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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세계

재독 교포는 왜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하나?[재독동포사회 '박정희 동상건립 추진위원회' 공청회]

 

 

재독 교포는 왜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하나?

 

 

독일=이은희 재독 '풍경' 발행인 입력 2011-06-25 11:26:55 / 수정 2011-06-25 11:58:31

 

재독 교포들이 박정희 동상 건립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재독동포사회에서 지난 5월 2일 결성된 ‘박정희 동상 건립 추진원회’는 지난 23일 에센 광부기념회관에서 공청회를 했다. 박정희 동상 건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재독동포 수십 명이 공청회에 참석해 반대 이유를 밝혔다. 21세기에 느닷없이 돌아온 박정희 망령에 맞서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뜬 것이다. 갑작스런 일정에도 수십 명이 참석하여 전체참석자 중 절반을 넘었다.

고창원 글뤽아우프 회장은 “박정희란 이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눈에 불을 켤 정도로 오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반대의견을 잘 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자는 종종 반대 발언을 저지해 ‘사회자 바꾸라’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주최 측에서는 박정희의 행적을 지적하는 발언을 정치발언이라 하여 금지하려 하였으나 “박정희는 정치 인물이므로 정치적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박정희 때 동백림 사건 조작으로 고문을 받아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정규명 박사(물리학)의 부인이 공청회 현장에 함께하고 있으니 발언을 좀 조심해 달라”는 요청이 나오자 더 이상 저지할 수 없었다.

박정희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상 건립 추진위’를 향해 재독동포들의 생각이 어떤지 자세히 들여다보길 요청했다. 이들은 “후손들의 명예와 교육을 위해 파렴치범 박정희 비문 및 동상 건립을 결사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이날 배포하기도 했다.

선별 기억과 총체적 기억

사람들은 때로 가능하면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려 든다. 60년대와 70년대에 고향을 떠나 독일로 온 재독한인동포사회 1세대 광원 노동자 사회에도 박정희는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고 싶은 대상일까?

12년 양조장 생활을 하며 술을 매일 마셨다가 독일 와서 술을 끊었다 하며 박정희가 바로 그렇게 술을 끊게 해 주었다고 회상하고, 박정희가 있어 ‘조국 근대화’가 되었고, 박정희와 가깝기 때문에 잘 알기 때문에 동상 건립을 찬성을 한다고 했다. 왜 찬성하는지 충분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정희는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고 싶은 대상은 아니다.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이들은 국민의 합의 없이 세운 대통령 동상이 4.19 혁명 당시 무너져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을 직접 본 기억을 상기했다. 동백림 조작사건 당시 한국인이란 것이 부끄러웠던 기억을 상기했다. 박정희가 독일과 맺은 계약이 ‘20세기 노예계약’이라고 한 독일 변호사의 말도 언급되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는 히틀러와 싸우고 있을 때 나치에게 협력한 비시 정부 추종자 3만여 명이 전쟁 후 처단된 사실도 상기되었다. 일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일제 치하에서 독립투사를 토벌하던 일본 장교가 군부독재 18년 한 것도 모자라 지금 동상까지 건립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박정희 동상 건립에 관한 찬반 공청회는 선별기억과 총체적 기억의 만남이기도 했다.



 

재독 광부기념회관 현판 ⓒ민중의소리

 

누구를 위한 동상인가?

동상이 설 장소로 전제되는 곳은 광부기념회관으로 현재 한인문화회관, 재독장애인협회, 재독일한인체육회가 함께 쓰고 있다. 공청회 주최 측에 따르면 이곳은 독일 내 공공장소와는 달리 시의 심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절대적인 박정희 동상을 몇십 명의 합의로만 세울 경우, 이 장소가 본시 표방하던 한국문화회관으로서의 위상이라든가 한인사회의 대표성을 담보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글뤽아우프는 독일 광원노동자 사이 인사말로 지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인사말에서 이름을 가져온 한인 광원노동자의 모임 글뤽아우프회는 현재 60여 명의 회원이 있다. 하지만 이 글뤽아우프회가 하는 사업이 아직 독일에 살고 있는 1천2백여 명 광원노동자들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합의의 과정이 요청된다. 합의 과정이 생략된 사업은 제아무리 커다란 액수의 지원금으로 진행되더라도 순탄하지 못하고 기존의 글뤽아우프회를 3만5천 명 한인사회에서 고립시킬 위험이 있다. 수만 유로가 될 수 있는 동상 건립비용을 오로지 이 60명을 위해 누가 어떤 이유로 송금할 수 있을 것인가?

 


재독 교포들이 박정희 동상 건립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독일=이은희 재독 '풍경'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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