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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한문 한자가 우리 글임을 밝히려고 애쓰는 재야 사학자의 글

우선, 한자(漢字) 또는 한문(漢文)이라 불리는 이름 자체가 유감이다.

이 단어는 심원한 동양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일본인들이 처음 지어 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아시아의 역사에서 한족이 잠시 이룩한 한(漢)나라만이 최초의 국가였고 고도의 문명을 이룩해 한자를 만들었다는 판단에 한자라 이름지었던 것이다.

그들은 먼 옛날의 죽간(글을 쓴 대나무 다발)이나 갑골문(짐슴의 뼈에 쓴 글)에 대한 인식도 전무했던 것이다.

한편 ...우리의 '세종대왕'께서도 훈민정음 발표시 한문이 중국의 글이라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 글의 아래로는 한자를 '그림글'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겠다. '글'의 어원 또는 원형은 바로 '그림'에서 비롯된 것임을 새겨두었으면 한다.)

 

껍질을 벗겼을 때 균일한 조각으로 생긴 귤과 같은 과일의 모양인 果(열매 과)

새록 새록 싹을 틔워내는 모습의 봄 춘[春]자와 달의 모양을 그린 듯한 달 월[月]자

 

그러면 그림글을 의미하는 단어들을 이전에는 어떻게 표기했는가를 살펴보자.

단위 글자들은 순 우리말인 글 또는 문자(文字)라 했고 문자의 모음을 문서(文書)라 했으며 낱장 문서의 묶음을 책(冊)이라 했다.

여기서 책이란 그림글의 모양을 살펴 보면 지금과 같은 종이책의 모서리가 아닌 죽간의 형상을 본 떠서 만든 것이다.

이 글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책 책'이라 되어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예전부터 즉 글자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우리는 그것을 책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의 근거는 다른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나무 살을 펼쳐 실로 이어 묶고 종이를 바른 것을 부채라 하듯 무엇을 다발로 묶은 것을 우리는 '채'라 부른다.

이러한 '채'가 '책'이 되었음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림글은 말 그대로 어떤 형상 또는 형태등을 본 떠서 초기 글자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저 잘 새겨보면 그 그림의 뜻을 얼추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우리만의 소릿글이 있어 소릿글을 먼저 배운 사람이라면 한자교습책만 보고서도 혼자 뜻과 소리를 공부하여 터득할 수 있다.

그림글의 의미를 우리말로 풀어 가르칠 때 훈독(訓讀)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중국에서 중문을 가르칠 때 중문 교본은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물론 전부 중문으로 되어 있음은 뻔한 일이다.

물론 개중에는 어린이 영어 교본이 그러하듯 그림을 섞어 풀이해 놓은 것도 있다.

이것은 그림을 보고 글자의 뜻을 이해한다 손 치더라도 누군가 그 음을 가르쳐 주어야만 그 글자에 대한 바른 소리(이미 약속된)를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림글의 음을 이해해 보자.

큰 대(大)라는 글자와 클 태(太)라는 글자다. 우리는 단음으로 '대' 또는 '태'라 발음한다.

그러나 다른 아시아권 대부분의 나라들은 '다이'와 '타이'라고 발음한다.

기타 다른 언어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말 대화(大和)는 '다이와'로 대만(臺灣)은 타이완(Taiwan)으로 또한 같은 뜻의 다른 글자 태(泰)는 태국(泰國)과 같이 타이(Thailand)로 발음한다.

이럿듯 홑글자를 다른 나라에서는 홑발음이 아닌 긴발음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에 그림글이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전해졌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 발음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마땅하다.

 

최근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기업체 현대(HYUNDAI)를 외국 사람들은 '현다이'라 발음한다.

아무리 교정해 가르쳐 주어도 그들에겐 '현대'라고 모아 발음한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여기서 한글의 모아쓰기식 때문에 긴발음이 홑발음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은 그렇게 습성되어 왔기 때문이고 우리는 한글 이전에도 홑글자 홑소리에 대해 오랜동안 습성되어 내려 왔기 때문인것이다.

자 이제, 현대의 예처럼 그림글 또한 우리쪽에서 다른쪽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그들식으로 발음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글자들이 우리쪽으로 역수입 될 때는 그들식의 뜻과 음이 따라 들어 온 것들도 상당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 이제 고고학적인 얘기를 좀 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글의 원형은 갑골문에서 출발한다.

몇년 전 현재 중국땅인 산동성 지역에서 옛 갑골 문자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 갑골의 연대는 기원전 2300년경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갑골문자의 시원을 상(商, 또는 殷)나라로 보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그 시대보다 한참 이전에도 갑골문자가 있었음이 판명된 것이다.

이때는 중국이 자기 조상의 나라라 주장하는 하(夏, BC1...800~1400)나라가 태동하기 약 500년 전인 것이다.

그 시대에 글자를 보유할 정도라면 고도의 문명 집단이 있어야 한다.

그때가 바로 (고)조선이 산동성 일대뿐만 아니라 대륙을 지배하던 시기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얼마전 고려말 충신 농은 선생의 유품인 '농은유집(農隱遺集)'에서 다량의 갑골문이 발견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갑골문중에 11글자는 중국이 발견해 보유한 '은허갑골문'이나 '금문집'에서 조차 한번도 발견되지 않은 글자들이다.

역사의 흐름은 원류로 통하는 법이다.

이제 그림글이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생각은 과감히 버리도록 하자.

고대역사는 어쩔 수 없이 최소의 증거에 의한 최대한의 추론이다.

중국은 얼마전 '하상주연표(夏商周年表)' 정정발표를 통해 '하'나라의 태동기를 기원전 2070년경으로 대폭 끌어 올리면서 반만년이 아닌 1만년의 역사라고 우겨대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1만년의 역사중 8천년은 우리의 역사를 무단 차용한 것이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그림글외 '가림다'라고 하는 소릿글도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런데 수천년의 내림 역사 속에서 우리가 만든 소릿글을 중간에 왜 잃어버렸던 것일까?

우선 소릿글을 보자.

소릿글은 그 특성상 말이 통하는 동일 집단에서만 통용될 수 있다.

본시 고조선이 제국을 형성했다면 다민족 집단의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 글을 전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수의 왕권 계층에서만 통용되다가 그 왕조가 무너지면서 글자 또한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반면에 그림글은 글자 모양 그대로 쉽게 이해되고 통용 전파되면서 발전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아시아에 지속 발전되어 내려온 그림글은 왜 우리가 중국에서 수입된 것처럼 인식되어지고 있을까?

그림글이 언제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는지 딱 찝어서 얘기할 수 있을까?

답은 그 누구도 언제쯤이라고 얘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중국에서 넘어왔고 중국의 문자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그것은 그쪽에서 문서로 더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 대륙을 점령하면서 문명과 글자 또한 고스란히 접수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번창기에 그쪽의 수 많은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들이 우리나라로 수입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글자들 또한 같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도로 밀려나 소수로 전락한 우리나라는 지식의 수입국가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안타깝게도 역사적 진실은 흙이 되어 땅속으로 스며 들었으니, 우리 스스로 땅을 헤치고 사료를 모아 연구 발전시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