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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2011년 신묘년 새해 이웃들의 복을 빌며 생각해 보는 설의 세시 풍속과 의미



오늘이 2010년 경인년 (庚寅年) 호랑이의 해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입니다.
내일이면 드디어 2011년 신묘년(辛卯年) 토끼띠의 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먼저 새해를 맞아 모든 이들이 많은 복을 지어 천년 만년 그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지으세요!!!

^^

 

 

이렇게 인사를 올립니다.

^^

 

내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날입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 '설'과 '설날' 무슨 뜻이고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설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2011년, 올해는 설날이 2월 3일, 정월 대보름이 2월 17일입니다.
이 기간이 농한기인 새해를 맞아 그동안 농사일에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새해의 농사가 풍년이 되길 기원하며 보름간의 긴 축제에 빠지게됩니다.

예로부터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해(年)의 주기를 음력을 기준으로 하여 음력 1월 1일을 명절로 치르는 나라로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춘절이라하여 명절처럼 지내지만 역사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보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설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을까요?

언제부터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설을 명절로 삼으려면 역법(曆法)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를 찾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 알 수 있는 것들은 '삼국지 (三國志)'에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점을 볼 때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음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고려시대에 들어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 등으로 더욱 다양해져 9대 명절로 삼았고,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오늘날의  설을 비롯한 각 달의 세시풍속은 고려 때 정착되었던 것이라 볼 수 있어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은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설이란 무슨 뜻일까요?

우리나라는 음력 초하룻날을 설이라하는데, 이 설은 시기적으로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이며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보겠습다.


따라서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인데, 즉 새로이 시작되는 한해에 대한 낯설음으로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고 보아 '설익다'에서 '설'이 가지는 의미와 같다고 보면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또는 '되어질 날'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선날" 또는 새로이 '설'날의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여 왔는데, 이는 '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으로 새해를 맞아 바르게 시작할 것을 이르고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신일은 원일(元日)· 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시작을 의미하는 한자어와는 별개의 뜻으로 사용된 듯합니다.

 

설을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설날의 음식을 통틀어 '설음식' 또는 '세찬(歲饌)'이라 합니다.
그런 설음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떡국인데요, 떡국은 흰쌀을 빻아서 가는 체로 치고 그 쌀가루를 물로 되게 반죽하여 찐 후 떡메로 쳐서 찰지게 한 다음, 한덩어리씩 떼어 손으로 굵다란 양초가락 크기로 만든 후 이것이 적당히 굳으면 얇게 썰어서 장국에 넣어 쇠고기·꿩고기로 꾸미하여 끓이는 것으로 정월 초하루 제사때 제물(祭物)로 차리고 손님에게도 내는 음식입니다.
설날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게 시작하여 액을 막는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흰색의 떡은 밝음을, 둥글게 썰어 담은 떡은 강한 양의 기운을 뜻하는 태양을 의미한 것으로 재액인 음기를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긴 듯합니다.

 



우리 설의 세시풍속...
보통 설날 전에는 설에 입을 새옷인 설빔을 준비하고, 해뜨기 전에 쌀을 이는 도구인 조리를 걸어 둡니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차례를 지낸 다음 새옷을 갈아입고 조부모·부모에게 세배(歲拜)로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올리게 되는데 설맞이 새옷을 설빔이라하며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입니다.

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습니다.
이 놀이들은 설날부터 시작하여 설 명절의 마지막인 정월 대보름날까지 즐겼는데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기간도 길고 큰 명절이었슴을 알게 하는 대목 같습니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 날리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바람개비놀이 등이 있고,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놀이로는 풍물굿이 대부분의 지방에서 행해졌으며, 지신밟기, 석전(石戰), 동채싸움(차전놀이), 나무쇠싸움, 횃불싸움, 달불놀이, 달집사르기, 고싸움놀이, 도깨비놀이, 횃불 싸움, 별신굿, 지신밟기, 거북놀이, 북청사자놀음, 광대놀이, 처용 놀이와 계명(鷄鳴)점, 보리싹 점, 부럼 깨기, 액연 태우기 등이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 나아가 이웃마을 사람들과의 한 덩어리가 되어 즐기는 이 집단놀이는 각 개인과 가정, 마을 공동체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이자 나아가 집약적 노동을 요구하는 농경 사회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의 협동 체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이러한 공동놀이 속에 담겨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많은 놀이들은 남녀가 함께하는 윷놀이, 젊은 부녀자들의 널뛰기, 남자들의 연날리기등은 서로 경쟁하여 승패를 가르

며 공동체의 친목도 도모하고 액도 막는 놀이가 성행했습니다.

많은 놀이 중에서 새해라는 의미와 걸맞게 풍년을 기원하고 액막이 성격의 정화의식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라 하겠습니다.


쥐불놀이(쥐불놓이) 
예나 지금이나 농가의 골칫덩이 쥐는 농민들의 적입니다.
들일이 없는 겨울날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던 이들은 설 지난 첫 쥐날(上子日)에 논둑 밭둑에 불을 놓는데, 동국세시기에는 훈서화(燻鼠火)라 하여 떼를 지어 횃불을 사르는 의례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실질적으로 전국에서 농사짓는 곳이라면 볼 수 있는 이 쥐불놀이(鼠火戱)는 그 외 해충을 박멸하기 위한 놀이며 행사였습니다.
쥐불놀이는 아직 잠자고 있는 대지에 밤기운을 틈타 일제히 불을 놓는 것으로 불의 기세에 따라 풍년 흉년을 내다보고 마을의 길흉을 점쳤다 합니다.
또한,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드센 쥐불 기운으로 경쟁하기도 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달집태우기(달집사르기)
대보름날에는 달집을 만들어 태웠습니다.

달에 무슨 집이 필요하겠습니까만, 마을사람들이 모여 소나무나 대나무를 쌓고 그 사이에 생솔가지나 짚, 고추대, 무명대 등을 넣어 달집을 지었는데, 그 크기로 마을의 규모를 표시한다 할 정도로 경쟁적으로 크게 만들었습니다.
달집을 태울 때에도 고루 한꺼번에 잘 타오르면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 든다고 판단하였다니 쏟는 정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을 하고도 남을 듯합니다.

또한, 달집이 타서 넘어질 때의 방향과 모습으로도 그해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고 하니 하늘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던 농민들의 간절함이 묻어 나는 것 같습니다.
불의 기운이 이웃마을보다 드세면 자기 마을이 더 풍년이 든다거나, 달이 떠오른 후 맨 먼저 불을 지르면 남자아이를 갖는다는 속설도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마을 전체의 염원을 담아 화합을 통해 공동체의 무사안일과 발전을 염원한 순수한 마음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믿음의 내용이나 의례 절차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달집태우기에는 불의 기운을 빌어 좋지 못한 기운을 태우고 밝은 기운으로 한 해를 힘차게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전남지역 무형문화재 24호로 지정되어 있는 전남 순천시 월등면 송천리의 달집태우기는 '불의 뫼'란 뜻을 지녔고, 경남 창녕의 화왕산 정상에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왕산성이 있으며 이 산에 불이 나야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와 지자체에 의해 달집태우기가 부활되어 1995년부터 대보름 억새 축제와 더불어 실시 되었으나 2009년 안전 조치 부족으로 발생한 사고 이후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쥐불놀이에는 농가의 적인 쥐를 박멸하려는 실질적인 목적, 묵은 허물과 죄를 씻어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례적 성격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달집 태우기에도 액막이의 일환으로 그 동안 띄운 연과 저고리 동정에 자신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종이를 매달거나 달집에 함께 태웠다고 합니다.
쥐불놀이나 대보름 달집 태우기나 모두 부정과 악한 것을 불로 살라버리는 정화의 예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날 밤에 이루어지는 야광귀(夜光鬼)쫓기인데 야광(앙괭이)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에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이 무서워 모두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은 다음 잠을 자며 채를 마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야광귀신이 와서 채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재미있는 발상의 풍속이라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합니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덕담
덕담(德談)이란, 설날에 일가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長幼)의 차이에 따라 소원하는 일로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문안비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으로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전갈(傳喝)하는데, 이때 새해 인사를 다니는 계집종을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복조리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부터 설날 이른 아침까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벽에 걸어 두는 습속이 있어 이것을 복조리라고 하였다.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래 설날은 농경사회에서 보는 대표적 자연에 대한 감사와 풍요를 비는 것과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가신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 대부분 핵가족화되어 산업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도시 생활을하는 우리에게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을 고향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되어 풀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입니다.
평소의 도시와 산업 사회를 떠나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라 하겠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게 되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는 비록 재래식 농경 사회가 아닌 기계 영농의 시대에 살지만,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