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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독재자의 얼짱 각도와 앵무새 언론 그리고 이명박

 

독재자의 얼짱 각도와 기자실의 문제
(서프라이즈 / Crete / 2008-12-08)

 

며칠 전에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의 농수산물 시장 방문을 풍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상인을 안으며 위로하는 모습을 김일성의 모습과 대비 시켰는데 의외로 반응이 뜨겁네요. 좌우 대칭의 두 모습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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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영어로는 미러 이미지(mirror image)라고 하죠. 거울에 비춘 모습을 뜻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불만이지만, 사실 거의 전 언론사가 하나가 되어 저런 홍보성 사진 촬영에 협조하는 모습이 결국 노무현 정부 말에 그렇게 걱정하던 기자실의 병폐, 그러니까 기자실에 상주하는 기자들이 무슨 때마다 촌지봉투를 포함한 해당기관의 로비를 받아 해당기관에 우호적인 기사를 써대는 모습의 전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튼 거의 모든 국민의 지탄 대상인 독재자 김일성과 현직 대통령을 비록 이미지일망정 빗대어 비교한 점에 분노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그럼 제가 왜 이명박 정부의 현재 행보를 감히 김일성의 모습과 비교하는지에 대한 배경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글이 시사 풍자 글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은 진지한 역사 공부 글이 될 겁니다.

 

전 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도 그런 과목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 때는 '반공'이란 과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역사랍시고 해방 이후부터 70년대까지의 북한 권력투쟁사를 서술해 놓았는데.. 문제는 이런 서술이 학술적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주로 귀순자들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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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철의 장막이라고 해서 공산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참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공산정부의 허풍이 다분한 공식 발표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고, 귀순용사들의 진술도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좀 과장이 심한 경우가 많았죠. 그러니 양쪽 극단에서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증폭될 밖에요.

 

그런데 상전벽해라고 해야 될까? 동구권이 붕괴되고 예전 동유럽의 공산정부들이 해체되면서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막대한 양의 외교문서들이 학계에 공개되기 시작한 겁니다. 당연히 이들 중에는 북한에 주재했던 동구권 각국의 대사를 포함한 외교관, 군사고문단들이 본국 정부와 주고받은 훈령이나 현지 정보를 담은 서류들이 있죠.

 

이런 자료들은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껍질이 두꺼운 우리나라에서 좌익, 우익을 떠나 북한의 실상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자료들이 하나같이 자국어, 즉 헝가리어나 루마니아어, 체코어... 등등...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로 되어 있으니 그림의 떡이었는데...

 

다행이 미국의 우드로 윌슨 센터(http://www.wilsoncenter.org/)에서 이 일을 감당하기 시작한 겁니다. 북한에 대한 자료는 아예 '냉전시기 국제연구 프로젝트(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의 일환으로 동구권 정부 자료들을 중심으로 원자료(raw data)를 수집하여 영어로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북한 국제 문서 프로젝트(North Korea International Documentation Project) 페이지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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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기별이나 주제별로 북한에 관련된 동구권의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오늘은 이 자료 중에서 휴전 이후 김일성 반대파가 모조리 숙청된 계기가 된 '56년도의 8월 종파 사건☜'까지 동구권 외교관들 눈에 비친 북한 사회의 변화상,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나름대로 다양성이 존재하던 북한 사회가 김일성 개인독재체제로 이행되어 가는 모습들에 초점을 맞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본론

 

휴전으로 일단 한반도에 급한 불은 꺼진 셈이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으로부터 대대적인 구호물자와 재건 도움을 받은 것같이 북한 역시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 각국으로부터 다양한 물적 인적 지원을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들을 추진하는 일부 동구권 외교관 눈에 비친 북한의 변화를 담은 글을 몇 개 뽑아 보겠습니다.

 

헝가리 대사관의 케레스체스박사와 소련 영사인 페트로프와의 대화를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보고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케레스체스 박사가 페트로프 소련 영사를 방문해서 북한의 (1) 내부 비판 결여 (2) 변함없는 개인숭배 (3) 비밀주의에 대한 의견을 물어 보고, 이에 대해 페트로프 소련 영사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1. 내부비판 결여
(1) 모든 비판은 하향식이며 일체의 상향식 비판 부재.
(2) 모두가 문제에 대해 말을 하지만 실행을 하는 이는 없다. 김일성 동지만이 유일하게 실행하는 사람이다.
(3) 비판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4) 김일성 동지가 아첨꾼(bootlickers: 구두를 핥아 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건 심각한 문제이다.
(5) 지도자의 지시는 일체의 반박 없이 수용되고 따라서 실수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
(6) 아무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2.개인숭배
(1) 개인숭배가 여전하다.
(2) 개인숭배야말로 북한 내의 모든 실수(mistake)의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a primary and decisive factor in every mistake)이다.

 

3.비밀주의
(1) 대개 계획들은 비현실적이고 과장되어 있다(예: 1955년 곡물수확예상 계획량은 4백만 톤. 이는 54년 곡물 수확량의 2배. 특별한 투자 없이 이 계획을 달성하려고 함. 이후 지속적인 지적을 통해 2.7백만 톤으로 수정).
(2) 54년 곡물 수확량이 3백만 톤으로 과장되어 보고됨. 지적 후에 2.3백만 톤으로 수정되었으나 현장에서는 수정이 되지 않음. 따라서 정상적인 23~27%의 세금보다 훨씬 더 많은 50% 정도의 세금이 부과되기도 함.
(3) 사설 곡물 시장 폐지 – 헐값에 정부기관에 매각할 수밖에 없음. 농민들 민심이 악화됨. 자살자 증가.
(4) 이후 북한당국과 개인적인 면담을 통해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곡물 수입. 이후 상황 개선.
(5) 집단 농장화 너무 성급하게 추진.

원문 링크:1955년 4월 13일, 북한주재 헝가리 대사관에서 헝가리 외무성으로 보내는 보고서☜

이 보고서는 당시 북한의 주적인 남한이나 미국 관계자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던 형제국 헝가리의 외교관이 작성한 것입니다. 대화의 상대 역시 당시 평양 주재 소련 영사인 페트로프이고요. 저 글이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을까 누군가 물어본다면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접할 수 있던 정보 중에서 가장 진실과 가까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휴전이 겨우 2년 지났을 뿐인 시점에서 당시 북한의 김일성 개인숭배의 진행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개인숭배가 정치적 분위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절대화되는 부작용으로 일체의 실수가 인정되지 않으니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따라서 아무도 정책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는 터무니없이 무책임한 상황이 연출이 되고 말았죠. 가령 보고서에 보시듯이 곡물 예상 수확량이 말도 안 되게 작성이 되고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 수확량의 50% 정도가 세금으로 징수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런 문제가 북한 내부 행정 체계를 통해 수정되지 않고 평양 주재 형제국 대사들을 통해서야 겨우(!) 수정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휴전 후 겨우 1년만인 1954년 12월 18일 평양 주재 헝가리 대사인 팔 스자바스가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도 개인숭배의 징후들이 우려할만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판국이었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죠(원문 링크:1954년 12월 18일, 북한주재 헝가리 대사관에서 헝가리 외무성으로 보내는 보고서☜).

이런 식으로 북한 관리들은 정부의 잘못과 실수를 감추기만 하고 상향식 문제 제기나 상호 비판 검증들이 차례대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휴전 이후의 북한 모습에서 뭐 느껴지시는 거 없습니까? 지난 노무현 정부와 비교했을 때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보 비공개의 수준은 꽤나 우려할 만한 수준입니다. 정보를 공개해도 의원들과 그 보좌관이 손으로 자료를 베껴올 수밖에 없는 제한도 가하고 말입니다. 더군다나 상향식 문제 제기의 민주주의적 제도라고 할 각종 언론들, 특히나 KBS와 YTN 사태에서 보듯이 정부의 언론통제가 강화되고 있죠. 심지어는 인터넷의 일개 논객인 미네르바마저 한때 처벌 가능성을 언급하고 신원확인에 들어가는 등 제도권 언론뿐만 아니라 비제도권 언론에 대한 통제 시도 역시 한층 강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에서 보듯이 일체의 반대 세력에 대한 불법적인 탄압이 시작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비밀 보고서가 올라가 심지어 여당 의원들의 성향마저 보고되는 판국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적어도 의사소통이라는 측면에서는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 국면을 맛보고 있는 셈입니다.

 

결론

물론 아직 대한민국 상황이 50년대 초반 북한의 상황과 일대일로 비교될 정도는 분명히 아닙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아직은 정부 비판을 한다고 비밀경찰에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고문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일부 언론도 아직은 할 말은 할 수 있고요. 하지만 나름대로 다양한 구성원들에 의한 이런 저런 의견이 있던 북한이 김일성 일인독재로 진행되는데 별로 시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박정희가 유신이란 이름으로 독재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히틀러가 독일 사회를 본격적으로 나치 치하로 밀어 넣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긴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같은 페이스로 민주주의의 주요 요소들을 파괴한다고 해서 그가 종신 대통령이 되거나 할 가능성 역시 없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부 형태가 그 어떤 모습이 되건 지금같이 사회의 의사소통 체계가 붕괴되는 것은 대통령이 순서대로 바뀌는 문제를 떠나 사회의 역동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정부의 효율이 떨어지고 결국 그 결과물은 서민들의 고통 지수 상승이죠.

예전 기술이 발달되지 못하던 시절 잠수함에는 토끼를 반드시 함께 태웠습니다. 탄광에서는 카나리아를 대동했고요. 이들 두 동물은 산소의 부족이나 유해물질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물들이죠.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토끼나 카나리아는 누구 몫일까요? 당연히 언론사의 기자들이어야 하겠죠. 그런데 정작 사회의 후퇴에 예민하게 반응할 임무가 주어진 기자들이 기자실 촌지라는 제도적 부패 고리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기사나 양산하고 있는 상황은 정말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블로그 링크:http://crete.pe.kr/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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