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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위대한 유산(遺産) 한자의 기막힌 발견 저자 조옥구의 한자편지. 011 도끼(斤)②




위대한 遺産, 한자, 고대로부터의 편지 011. 도끼(斤)②

 

 

독과 둑

 

충북 보은의 법주사 입구 인근에 사설 에밀레박물관이 있습니다.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아 쇠락하였지만 1990년대 이곳에 민속박물관을 세우신 조자용 선생님은 해외에서 유학하신 건축학자이면서 도깨비와 민속에 대한 연구가 깊어 ‘도깨비 박사’로 더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에 ‘둑신사’에 관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서울의 ‘뚝섬’으로 불리는 곳은 조선조 이순신장군이 병마를 훈련시키던 곳으로 이순신장군은 이곳에 ‘둑신사’라는 사당을 짓고 절기마다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둑신사’에는 치우천왕의 탁록대전을 그린 거대한 벽화가 있었는데, 일제 때 사라졌으며 이 둑신사에서 지내는 제사가 ‘둑제’이고 ‘뚝섬’은 ‘둑신사’가 있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셨습니다.

 

‘둑제(纛祭)’는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군령권의 상징인 ‘둑’에게 지내는 국제(國祭)”로 알려져 있으며, ‘둑신사(纛神祀)’는 ‘둑’을 모신 사당을 말하는데, 지금은 흔히 들을 수 없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우리말의 얼개를 알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둑제’나 ‘둑신사’는 우선 ‘둑’과 관계가 있는데, ‘둑’은 ‘논둑’, ‘밭둑’, ‘둑방’의 쓰임이 있으며, 논둑, 밭둑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담아 놓는 경계를 의미하고 ‘둑’은 저수지(貯水池)의 경계로 물을 가두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둑’으로부터는 물과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고, 물을 가둬놓은 ‘저수지’로부터는 물을 담은 항아리와의 관계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항아리에는 많은 것을 담아 놓을 수 있지만 항아리의 진가는 물을 담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라는 말이 생겨납니다. 항아리엔 주로 물을 담았던 것입니다.
‘항아리’, ‘독’, ‘어둠’, ‘도끼’ 등이 ‘음’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으며 같은 논리로 ‘물’ 역시 ‘불(火)’에 상대되는 음(陰)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항아리는 독이며 항아리는 또 둑과 같습니다. 항아리를 매개로 ‘독=둑’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둑제’는 ‘물가에서 드리는 제사’라는 옛 기록이나 ‘둑신사’가 한강변에 세워진 까닭도 ‘둑’이 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항아리=독=둑’의 관계를 ‘纛’자에서 다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纛’은 ‘둑 독’으로 풀이하는데, ‘둑 독’이란 표현은 ‘둑을 독이라고도 한다’라는 것으로 ‘둑=독’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示’의 ‘보일 시’, ‘見’의 ‘나타날 현’이 이해하기 쉬운 서술형 풀이라면 ‘纛(둑 독)’, ‘牛(소 우)’, ‘其(그 기)’ 등의 단음절어식 새김은 비교적 까다로운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纛(둑 독)’은 ‘둑을 독이라고도 한다’는 말이며, ‘牛(소 우)’는 ‘소를 우라고도 한다’는 말이고 ‘其(그 기)’는 ‘그는 기라고도 한다’는 풀이이므로 이들로부터는 ‘둑=독’, ‘소=우’, ‘그=기’의 관계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纛’자는 우리말 ‘독’과 ‘둑’은 서로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독’과 ‘둑’의 차이는 ‘ㅗ’와 ‘ㅜ’의 차이입니다만 상세한 설명은 차후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항아리를 매개로 이 두 글자, 두 말이 서로 같다는 것만 확인하기로 합니다.

 

한편, ‘纛’자의 풀이에는 ‘독 둑’과 더불어 ‘소꼬리로 만든 깃대 장식’이라는 설명이 뒤따르는데, ‘纛’자의 ‘소꼬리~’ 역시 ‘독=둑’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纛’자가 말하는 ‘소꼬리’와 관련해서는 ‘소꼬리 잡은 놈이 임자’라는 우리 옛 속담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소를 길들이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고삐를 잡는 것이 보통인데 어떻게 ‘꼬리’를 잡은 사람이 임자가 되는 것일까요?
속담에서의 ‘소꼬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꼬리가 아니라 ‘상징’입니다.

 

‘牛=소=우’의 관계에서 ‘우’는 ‘위, 하늘, 해’라는 의미이므로 ‘소=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꼬리’는 ‘하루(해)의 꼬리’ 즉 ‘하루의 끝자락’을 의미하며 그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어둠’입니다.
그러니까 ‘소꼬리 잡은 놈이 임자’라는 말은 곧 ‘어둠이 임자’라는 말입니다. 음(陰)이 임자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성(女性)이 임자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기 부인을 ‘임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음’이며 ‘여성’이며 ‘안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도끼에서 시작하여 독, 항아리, 어둠, 둑, 둑제, 둑신사, 물, 소꼬리, 여성, 임자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돌아 왔지만 제 각각인 이 말들을 하나의 실로 꿸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말에 내재된 하나의 논리였습니다.
도끼와 여성은 서로 각각의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음양의 상대적인 논리를 이해하는 순간 도끼와 여성은 같은 음(陰)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서로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논리란 이런 것입니다.

 

구리국과 치우천왕, 치우천왕과 동두철액, 환과 구리, 조선과 한, 고구리와 고리, 조의선인과 조의(皁衣), 칠(七)과 십(十), 구리와 청(靑), 나난구리와 칠성, 고구리 고분과 사신도, 오두미교와 도교(道敎) 등 우리 정체성과 관련된 많은 용어들이 이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 지는데, 특히 치우천왕에 대해서는 이 관계를 모르고는 도저히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언어와 문자는 보다 근원적인 관계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약간의 논리에 대한 이해만 뒷받침되면 언어와 문자를 통해 우리 정체성을 찾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纛(둑 독) : 음(毒)을 드러낸 것(縣), 음의 상징

 

 

 


<글/조옥구/‘한자의 기막힌 발견’의 저자>

 

 

 

'한자의 기막힌 발견' 의 저자 조옥구교수께서  ‘한자이야기’를 시작하면서를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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