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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월의 산/들꽃

중국에서 경극 '패왕별희'로 노래하는 항우와 우희의 사랑, 그 우미인초로 불리는 개양귀비꽃
















포피, 우미인초(虞美人草), 애기아편꽃이라고도 불리는 개양귀비

우미인초라는 이름이 붙은데는 중국의 슬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극 '패왕별희'

'패왕별희'는 초패왕 항우와 우미인(우희)과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것이지요.

항우는 중국 여성들의 이상적인 남성상이었고,

우희는 중국 남성들의 이상적인 여성상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초(楚)나라 항우의 애첩이었던 우미인의 무덤에 핀 꽃이라고 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우미인초의 아름다움과 그 꽃이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초패왕 항우(項羽)를 이야기 하자면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라고하며 천하를 호령하였던 힘과 용맹함

그리고 3번째 부인이었던 우미인(虞美人)으로 알려진 우희(虞姬)와의 사랑,

용마(龍馬)인 그의 말 오추마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중국의 삼국시대 촉(蜀)나라 장수 관우가 타던 적토마(赤兎馬)는 하루에 천리 길을 달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

지금도 오추마와 적토마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두 명마!!!

한 시대 영웅들과 함께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그 용맹을 과시한 영물(靈物)을 놓고 우열을 따지는 것은

어쩌면 용렬한 짓일 것입니다.


오추마, 우희와 항우의 만남은 다분히 각색된 느낌이 강합니다만, 

어느 날 하늘에서 용이 호수로 내려와 날뛰며 큰 물보라를 일으키자 이를 본 마을사람들은 그 광폭한 행동에 놀라

호수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된 항우가 사납게 날뛰고 있는 용마를 보고

그 용맹함에 감탄하며 등에 올라타자 용마는 미친 듯 날뛰다가 끝내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항우의 기운에 눌린 용마는 더 이상 뛰지 못하고 항우에게 복종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말이 항우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오추마입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사람이 항우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집으로 들기를 청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딸인 우희(虞姬)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요청하는데 한눈에 반한 항우가 맞아 들입니다.

바로 이 여인이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포위돼 자신 때문에 나아가길 망설이자

항우의 탈출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미인입니다.

중국에서 긴 세월동안 ‘말(馬)은 오추마, 미인(美人)은 우미인’이라는 말로 우미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였습니다.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어려움을 겪으면서 승리해온 항우가

한나라 유방의 군사에게 쫓겨 해하(垓下)의 절벽으로 내몰리며 사면초가에 놓여 최후의 결전을 해야 할 순간,

전쟁터마다 자신과 같이하며 지내온 사랑하는 부인인 우미인과 부하 장수들과의 결전을 앞두고 마지막 주연을 베풀며

항우는 자신의 절박한 처지와 우미인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을 ‘해하가(垓下歌)’로 표현하였습니다.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아낼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만한데]
                                            時不利兮騶不逝 [형편이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아가질 않는구나]
                                            騶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나아가질 않으니 내 어찌할 것인가]
                                            虞兮虞兮奈若何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할거나]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안 항우는 ‘오추마가 나아가질 않는다’로 싸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것을 표현하였고,

적지를 필사 탈출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에 우미인을 데려가지도 남기고 갈 수도 없어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절박한 심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미인은 다음과 같이 화답하며 항우에게 분발할 것을 촉구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漢兵已略地 [한나라 병사들이 이미 모든 땅을 차지하였고] 
                                             四方楚歌聲 [사방에서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뿐인데] 
                                             大王意氣盡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賤妾何聊生 [천한 제가 어찌 살기를 바라겠나이까
]


우미인은 춤과 노래를 마치자마자 항우의 칼을 빼들어 자진을 합니다.


항우 또한 가까스로 오강(烏江)에 다다랐으나

 "내가 고향에서 봉기하여 데리고 나온 8000여 명의 젊은이 중 대부분이 이미 죽었다.

 무슨 낯으로 그들의 부모를 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나를 용서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며 달아나지 않고

오추마를 배에 태운 후 추격해 온 유방의 군사들과 최후의 결전을 펼치다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합니다.

 배에 태워진 오추마 역시 항우의 죽음을 알고 크게 울음의 소리를 낸 뒤 오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음을 택합니다. 

 

항우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고 평가받는 한신조차도 정면승부를 꺼릴 정도의 천하의 용장이였습니다.

 

결국 항우는 마지막 싸움에서 패해 31세의 젊은 나이로 우미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고,

유방은 한의 고조가 되어 진의 통일제국 이후 다시 천하를 재패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의연하게 숨져간 우미인의 무덤가에서 비단처럼 얇고 붉은 빛을 띈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우미인의 영혼이 환생한 것이라 하며 ‘우미인초’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항우와 우미인을 의와 예의 표본으로 삼아 그들의 슬픈 최후를 경극 '패왕별희'로 승화시킨 중국

 

그 우미인초는 쌍떡잎식물 양귀비목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로 유럽이 원산지입니다.
 전체에 가는 털이 나고 얇은 꽃을 단 가녀린 줄기는 곧게 섭니다.

 

꽃은 보통 5∼6월에 피고 가지 끝에 1개의 비단같이 얇은 꽃이 하나씩 달려 작은 바람에도 파르르 떨립니다.

마치 패전을 앞두고 항우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우희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꽃의 모습에 관상용으로 많이 심으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축제를 열기도 합니다.

 

 

씨방은 항아리 같은 양귀비와는 달리 좀 길쭉한 모양을 띄고 있으며 양귀비와 비슷한 꽃이 피기 때문에 개양귀비, 꽃양귀비라고 합니다.

 

 

한방에서 해수·복통·설사 등에 처방하는 약초입니다.

 

 

 

 

 

 

 

[2010년 6월 12일 계룡산 갑사입구 농바위곁에서 만난 개양귀비를 정리하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