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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버시바우 대사 “한국민, 과학에 대해 좀더 배우길”

버시바우 대사 “한국민, 과학에 대해 좀더 배우길”
유명환 장관 만나 “합의 변경할 과학적 근거없어”
“재협상 불필요” 노골적 실망감…발언 논란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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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와 미국 쇠고기 수입 중단 요청 문제를 논의하려고

함께 자리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viator@hani.co.kr 

 

“우리(미국)가 실망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I can’t deny that we are disappointed)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3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만나 40분 남짓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한 협의를 한 뒤 기자들 앞에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의 2일 고시 관보 게재 연기와 3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출 자제 요청’ 공개 발표 등에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다.


동맹을 맺고 있는 한-미 관계에서 주요 현안을 놓고 이런 식의 ‘정면 반박성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미 당국 사이에 실제로 심각한 갈등이 있더라도 겉으론 모호한 외교적 수사에 속내를 언뜻 내비치고 마는 게 일반적이다.
그만큼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은 외교 관례에 비춰 이례적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미국의 실망감’을 한국 언론을 통해 한국민에게 알리는 일을 주한 미국대사의 소임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버시바우 대사는 유 장관과 협의 때 “본국 정부의 훈령을 받았다”며 “기자들한테 ‘우리는 실망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안다고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요컨대 “재협상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등의 버시바우 대사의 공세적 발언은 미국 정부의 훈령에 따른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 정부로선 한국민의 거센 재협상 요구에 밀려 한국 정부가 ‘합의 이행’을 늦추며 거듭 추가 요청을 하고 나서는 데 확실하게 쐐기를 박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 쪽의 기존 합의 관철 의지를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지 않은 채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지난 4월의 (한-미 정부간) 합의는 국제 수준의 과학적 근거에 따른 좋은 합의로 이행을 늦춰야 할 아무런 과학적 이유가 없다”며 “우리(미국)는 한국 정부가 합의를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이행하기를 바란다”고 오히려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는 또 유 장관이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우려를 전했다고 소개한 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지난해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도 안전하다고 했는데 (유 장관이 그렇게 말해) 좀 놀랐다”고 불편한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이어 “한국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사실관계나 과학에 대해 좀더 배우기를 희망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이 문제를 좀더 건설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한국민을 비과학적이라고 힐난하는 오만·무례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도 예상된다.


그는 또 미국의 주요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전날 한국으로 수출하는 쇠고기에 대해 월령 표시를 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하고 나선 것을 소개하며 “긍정적 조처”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소비자들이 30개월 이상 여부를 구별할 수 있게 됐으니 구매 여부는 그들의 자유”라며 “이번 미국 수출업체들의 발표는 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긍정적 조처”라고 말했다.
이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출을 미 업계가 자발적으로 자제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한 우회적 거부로 풀이된다.

 

다음은 버시바우 대사와 기자들의 문답 내용이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을 중단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인가?

 

=나는 지난 4월 한-미 정부의 합의를 변경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한-미 양국 정부의 합의 내용보다) 진전된 조처를 발표했다. (미 대사관 쪽은 수출업자들의 발표문을 기자들한테 따로 나눠주기도 했다) 이 사안은 복잡하고 기술적인 문제로, 정부간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양국의 )수입-수출업자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한국 정부의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요청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건 수출의 일시 보류를 뜻하는가, 아니면 재협상 용의도 있다는 뜻인가?

 

=우리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합의 내용을 재협상해야 할 어떠한 필요성도 알고 있지 못하다. 지난 4월의 합의는 한국 소비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에서 적용되는 것과 똑같은 엄격한 안전 기준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엄격한 검역체계를 갖추고 있고, 그 덕분에 미국에선 1997년 이후 (태어난 소에서) 광우병이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훈 기자nomad@hani.co.kr
 
 
기사등록 : 2008-06-03 오후 08:09:44  기사수정 : 2008-06-04 오전 01:11:57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913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