지역별 뉴라이트 연합, 각 부문별 뉴라이트 연합을 결성하면서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김진홍 목사가 이명박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사이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김진홍 목사는 청와대에 들어가서 이명박 대통령의 주일예배를 집전하기도 하는 등 두터운 교분을 자랑한다.

 

뉴라이트 운동을 계기로 이명박을 정점으로 이재오, 김문수 등이 포진하는 새로운 세력이 한나라당 내에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수구꼴통"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이용, 한나라당의 대선주자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으며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빌미로 집권에까지 성공하게 된다.

 

이명박 집권 이후 보수세력은 일사천리였다.

4월 9일 총선에서는 299석의 국회의석 가운데 200석 이상을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남북관계개선에 부정적인 보수정치인들이 석권하게 되었다.

 

이까지의 상황만 놓고보면 알렉산더 버시바우는 "최고의 거물급 대사"라는 호칭에 걸맞게 한국정치구도 전반을 뒤바꿔 놓았다고 할 수 있다.

2006년의 지방권력 장악, 2007년 대선승리로 청와대 장악, 2008년의 국회장악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주요 권력지점들을 친미보수세력이 장악하게 만들어 갈수록 약화되던 한미동맹의 우려를 씻어내고 한미동맹이 장기적으로 존속될 권력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버시바우의 임기가 올해 여름까지 였고 그 후임으로는 크리스토퍼 힐의 측근이자 '지한파'로 알려진 스티븐슨 이라는 여성이 거론된다고 한다.

버시바우의 임기가 올해 여름까지라는 부분도 어찌보면 이 자의 기본임무가 한국권력의 친미보수화라는 가설을 더욱 뒷받침한다.

 

아마도 알렉산더 버시바우는 한미정상회담이 끝나던 4월말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성과와 업적에 대만족을 표시하며 뿌듯해했을 것이다.

미 국무부에서는 더욱 높은 직급을 검토하고 있었을 것이며 이제 '대사'간판을 떼고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정계로 진출할 여지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버시바우의 일장춘몽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모든 것은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미국은 강화된 친미정권을 최대한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려 하였으나 예기치 못했던 쇠고기 협상 문제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국민들은 들고 일어났다.

"미친소, 너나먹어"라는 주장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말일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알렉산더 버시바우이다.

 

현재 모든 비난의 촛점은 이명박으로 모아지고 있지만 이명박이야 인생의 숙원이던 청와대 행까지 이루었고 다시말해 더 이상 바랄 것이 별반 없는 위치인 것이다.

 

그에반해 버시바우는 이제 곧 승진을 앞두고 주한미대사로써 자기가 수행한 전체 업무를 종합평가하는 과정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60만 국민의 촛불대행진은 그동안 버시바우가 공들였던 한국사회 친미보수화가 허장성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참여의식은 훨씬 성장하였으며 미국이 재협상을 반대해도 국민들의 재협상 요구는 더욱 높이 타올랐다.

 

버시바우가 공들였던 이명박 정부는 취임 100일만에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는 불량품 대통령이란 것이 증명되었다.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도 국민의 함성 앞에 꼼짝 못하고 있었으며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차를 갈아타 대표를 역임하는 손학규마저도 자기와의 친분을 내던지고 장외투쟁을 선포하고 있었다.

 

임기 막판에 이성을 상실한 버시바우

 

4년간의 작업이 수포로 돌아가자 버시바우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명박과 손학규의 영수회담에서 손학규 대표가 한-미FTA체결을 반대하자 전화기를 붙들고 "실망스럽다"는 실언을 내뱉은 것이다.

 

이어 6월 3일, 이명박 정부에서 자율적 규제조치를 발표하였을 당시에도 버시바우는 "한국민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한다."는 발언을 읊조리며 노련한 외교관으로써 그동안 쌓아온 평판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

 

이러한 양상은 한미동맹 강화와 한국사회의 친미보수화를 위해 버시바우가 지난 4년간 공들여온 작업들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상황이다.

 

결국 알렉산더 버시바우는 소련연방 붕괴의 전리품을 자랑하며 서울에 자리를 잡았지만 퇴임 2달을 앞두고 불거진 우리 국민의 촛불의 한방으로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한국민을 우습게 알고 머리굴리는 자에게 응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굿바이 버시바우~~

 

(http://cafe.daum.net/2M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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